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로 한 푼도 안들였다…‘빌라왕·빌라신’ 전세 사기 사건 전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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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건축왕', '빌라의 신'이라고 불리는 전세 사기 사건들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
빌라왕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중 3명은 몇 달 간격으로 사망했다.
20대 청년부터 빌라 3400여 채를 보유한 '빌라의 신'까지 이들은 어떻게 많은 빌라를 소유하게 됐고 수천 명의 피해자를 양산했을까.
'빌라 왕' 사건의 전말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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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건축왕’, ‘빌라의 신’이라고 불리는 전세 사기 사건들이 빠르게 드러나고 있다. 빌라왕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중 3명은 몇 달 간격으로 사망했다. 경찰이 이와 관련해 추산한 전세 사기 피해 규모는 1만여 채에 달한다. 20대 청년부터 빌라 3400여 채를 보유한 ‘빌라의 신’까지 이들은 어떻게 많은 빌라를 소유하게 됐고 수천 명의 피해자를 양산했을까. ‘빌라 왕’ 사건의 전말을 정리했다.
#1. 지난해 10월 수도권 일대에 빌라 1139채를 보유한 ‘빌라왕’ 김 모 씨가 사망했다. 언론이 ‘빌라왕 사망’으로 전세 사기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다. 무자본 갭 투자 방식으로 김 씨가 보유한 빌라는 수도권 일대 1139채. 피해 금액만 현재 170억원 정도다. 경찰 수사 결과 김 씨 사망에서 타살 정황은 없었다. 특이점은 있었다. 경찰은 김 씨가 지적 장애를 앓고 있던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파악했다. 수사 결과 김 씨와 직접 계약한 경우 외에 제3의 인물이나 공인중개사 등 공범 5명이 계약 체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고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2. 숨진 빌라왕은 또 있었다. 김 씨보다 앞서 지난해 7월 사망한 빌라왕 정 모 씨다. 정 씨는 서울 일대 부동산 200여 채를 보유하고 있었다. 정 씨는 사망 이후인 지난해 8월까지도 잔금을 치르는 등 거래 흔적이 발견됐다.
#3. 12월에는 20대 빌라왕 송 모 씨가 숨졌다. 인천 일대에 빌라 58채를 소유한 청년 빌라왕이었다. 경찰과 피해자들은 송씨 배후에 공범 또는 배후세력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를 받고 있는 빌라왕들도 있다. 최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에서 30억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강 모 씨가 그중 한 명이다.
또 수도권 일대에 무려 3400여 채의 빌라를 소유했던 권 모 씨는 ‘빌라의 신’으로 불린다. 피해자는 20명. 피해 금액은 43억7000만원이다. 함께 구속 기소된 공범은 3명이다. 그런데 이 배후에 더 큰 조직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일당은 휴대전화 뒷번호 ‘2400’이 적힌 대포폰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에는 ‘세 모녀 전세 사기’가 공론화됐다. 모친이 무자본으로 500여 채의 집을 구입해 딸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했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497억원에 달한다.
한 푼도 안들인 깡통전세
이들의 수법은 거의 동일하다. 타깃은 주로 신축 빌라나 다세대 주택 세입자다. 주로 2030 청년층이다. 왜 빌라일까. 시세 정보가 명확하지 않고 ‘신축’, ‘풀옵션’ 등을 혜택처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고 주변 여건 대비 가격이 낮아 수요가 많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이나 인천 미추홀구에 피해가 몰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건축주는 전월세 보증금을 매매 대금보다 높은 가격에 책정한다. 매매 가격이 2억원이라면 전세 보증금은 2억5000만원이나 3억원이다. 차액은 분양 대행사, 부동산 중개업자, 명의만 빌릴 바지 사장에게 줄 리베이트다.
