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대란 임박···정부가 만든 위기”

김찬호 기자 2023. 1. 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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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인터뷰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1월 4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주간경향]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전국에 있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2022년 8월 말 기준, 3247개소다. 지난 5년간 소청과 617곳이 새로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2020년, 2021년 두 해에만 78곳의 소청과가 순수하게(개업-폐업) 사라졌다. 병원 몇 개 줄어드는 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병원이 지역 내에 있는 유일한 소청과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살면 된다’고 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해답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 올해 전반기 전공의를 모집한 64개 수련병원에서 소청과를 희망한 전공의는 단 33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소청과 전공의를 받은 병원은 11곳에 그쳤다. 조만간 아이가 아파 서울 시내 주요 대학병원을 찾아도 치료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출생률이 감소하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의 영유아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7년 기준 145만243명에서 2022년 8월 말 기준 105만4928명으로 39만5315명 감소했다. 그런데 영유아 1명이 감소할 때마다 몇 개의 소청과 병원, 몇 명의 전문의가 줄어들어도 괜찮은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들이 다루는 것은 생명이다. 누구도 답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사회는 이를 국가의 역할로 돌렸다. 설사 적자가 발생해도 사회를 유지하는 기반시설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기본이다. 병원은 대표적인 사회 기반시설이다.

소청과 전공의가 부족하면 의사 수를 늘리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의료인력 양산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수치화할 수 없는 주장은 논의할 필요가 없다. 전반적인 품질 저하에 앞서 분명한 편중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나온 의원급 표시과목별 요양급여비용 실적을 보면 내과, 외과, 정형외과, 안과 등 과목별로 어느 과가 돈을 잘 벌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요양급여비용은 18조771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0% 증가했다. 이중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연평균 진료비가 감소한 유일한 곳이 소청과다. 수치화해도 2021년 소청과의 진료비 규모는 5134억원으로 최하위다. 이를 보면 소청과 전공의가 부족한 것은 비슷한 노력을 하고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처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소청과 의사 부족 사태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뜻이다.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홈페이지에 공지된 입원 중단 공지 / 가천대 길병원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해 12월, 가천대 길병원의 소청과 입원중단 사태에서 촉발된 진료체계 붕괴는 뚜렷한 해결책 없이 시간만 끌고 있다. 길병원 사태는 상급종합병원 심사 등을 무기로 정부가 압박하면 결국, 병원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임계치를 향하고 있다. 이미 일부 병원에서는 소청과 전문의가 더 이상 배출되는 않는다.

지난 1월 4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경향신문 본사 건물에서 만났다. 임 회장은 임기를 시작한 7년 전부터 해당 문제를 지적해왔다. 그는 “2017년에 영유아 및 아동청소년 건강을 위하겠다며 보건당국·의료계 협의체를 출범시킨 적이 있다. 그때 딱 한 번 회의하고 지금까지 논의 한 번 안 했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보여주기식 대책 외에 개선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이 지적한 딱 한 번 열렸다는 협의체 관련 자료는 여전히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1월 4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성동훈 기자

-소청과가 한국 의료체계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담당하나.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사정이 좀 낫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잘 모르실 수 있다. 반면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왜 소청과가 중요한지’를 금방 안다. 우리가 좀더 친절하게 설명드렸어야 했다. 의사 수련체계를 설명하는 말 중에 ‘내외산소정’이라는 말이 있다. 각각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를 의미한다. 이 5가지 과목을 의료 수련 체계상 주요(메이저) 과목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과들도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 과목을 떼어 메이저라고 부르는 건 사람 목숨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인턴 시절에 이 5개 과를 돌고, 전공을 결정하게 된다. 아이들은 성인과 병의 진행 양상이 다르다. 처치만 잘하면 어른에 비해 금방 호전되지만, 증상이 급변하고 다루기가 까다롭다. 초기 진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살릴 수 있는 아이가 죽을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을 뻔한 아이가 살기도 한다. 의사의 판단과 처치로 생명을 살린다는 의료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소청과다.”

-진료 대상은 누구인가.

“신생아부터 대략 18세 청소년까지가 대상이다. 실제 응급실 체계도 이와 같다. 18세 이하 환자가 왔는데 인턴이 내과나 다른 과에 노티(알림)를 주면 ‘왜 소청과 환자를 우리에게 주냐’는 말이 돌아온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고 나면 산모가 산후조리원을 가는데 미국은 출산 전후에 소청과에 가서 아이 상태도 확인하고 출산 후 산모의 우울증 등도 관리한다. 아직 인식이 잡혀 있지 않지만, 소청과 의사들이 진료할 수 있는 분야다.”

