"지역 의료기관도 서울 유명 병원 못지않죠"

김민규 2023. 1. 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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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병원 365일 외과 전문의 응급실 운영, 대학 병원급 의료진 
2차 종합병원인데도 옥상에 헬리포트... 응급상황 대비 
"특정 분야나 진료과목 전문성은 지역 의료기관 경쟁력"
김만기 삼일병원 외과 과장이 담도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는 장모(68)씨의 손을 잡고 문진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2014년 대학병원에서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김민규 기자

"할매, 꼭 검사 결과까지 듣고 와야 합니데이."

지난해 8월 대구의 한 준종합병원 진료실에서 60대 노인이 의료진을 향해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김만기(44) 대구 삼일병원 외과 과장이 간질환으로 진료받던 장모(68)씨에게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까지 한 번 더 받아보라"고 권유한 뒤 벌어진 상황이었다. 장씨는 "며칠 전 서울 유명한 병원에서 이상 없다는 검사를 받았다"며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김 과장의 설득에 또 다시 서울의 큰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 씨는 간암 진단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김 과장으로부터 치료받고 있다.

"이 사람 아니었으면 몸이 벌써 시들었을 겁니다."


약 안 먹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환자

장씨와 김 과장의 인연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씨는 당시 영남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유명 인사였다. 간 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의료진의 지시에 따르지도 않고 수시로 고성을 질렀다. 모든 의료진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때 전문의를 갓 취득한 김 과장이 장씨를 얌전하게 만들었다.

"안 먹는다니까." 여느날처럼 장 씨가 고함을 치며 식탁을 내동댕이쳤다. 바닥에 떨어진 약봉지를 집어든 것은 김 전문의였다. 장씨에게 병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매요! 살려고 여기 온 거 아닙니까.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지요. 빨리 약 드세요."

생전 처음 자신에게 큰소리를 치는 젊은 의사를 만났다. 이에 질세라 병원이 떠나가라 카랑카랑하게 대꺼리를 했지만 김 전문의도 만만찮았다. 주위에서는 "할매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패기 넘치는 젊은 의사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들의 팽팽한 기싸움은 보름도 되기 전에 끝났다. 장씨가 먼저 "저 사람 보기 싫어서라도 빨리 나아서 나가야 한다"며 백기를 들었다. 이후 의사들의 지시를 고분고분하게 따르면서 약도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장씨가 퇴원할 때 가장 먼저 찾은 이는 김 전문의였다. "당신이 참 믿음직스러웠다"며 김 전문의의 손을 꼭 잡은 뒤 병원문을 나섰다.


8년 만에 다시 시작된 인연

"할매, 내 괴롭히려고 여기까지 찾아왔네.”

8년 후 김 전문의가 삼일병원 외과 과장으로 이직하자 장씨가 수소문 끝에 김 과장을 찾아왔다.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 한켠이 아리는 느낌이었다. 간 질환은 만성질환과 마찬가지여서, 장씨의 경우 자칫 더 좋지 않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역시나, 몇 달 후 정기 진료에서 심상찮은 정황이 포착됐다. 간암일 확률이 높았다.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서울에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는 "간암이 아닌데다 약만 먹으면 된다"며 장씨를 되돌려보냈다. 그러나 김 전문의의 뇌리에서 간 수치와 CT상에 드러난 상태들이 자꾸 떠올랐다.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서울에서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 내려오세요."

서울 유명한 병원에서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펄쩍 뛰는 장씨를 설득하는 것도 문제였다. 장씨의 남편까지 설득해 결국 조직검사를 받았다. 김 과장의 예측대로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부터 현재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헬리포트를 갖춘 2차 종합병원

"지역의 의료기관도 서울 유명 병원 못지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김 과장이 근무하고 있는 곳은 일반외과 전문의만 9명이 상주하는 대구의 2차 종합병원이다. 이곳의 응급실은 24시간 일반 외과 전문의가 응급수술에 대한 대처가 가능하다. 진료시스템도 대학병원과 유사해 소화기센터, 뇌혈관 척추 재활, 신경,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등 진단부터 수술, 재활치료까지 가능하다.

또 2차 종합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옥상에 응급환자를 위한 헬리포트(헬리콥터 착륙지)가 있다. 옥상에 건물대신 헬리포트로 개조하는 데만 20억 원 가까이 든데다 골든타임을 줄이기 위해 응급의학과도 5명도 상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도 음압격리병실을 만들어 응급수술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다.

김만기 삼일병원 외과 과장이 내시경을 이용한 외과 수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총 9명의 일반외과 전문의와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등 분야별 전문의가 일하고 있다. 365일 외과 전문의가 응급실에 상주해 긴급 처치가 가능하다. 김민규 기자

김 과장은 "장씨 할머니의 경우 자칫 위험한 상황까지 갈 수 있었지만, 의료진과 소통을 잘해서 이런 상황까지 이어졌다"며 "지역에서도 의료 시스템 부재로 인해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는 이런 사례가 즐비하다. 그는 "지역에도 서울 유명한 의료기관 못지않은 구비한 의료체계와 의료인들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건(48) 삼일병원 병원장은 "의료가 분야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특정 진료과목의 주력 대처 능력은 지역 의료기관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지역에서 꼭 선도 의료기관으로 남아 장씨 할머니 같은 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지건 삼일병원 병원장이 옥상에 있는 헬리포터에서 "특정 분야의 대처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지역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규 기자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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