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창업 장벽높은 한국…선진국은 혁신성만 보고도 'OK'
[편집자주] 국내 창업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코리안 창업 드림'을 꿈꾸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창업가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국내 창업생태계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실정이다. 한국이 혁신창업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스타트업뿐 아니라 창업생태계도 글로벌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머니투데이가 국내 외국인 창업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해봤다.
한국은 스타트업을 하기 좋은 나라다. 창업·보육·투자 환경이 잘 구축돼 있고 다양한 정부지원 사업이 있어 창업 초기에는 별다른 자본금을 쓰지 않아도 최소 3년은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한국인에 한해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창업하려면 상당히 많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정부가 2013년부터 국내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하고 있는 기술창업비자(D-8-4)가 대표적이다.
기술창업비자를 받으려면 학사 이상 보유자(국내 대학은 전문학사 이상)로 법인을 설립했거나 설립 절차를 진행 중이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점수제로 운영하는 '오아시스(OASIS·창업이민종합지원)' 프로그램에서 448점 중 8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배점이 낮아 보이지만 각 항목들의 요구 수준이 만만치 않다. 한국을 비롯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에서 등록(보유)한 특허나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IP)'을 중심으로 높은 점수가 배정돼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1가지를 충족해야 하는 필수항목은 △IP 등록(보유) △IP 출원 △등록된 IP의 발명자 △1억원 이상의 투자유치 △고급과학기술인력에게 부여되는 연구비자(E-3)로 3년 체류 △발명 창업대전 1~3위 입상 △법무부 장관이 인정하는 지원 사업에 선정된 창업 아이템 등이다.
IP의 경우 2명 이상이 등록하거나 출원한 경우 해당 점수를 전체 수만큼 나눈 점수가 인정된다. 또 필수항목 중 동일 항목을 2개 이상 충족하면 하나만 점수로 인정된다.
필수항목을 충족한 뒤 추가 점수를 채울 수 있는 선택항목들도 있다. △자본금 1억원 이상 △국내외 대학 박사학위 소지 △국내 대학 학사·석사학위 소지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 이상 또는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3단계 이상 등이다.
오아시스 프로그램을 거쳐 기술창업비자를 발급받아도 1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이때마다 매출 등 사업 실적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초기 단계의 외국인 창업자에게는 부담 요인이다.
그동안 사업을 위해 미국에 입국하거나 체류하려는 스타트업은 국토안보부(DHS)에서 사례별로 검토하는 특정 기준을 충족해야 비자 발급이 가능했다. 2021년 5월 첫 시행된 IER은 일반 스타트업 비자와 달리 의회의 승인이 없어도 비자를 받을 수 있다.
IER은 △5년 내 창업 △창업 회사에서 중요 역할을 담당(10% 이상 지분 확보) △미국 내 투자자들로부터 25만달러 이상의 투자유치 △미국 정부기관에서 10만 달러 이상의 기금·지원금 확보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기업당 3명까지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비자를 발급받은 기업가는 최장 5년 동안 영국에 머무를 수 있다. 추가 5년의 연장 신청도 가능하다. 2020년까지 비자 발급 신청 557건 중 492건이 승인되며 88%의 높은 승인율을 보인다.
아울러 영국의 창업 클러스터 전문기관 '테크 네이션(Tech Nation)'은 유럽연합(EU) 권역의 유능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Tech Nation Visa Scheme'를 운영한다. ICT 분야에서의 혁신 활동에 대한 기록과 기여도를 증명하면 무기한 거주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프랑스는 'French Tech Visa'를 통해 외국인 창업자, 근로자, 투자자들을 위한 비자 발급의 패스트트랙(신속절차)을 마련했다. 최초 발급 시 4년간 체류 가능하며 가족에게도 체류증을 부여한다.
네덜란드는 해외 창업자 대상 '오렌지 카펫(Orange Carpet)' 비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허 유무를 떠나 제품·서비스 혁신성을 심사한다. 비자를 발급받은 창업자는 현지에서 해당 아이템을 사업화해야 한다. 현지 전문가와 사업 협력 협약만 증명하면 된다.
전자정부(E-Estonia) 체계를 구축해 비자 발급을 위한 행정 처리가 간편하며 비자 발급까지 약 10일 미만의 짧은 기간이 소요된다. 외국인도 200유로(약 27만원)의 비용으로 약 15분 만에 법인설립이 가능하다.
세계 최초로 도입된 전자시민권(e-Residency)은 에스토니아 회사 설립·운영을 허가하는 영주권이다. 전자시민권을 받은 자가 설립한 법인이 이익금을 배당하지 않고 재투자 혹은 유보하는 경우 법인세 면제 혜택을 부여한다는 이점도 존재한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비자 프로그램(Estonian Startup Visa)'은 비 EU 회원국 출신의 창업자들이 단기 비자 또는 5년간 체류 가능한 임시 거주 허가서를 취득할 수 있는 우대조건을 제공한다. 사업이 등록된 외국인 창업자는 최대 10년간 거주 가능하다.
싱가포르는 사업하기에 가장 쉬운 국가로 꼽힌다. 7000여개의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 있으며, 스타트업 수는 3만9000여개에 달한다. 싱가포르에서 법인설립을 하려면 주주 1명, 관리자 1명, 비서 1명, 법인설립 비용 1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외국인이 주식 100%를 소유할 수 있으며 현지 주소 보유 시 설립 가능할 만큼 법인설립이 매우 간단하다. 법인세는 비용, 거래상 손실 및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금 등을 공제한 후 기업 소득(이윤)에 17%의 세율이 부과된다.
한국도 주요 국가들처럼 비자 발급 요건을 낮추고 전산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진흥원이 발주한 '국내 글로벌 창업생태계 활성화 방안' 연구용역에서 연구진들은 "국내 시스템은 행정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 외국인 창업자가 절차를 인지하고 실행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공간 제약 없이 온라인으로 비자 발급 신청과 신청 방법을 인지할 수 있도록 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이민자 종합지원시스템을 전담하는 조직과 자격요건 심사 및 제도 개선을 담당하는 운영협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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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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