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유산 '용치'를 찾아서

이상현 2023. 1. 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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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용치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의 이빨 모양을 한 대전차 장애물인데요.

우리나라에도 1970년대 초부터 곳곳에 설치됐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50년이 지난 지금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데요.

이 용치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해온 사진작가와 함께 이상현 기자가 그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 리포트 ▶

유사시에 무너뜨려 적의 전차 진행을 지연시킨다는 서울 북서쪽 진입로의 대전차 방호벽.

그 바로 옆 하천, 공릉천 한 가운데에 수많은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겹겹으로 열을 지으며 빼곡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남북간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거라는데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적의 전차 진행을 막거나 전복시키기 위해 유럽에서 고안된 것으로 용의 이빨, 용치라 이름붙여진 장애물입니다.

[김귀주/인근 주민] "옛날에 탱크같은거 못 넘어오게"

[이병기/인근 주민] "뜯지도 못해 이거 어떻게 뜯어? 워낙 단단해가지고 뜯을 수가 있나"

그 옆쪽 육지로도 차량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을 내준채 대전차 장애물, 용치의 행렬이 대전차 방호벽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용치 사이 사이엔 마치 야적장처럼 인근 농가의 물품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고, 용치와 함께 구축됐다는 군의 방어진지, 벙커가 그 용치들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용치들에서 좀더 북서쪽으로 가면 나타나는 한 고등학교 뒷편 야산.

과거 미군기지 바로 옆이었던 이곳에도 기다랗게 파져있는 참호와 함께 무수히 많은 용치의 행렬이 이어져 있었는데요.

"저는 이런걸 보면서 용치무덤이라고 하잖아요. 무덤. 이게 무슨 무덤같지 않아요? 무슨 공동묘지같기도 하고"

이런 용치들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촬영했고, 이를 모아 최근 사진집을 출간한 백발의 사진작가를 만나봤습니다.

[엄상빈/사진작가] "고성쪽 해변에 용치가 있다는걸 알고 제가 찍게 됐어요. 동해안 해변에도 용치가 있다면 인제 원통 철원 다 있을 것 아니냐. 그래서 전국으로 확대가 된거죠. 그래서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서해안 교동도까지 그 일대를 3년간에 걸쳐서 꾸준히 다니면서 찍었던 결과물이죠."

고성 해변에서 시작된 작가의 용치찾기 여정은 인제 인북천, 철원 대교천, 서해의 교동도 같은 남북접경지뿐만 아니라 한강과 중랑천처럼 서울 시내로까지도 이어졌는데요.

이 여정의 결과물들을 취합해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름을 빗댄 사진집, 용치여지도를 내놓게 됩니다.

[엄상빈/사진작가] "이게 군사시설이라는 것도 좀 꺼림직하고 또 전혀 알려지거나 공개돼있지 않은걸 이렇게 사진을 통해서 공개를 한다는 것 자체도 옛날 김정호 선생이 했던 작업하고 너무나 일맥상통한게 있는 거에요."

용치 사이사이를 농지로 활용하고 있는 주민들.

그리고 삭막한 용치에 어린이날, 인근 초등학생들이 그려넣었다는 그림들.

"이 동네에 있는 파주 생태학교 교장선생님이 자기 중학교때 용치가 생겼는데 너무 삭막해서 생태학교 아이들과 어머님들하고 12가족인가 같이 용치에 그림을 그려서 생명을 불어넣자 그런 취지에서 그림을 그렸다는거죠."

작가가 찾아다녔던 그 여정을 따라가봤습니다.

임진강의 교각 아래에서 하얀 눈을 소복이 맞은 용치들.

그리고 자유로의 대전차 방호벽 옆쪽에 있다는 용치를 찾아 한강도 찾았는데요.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한강공원입니다. 이 얼어붙은 한강물 옆쪽으로 보시는 것처럼 남북분단과 냉전체제가 낳은 용치, 대전차 장애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선 육중한 느낌의 용치들을 조경 삼아 아담한 용치공원이 만들어져 있었고요.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통해 시민들이 용치 사이를 오가고 있었습니다.

[김기웅/인근 주민] "원래 (용치가) 여기서부터 저기 끝까지 있었어요. 저기 차 다니는데에 방호벽같이 생긴 거 있잖아요? 그것하고 연계돼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저기 (공원을) 만들면서 부수지 않았나"

서울의 북동쪽 진입로에 흐르는 중랑천에서도 용치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겨울에도 산책나온 시민들이 적지 않았던 이곳에선 용치들이 마치 징검다리처럼 놓여져 있었는데요.

오래 전부터 봐온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물 내려가는 것 막아놓은 것 아니에요? 많이 내려갈 때"

"옛날에 다리를 놓았겠지 뭐. 옛날 그 위에 다리가 있었겠죠."

중랑천의 다른 지점에선 사각형이 아닌 원뿔 모양의 특이한 용치도 눈에 띄었습니다.

[김을석/인근 주민] "이게 다이아몬드식으로 돼 있었는데 수해로 떠내려가가서 원형으로 다시 만든 거에요."

이렇게 우리 주변 곳곳에서 전쟁에 대비해 50여년을 버텨온 콘크리트 장애물, 용치.

칠순을 바라보는 사진가는 오늘도 그 현장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엄상빈/사진작가] "용치도 우리가 분단이 완전히 해소가 되고 통일이 됐을때 그때가 종지부를 찍는거죠. 그러니까 제 작업은 아마 제가 카메라를 놓는 날까지는 이런 작업들이 이어지지 않을까. 이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발전적인 모습으로 바뀔까 이걸 기대도 하고 기록을 해야되겠죠."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이상현 기자(sho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443366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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