-소청과 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올해 3월이면 소청과 관련 의료대란이 날 것이고, 이대로 아무런 조치 없이 2~3년이 흐르면 소청과는 폐과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전국 64개 수련병원의 연차별 전공의 숫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019년에 들어와 4년간 전공의 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전문의 시험을 보는 선생님들이 187명이다. 이들은 3월 1일자로 일선 병원으로 나간다. 2020년에 들어와 3년차가 된 전공의는 총 147명이다. 2021년 들어온 전공의는 75명, 2022년은 57명이었다. 그리고 올해 2023년 기준 소청과 전공의로 총 33명이 지원했다. 내년에는 한 자릿수가 지원할 것 같다. 소청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의학지식은 도제식으로 전수된다. 4년차가 3년차를 3년차가 2년차를 가르치는 식이다. 이대로라면 지식 전달 체계가 무너진다. 게다가 당장 대학병원에서 제일 많이 일하는 사람 187명이 빠져나간다. 이들의 빈 자리를 메우는 것은 갓 인턴을 뗀 33명의 1년차 선생님들이다. 이들이 병원, 소청과 일에 익숙해지려면 대략 2년차는 돼야 한다. 실질적으로 3월부터는 4년차가 되는 전공의 147명, 3년차 75명, 2년차 57명 총 279명이 전국 상급종합병원 일 대부분을 떠맡는다. 지금도 인력이 부족한데 숫자가 더 줄어든다. 대란이 날 것이 뻔하지 않나.”

-전공의 외에 의료진들도 있지 않나.

“지금도 교수들이 낮에는 외래 보고 밤에는 응급실, 소아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 등에서 교대로 당직을 선다. 그렇게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결국 응급실 진료를 폐지하고, 입원치료가 중단된다. 지난해에만 상계백병원, 일산백병원, 이대목동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 등이 응급실 진료를 중단했다. 소청과 붕괴는 예정이 아니라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지난해 보고된 사례 중 5일 동안 열이 난 아이가 어딜 가도 입원을 못 한 경우가 있었다. 결국,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긴 했는데 전공의는 당연히 없고, 교수님 딱 한 번 만나고 퇴원했다. 또 수원에서 24개월 된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재택 치료를 하던 중 증상이 악화돼 서울 고대구로병원으로 이송하다 사망했다. 가까운 곳에 규모가 큰 아주대병원이 있었지만, 치료가 불가능해 서울로 가던 중 발생한 일이다. 아이들 병은 오전, 오후가 다르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데 불가능한 구조다. 3월이 되면 이런 일이 더욱 빈번해지고 심각해질 것이다.”

-아이들 치료만 영향을 받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어른도 걸릴 수 있는 심방중격결손증이라는 병이 있다. 아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다 보니 경험 많은 의사 대부분이 소청과 전문의들이다. 이들도 사라질 것이다. 백혈병도 마찬가지다. 흉부외과는 어떤가. 개흉 수술을 하고 나면, 수술 후 관리를 소아 심장과 등에서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을 하위 전문 분야(서브 스페셜리티)라고 한다. 소청과 내 세부 영역 전문의들을 키워서 담당해왔다. 전공의도 없는데 이런 것이 유지가 되겠나. 하위 전문 분야를 키울 수 있는 인프라도 다 붕괴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청과 의사들은 사실상 감염성 질환(바이러스·세균) 전문가다. 또, 대부분 백신, 예방접종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정확한 부위, 방법으로 접종해야 면역이 잘 생기기 때문에 체중에 맞는 정확한 바늘 크기, 깊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등을 항상 연구한다. 결국 이들이 사라지면 그 여파가 어른들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것이다.”

-왜 상황이 악화되기만 하나.

“도미노가 차례로 넘어가는 것과 유사하다. 4년간 많은 것을 포기하며 소청과 전공의 과정을 밟는다. ‘잠 한 번 푹 자는 것이 소원’이라고 할 정도다. 문제는 힘들게 소청과 전문의가 됐는데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일반의’보다 수입이 적다. 심지어 소청과 의사회 임원들조차 병원을 폐업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일반의원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봉직의라고 해서 월급 받는 전문의로 일하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동네 소청과는 하루에 환자 80명은 받아야 적자를 간신히 면한다. 그런데 20~30명이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봉직의로 일할 곳도 없다. 아이들이 좋고, 사명감을 가져도 생계유지가 안 된다. 이런 상황이 알려지다 보니 인턴들이 소청과를 전공하려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부터 말린다. 그 결과 전국 64개 수련병원 중 소청과 전공의를 한 명이라도 받은 곳이 11곳 밖에 없다.”

2021년 의원 표시과목별 요양급여비용. 미표시 전문의는 일반의에 포함. 단위 : 억원 / 2021 건강보험통계연보

-생계유지 어려움→전공 지원자 감소→의료대란 순서라면 이제 소청과 의사들의 몸값이 올라갈 차례 아닌가.