분양 대행사나 부동산 중개업자가 신축 빌라에 거주하려는 세입자를 구하면 웃돈이 붙은 가격과 동일하게 전세금 액수를 맞춰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이때 ‘빌라왕’과 같은 바지 사장이 명의만 대여해 집주인이 된다. 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주택을 매매하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빌라를 사들일 수 있다. 일명 ‘무자본 갭 투자’, ‘동시 진행’ 수법이다. 자기 자본 없이 보증금으로만 취득한 일명 ‘깡통 주택’들을 늘려 나가는 투자 방식이다.
“외제차 타고 화곡동으로 가시죠”
“임대인도 밉지만 중개인 ‘뱀의 혀’가 더 미워요.” 피해자들은 이들과 결탁하고 리베이트비를 받은 중개사업자들의 입을 믿었다.
임차인은 왜 이런 건물에 들어왔을까. 중개업자들은 받은 리베이트로 세입자에게 전세금 대출 이자와 이사비를 지원해 준다며 미끼를 던진다. ‘풀옵션’, ‘신축’도 이들에겐 혜택처럼 비쳐진다.
“사회 초년생이 회사 근처 집을 알아보러 역삼으로 가면 보증금이 너무 비싸잖아요. 공인중개사가 더 좋은 매물은 화곡동에 있다며 외제차를 타고 화곡동까지 같이 오죠. 처음엔 1억원짜리 반지하 방을 보여줘요. 실망부터 시킨 다음 근처 풀옵션 신축 빌라를 보여주는 거예요. 보증금 2억5000만원은 너무 비싸다고 말하겠죠. 그러면 업자들이 전세금 대출 이자와 이사비를 지원해 주겠다며 서류도 보여줘요. 어떤 대출을 받으면 되는지, 이자는 얼마가 나오는지 순식간에 말해 주고 경험이 적은 임차인들은 중개업자를 끼고 계약하니까 믿고 사인하는 거죠. 선순위 근저당이나 체납 관계는 임차인들이 봐도 모르거나 깨끗해 보이는 것들도 있어요. 사실 옆에 구축 아파트 전세 가격도 얼마 차이 안 나는데 빌라는 시세를 알기 힘드니까 덜컥 계약하는 겁니다.”
서울 화곡동에서 만난 부동산업계 관계자가 설명한 전세 사기 수법이다.
임차인이 사기 피해 당사자가 됐다는 사실은 임대차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야 알 수 있다. 빌라를 경매에 넘겨도 이미 매매가보다 보증금이 더 높은 상황이라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도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여기에 체납 세금까지 있으면 1순위 채권자에서도 밀려난다.
만약 신탁사가 낀 전세 사기 유형이라면 더 골치 아프다. 집주인이 신탁 회사에 소유권을 넘겼지만 이를 숨긴채 계약서를 허위로 만드는 경우다. 집주인이 아니면서 소유권이 있는 것처럼 세입자를 속이는 것이다. 이 경우 임차인은 불법 점유자로 간주돼 집을 비워야 하고 보증금을 날리게 된다. 신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신탁 원부 발급이 번거롭고 권리 관계 파악이 까다로운 점을 악용한 수법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는 이유는 뭘까. 부동산 상승기 때 무자본 갭 투자나 깡통전세로 집을 산 집주인들이 최근 금리가 오르고 세금 체납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같은 문제가 줄줄이 터지는 것이다. 부동산 상승기에 집값이 오르고 금리가 낮아 거래가 활성화됐을 때는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할 일이 적었다. 폭탄 돌리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세입자가 같은 보증금을 내고 또 들어오면 된다.
2020년부터 아파트 가격 급등에 따라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이 빌라 전세로 몰리게 된 것도 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빌라를 사들인 배경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해 전세 사기에 대비하고 반드시 주변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계약 시점에는 임대인이 바뀌지 않아 등기부등본이 깨끗한 것으로 보여 세입자들이 안심할 수 있다”며 “임차권 등기를 활용해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우선 변제권과 대항력을 유지할 수 있게 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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