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보호자도, 동물병원도 어색.. ‘진료비 게시 의무화’ 첫날 풍경

2023. 1.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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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부터 시행된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게시제'
보호자 "정보 비대칭 해소".. 수의사 "병원 간 차이 설명돼야"
5일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에서 반려견 '산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몰랐어요. (진료비) 어디에 게시돼 있어요?

지난 5일,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을 방문한 반려견 ‘산이’의 보호자 송다영 씨는 “오늘부터 동물병원 진료비가 병원 내에 게시된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갑자기 산이가 뒷다리를 절뚝거리는 바람에 급히 병원을 찾았다는 송 씨는,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벽면에 게시된 진료비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게시된 진료비를 살펴본 송 씨는 “동물병원을 고르는 기준이 ‘가격’인 보호자들에게는 유용한 제도가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5일 반려견 '산이'와 함께 우리동생 동물병원을 방문한 송다영 씨는 이날부터 동물병원 진료비 의무 게시 제도가 시행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동그람이 정진욱
5일 우리동생 동물병원에 게시된 진료비 내역. 동그람이 정진욱

그동안 동물병원 진료비는 ‘깜깜이 논란’을 빚어왔습니다. 기존에는 동물병원이 진료비를 사전에 공개할 의무가 없는 까닭에 보호자들은 진료를 받은 뒤 영수증을 확인하고 나서 진료비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진료비를 알지 못한 채 동물을 맡겨야 하는 보호자들은 정보 제공이 부족하다고 느낄 만한 대목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21년 12월, 국회는 수의사법을 개정했습니다. 시행 중인 수의사법 20조에 따르면 동물병원은 진찰, 입원, 백신 접종, 혈액검사 및 엑스레이 검사 등 동물병원에서 진료 중인 진료항목의 진료비를 게시해야 합니다. 게시 방법은 동물병원 내부 접수창구, 진료실 등 보호자들이 보기 편한 곳에 책자나 인쇄물을 비치하는 방법, 또는 벽보에 부착하거나 병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입니다. 진료비를 게시하지 않으면 시정명령이 내려지는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1차 30만원, 2차 60만원, 3차 9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현재는 2인 이상 수의사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한해 시행 중이며 1인 동물병원의 경우 2024년부터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반려묘 '헨리'가 우리동생 진료실에서 심장 청진 진료를 받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다만, 제도 시행 첫날인 만큼 아직 동물병원을 방문하는 보호자 상당수는 송 씨처럼 아직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반려묘 ‘헨리’와 우리동생에 방문한 권정숙 씨 역시 제도 시행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료비가 공개가 안 되는 게 문제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부터 제도가 시행되는 줄은 몰랐다”며 “그동안 동물병원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이게 부담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병원비를 낸 보호자들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들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주는 측면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제도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반려견 ‘롤라’와 ‘민승’을 데리고 우리동생을 찾은 보호자 이향숙 씨는 진료비 게시 제도 시행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제도지만 문제의 본질은 병원마다 비용이 천차만별인 점”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이 이뤄지도록 추가적인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려견 2마리와 함께 우리동생 동물병원에 방문한 보호자 이향숙 씨가 게시된 진료비를 살펴보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동물병원 측은 제도 시행 첫날에는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동생 관계자는 "아직 제도 자체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은 만큼 시행 효과는 제도를 인지한 보호자들이 늘어난 뒤에야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병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VIP동물의료센터 성북점 아재곤 원장 역시 “이제 막 게시를 시작한 만큼 큰 특이점은 없었다”면서 “향후 보호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동물병원들은 제도 시행 과정에서 생길 혼란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냈습니다. 아 원장은 “엑스레이 검사를 예로 들면 우리 병원처럼 규모가 있는 병원은 사진을 찍은 뒤에 영상 전문의가 판독을 하고, 고가의 수준 높은 장비를 사용한다”며 “이런 걸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하게 되면 ‘바가지 씌우는 병원 아니냐’는 오해를 살까 봐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번 수의사법 개정안에는 수술 등 중대 진료에 대해 보호자들에게 사전에 설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아 원장은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개체마다 특성이 달라 진료 내용도 달라질 수 있는데 비용을 미리 정해놓고 치료하라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며 “기계를 고치듯 기름 치고 나사 조이는 일이 아닌데 너무 현장을 모르시는 분들이 제도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시행과정에서 조율도 많이 될 텐데 동물병원 의료 현장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호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가적인 개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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