“하루 평균 80여명의 환자를 받아야 적자를 면하는데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다른 나라였다면 진료를 과다하게 한다고 비판받을 정도다. 적자를 면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왜 환자 수 이야기만 나온다고 생각하나. 이게 30년 동안 의료수가를 묶어놓은 결과다. 특히 소청과 진료비는 대만의 5분의 1 수준이고,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동네 소청과를 한 번 보라. 저녁 7시까지 진료하는 것이 기본이고 저녁 9시, 심지어 달빛병원이라고 자정까지 하는 곳도 있다.”

-소청과만 그런 것인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는 행위별 수가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의사가 검사든 처치든 행위를 할수록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린이 환자들은 적용 가능한 의료행위가 한정돼 있다. 수술이나 고급처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상 진찰이나 주사 정도가 전부다. 그게 다른 나라에 비해 적게는 5분의 1, 많게는 20분의 1 정도 가격으로 책정돼 있다. 선진국은 고사하고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 수준보다 적다. 이렇게 얻은 의료수가도 의사가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치료 원가, 직원 월급, 임대료 등을 빼야 한다. 소청과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이리저리 빼고 나니 한 달에 25만원이 남더라. 나도 직원들 월급만큼만 가져가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해당 글에 ‘당신은 좋겠다. 나는 계속 적자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정부는 필수예방접종 사업을 하며 사실상 소청과의 유일한 비급여 항목도 가져갔다. 정부가 벼랑 끝에 내몰아 놓고, ‘왜 이런 위기가 생겼냐’고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비급여는 또 무슨 말인가.

“소청과도 13년 전에는 예방접종이라는 비급여 항목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새로운 백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제약회사가 의사회에 접종가를 어느 정도로 책정하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그러면 세금, 직원들 월급, 임대료 등을 감안해 적정가격 의견을 전달한다. 무한정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도 없다. 예방접종 가격이 부담되면 누가 맞겠나. 그런데 국가필수예방접종 사업이 도입되면서 소청과 의사들이 받고 있는 가격의 70% 수준에서 예방접종이 편입됐다. 이 가격은 계속 낮아지기만 하더니 급기야 올해 포함된 로타바이러스(장염) 백신은 시중 접종가의 40% 수준으로 편입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술 발전으로 콤보(통합)백신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디티피, 소아마비, 뇌수막염 등 따로 접종하던 것을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백신이 대체하는 것이다. 미국은 개량 백신이 나오면 보급도 늘리고, 의료진도 보호하기 위해 예를 들어 2였던 시행비를 1.5 정도로 책정해준다. 반면 우리는 1 이하로 깎는다. 실제로 2017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 시행에 들어가는 의료인 임금을 연구한 결과가 있다. 당시 최소 2만6923원은 지급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질병청이 소청과에 지급한 예방접종 시행비가 1만9400원이었다.”

2021년 의원 표시과목별 요양급여비용. 미표시 전문의는 일반의에 포함. 단위 : 억원, % / 2021 건강보험통계연보

-가격은 제한하고, 예산지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정부는 올해 저체중 조산아, 미숙아 지원예산도 삭감했는데.

“더 줘도 시원찮을 판에 안타깝다.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후 의료수가는 사실상 30년 동안 동결이었다. 소청과 소멸위기는 출생률 등의 자연적 요인보다 정부 정책이 초래한 측면이 더 크다. 아이들 목숨을 담보로 정부가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형국이다.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예산을 못 깎는다. 말 못 하고, 투표권도 없고, 약하기만 한 아이들 관련 예산부터 깎는다.”

-정부가 현장 목소리를 듣기는 하나.

“답답하다. 현장에서 이런 문제가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유관 부처끼리 서로 탓을 한다. A부서 국장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B부서에서 예산 증액을 막았다’고 한다. 그러면 B부서 과장에게 전화해서 읍소한다. 이번에는 ‘A부서는 꼭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그런 적 없다’고 한다. 이렇게 1~2년만 버티면 A부서 국장, B부서 과장은 보직 이동을 한다. 다시 원점부터 시작이다. 언젠가 아이들을 위한 의료체계가 완전히 붕괴돼 책임을 따져야 한다면 이는 국가,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점은 꼭 밝히고 싶다.”

-정부 수습대책 중 주목할 만한 게 있나.

“없다. 달빛병원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제 밤 12시까지 일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주말에도 오후 4~5시까지 일하는 곳이 많다. 잘 보면 병원 이름에 365소아청소년 병원 이런 곳이 많다. 365일 일을 해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어떤 병원이 그런 식으로 하나. 지난 5년간 소청과 병원 662개가 망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일하게 진료비가 감소한 과다.”

