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IRA 올해 도입된다…韓 전기차·배터리 불똥 걱정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EU(유럽연합)에서도 역내 공급망을 바탕으로 생산한 제품에만 혜택을 주는 '핵심원자재법(CRMA)'을 올해 발표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리튬과 니켈 등 주요 금속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광물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6일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3월 14일 CRMA 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집행위는 지난해 9월 연례 정책연설에서 CRMA 입법을 예고한 데 이어 11월 일반 공개의견 수렴 절차를 완료했다.
CRMA는 친환경·디지털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원자재의 수급 안정화를 통해 EU의 중국·러시아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다. EU는 2008년 원자재 이니셔티브를 시작한 이후 3년마다 역내 경제적 중요도와 공급 위기를 기준으로 핵심 원자재를 재지정하고 있다. 2020년 지정된 30개 EU의 핵심 원자재 중 마그네슘과 희토류를 포함한 19개 물질이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CRMA엔 리튬과 니켈 등 핵심 광물 원자재에 대한 EU 차원의 구체적인 공급량 확보 계획 등이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배터리에 대한 유럽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국내에선 사실상 북미산 전기차 등에 혜택을 집중한 미국의 IRA와 유사한 방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이와 별개로 미국 IRA법에 맞서 EU의 친환경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차기 2월 EU 정상회의에서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친환경 산업 보조금 등이 포함된 '유럽형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추진한다. 프랑스는 IRA에 따른 자국 친환경 산업 유출 방지 및 리쇼어링 촉진을 위해 막대한 규모의 친환경 산업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인센티브엔 친환경 수소, 배터리, 원자력 및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산업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완성차, 배터리 업체로선 풀어야 할 숙제가 IRA에 이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미국 IRA의 경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953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올해부턴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사용된 핵심광물과 주요 부품 역시 일정 비율을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이 같은 규정이 시행되면 국산차의 미국 수출량이 지난해보다 4.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유럽은 현대차그룹의 최대 전기차 수출기지다.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지만 전기차 중 일부만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 체코공장은 코나EV를 생산하지만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은 생산되지 않는다. 기아 슬로바키아 공장은 2025년이 돼서야 소형·중형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유럽판 IRA'가 도입되면 타격이 클 수 있다.
배터리업계도 우려가 크다. 한국 배터리업계는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 배합물), 흑연,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광물에 대한 중국산 비율이 높다.
유럽한국기업연합회(KBA유럽)와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지난해 말 공동명의로 EU 집행위원회에 CRMA에 대한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CRMA는 EU의 근본 무역 규칙인 자유무역 원칙을 지원해야 한다"며 "자국 기업에만 유리한 법·규제를 도입하는 일부 국가에 의해 보호무역주의 추세가 촉발된다면 이는 우려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박가현 한국무역협회 글로벌공급망분석센터 수석연구원은 "최근 자원보유국은 수출 승인제, 쿼터 제한, 수출세 부과 등 여러 제도를 통해 주요 자원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며 "광물가치가 높아지며 이러한 조치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무역협정 체결시 관련 내용을 포함시켜 수출 통제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도 사전에 기간·범위 등을 상호 협의하는 등 합리적인 수준의 프로세스를 설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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