-소청과 위기는 출생률 감소 등으로 인한 수요·공급이 맞춰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자연히 줄어드는 것과 생태계 자체가 파괴되는 건 다르다. 소청과 위기라는 것은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소멸을 의미한다. 소아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의사 공급은 의료 수요가 늘어난다고 곧바로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논리로 수요와 공급을 맞추려면 특정 시점에서 환자 수와 의사 수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 소청과는 신규 의사 공급이 없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이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그것도 의료수가 등으로 제한이 걸린다.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공의 정원의 60% 정도는 채운다. 소청과는 15% 정도다. 단기간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이다.”

-전공의가 부족하니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적어도 소청과 사태를 해결할 대안은 아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과 관계가 없다. 왜 지방 소청과부터 소멸한다고 보나. 환자는 없고 처우는 나아지지 않으니 소멸하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 소청과 전문의도 일정 비율 늘어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전공의 과정을 거쳐 지방에서 개업했다고 해보자. 이들이 생계유지를 하려면 하루에 80여명의 환자를 진찰해야 적자를 보지 않는 구조인데 기껏해야 20~30명이다. 환자 수를 늘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이 사태는 전공의들이 소청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 의대생 숫자가 부족해 생긴 문제가 아니다.”

-동네 소청과 위기는 또 다르지 않나.

“사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동네 소청과다. 일반적인 국가의 의료체계는 몸이 아프면 ‘일반의’라고 불리는 의사에게 가서 증상을 설명한다. 일반의의 판단에 따라 약을 처방받기도 하고, 위중할 경우 비로소 더 큰 병원의 전문의를 찾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청과는 ‘전문가(스페셜리스트)’를 예약도 없이 아주 싼 비용으로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구조다. 아이들의 경우 빠른 진단과 치료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가장 빠르게 동네에서 아이들을 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진료를 보는데 새벽 5시부터 아팠다는 아이를 부모가 오전 10시에 데려왔다. 소청과 의사들끼리 쓰는 말 중에 ‘아기 때깔이 안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이를 보니 딱 그 생각밖에 안 들더라. 즉시 119를 불러 타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중환자의 경우 의료인이 동행해야만 해서 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소아과 응급선생님께 직접 인계를 하고 왔다. 그 아이가 몇 주간 입원했다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아이 두개골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이미 뇌가 녹아내렸고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의미다. 소청과 의사들은 전공의 과정에서 이런 중환자를 숱하게 본다. 이렇게 동네에서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은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비교해도 우리나라만이 가진 장점이다.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인 상황에서 동네 소청과는 출생률 제고에 도움이 될 만한 거의 유일한 체제다. 이 체계가 정책 문제로 무너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지난해 12월 16일 서울 대한의사협회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아동병원협회 주최로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 붕괴 위기 극복을 위한 합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대안은 무엇인가.

“보건복지부, 질병청, 기획재정부, 소청과 의사들이 한 자리에 좀 모였으면 한다. 적어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협의체까진 아니더라도 상황파악을 위한 회의 정도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까지도 그런 게 없다. 언론을 통해 보도만 안 될 뿐이지 틀림없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아이들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특히 지방정부는 지역에 소아진료 인프라가 없다는 점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아이들이 아파도 치료를 못 받는데 어떤 부모가 해당 지역에 살겠나. 일본은 어린이청을 만든다고 하고, 미국은 이미 유사한 기관이 있다. 반면 우리는 담당 부서가 산재돼 있다. 심지어 담당자도 1년, 2년 만에 바뀐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을 7년 동안 했다. 그동안 바뀐 담당자가 몇 명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직속으로 책임기구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희생자가 나와야 움직이겠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이 정도로 위기라면 소청과 의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소청과 의사는 예전에도 돈을 가장 못 벌었던 과다. 그럼에도 ‘내가 아이를 살렸구나’ 하는 기쁨 같은 것이 있다. 800g 정도로 25주 만에 태어난 아이는 딱 손바닥만 하다. 그런 아이를 석 달, 넉 달 잠도 제대로 못 자고 2.5㎏을 만들어서 집으로 돌려보낼 때 그 기쁨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 아이가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을 오고, 또 외래를 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커가는 것을 본다. ‘사람 살리는 것이 이렇게 보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알게 된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기쁨이다. 동네에 ○○소아청소년과라는 이름을 쓰는 병원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그곳에는 소청과 전문의가 있을 확률이 높다. 동네병원이지만 이들 모두 대학병원에서 수많은 임상을 거쳐 개원한 의사들이다. 상급종합병원 이용에 불편함을 겪을 부모님들께 동네 소청과에 아이를 믿고 맡겨도 좋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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