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비슷한 사람,누구를 옆에 둬야 할까
‘이병규가 삼성 수석코치를?’
조금은 의아했다. 이병규는 엘지(LG) 트윈스 프랜차이즈(팀을 상징하는 대표선수)로 선수 은퇴 뒤에도 내내 엘지 코치로 있었다. 그런데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로 간다고 하니 ‘왜?’라는 물음부터 생겼다. 박진만 신임 감독의 요청이라는데, 박 감독과 이 수석코치는 사실 접점이 없다. 같은 학교를 나오지도, 같은 팀에 있어본 적도 없다. 국가대표 때 잠깐 봤던 사이다. 나이 또한 이 수석코치가 박 감독보다 한 살 많다. 박 감독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었다.
밥 한번 먹어본 적 없지만
박진만 감독의 답은 이랬다. “나는 조용하고 묵묵한 편이다. 하지만 이병규 수석코치는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더그아웃 분위기를 살리는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 내가 못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어, 나와는 다른 유형의 수석코치가 필요했다.” 수석코치를 감독의 오른팔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편한 이를 택할 수 있었을 텐데 박 감독은 아니었다.
박 감독의 결정에는 케이티(KT) 위즈가 모델이 됐을 수 있다. 이강철 케이티 감독은 2018년 말 케이티에서 처음 사령탑 제의를 받아들이며 두 가지만 요청했다. 그중 한 가지가 ‘김태균 수석코치’였다. 이 감독과 김 수석코치는 현역 시절 삼성 라이온즈에서 1년간 함께 선수생활을 했고, 2018시즌 동안 두산 코치로 함께했다.
케이티 관계자는 “이강철 감독이 부드러운 캐릭터라면 김태균 수석코치는 강단이 있는 캐릭터다. 두 분 성격이 다른데 김 수석코치는 솔직 담백한 부분이 있어서 이 감독에게 지금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케이티는 이강철 감독-김태균 수석코치 체제를 5년째 이어오고 2021년에는 창단 첫 우승도 경험했다. 기아(KIA)타이거즈 김종국 감독-진갑용 수석코치 콤비도 케이티와 비슷한 경우다.
새롭게 엘지 트윈스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갔다. 그동안 서로 이름만 알던 이를 수석코치로 앉혔다. “나와 야구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겠다”더니 김정준 전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전력분석팀장을 데려왔다. 이들은 “한 조직 안에서 생활해본 적도 없고, 사석에서 밥 한번 먹은 적도 없는”(염경엽 감독) 사이다. 그래서 염 감독의 선택은 더욱 뜻밖이었다.
염 감독은 꽤 낯선 조합을 이리 설명했다. “수석코치는 상대에 대해 같이 공부하고, 기회가 되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막말이든 뭐든 어떤 말도 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에스케이(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 시절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 나만 바라보는 게 힘들었다. 감독과 코치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눠야 다양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염 감독과 김 수석코치는 둘 다 “야구를 잘 알고, 야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요즘 추세인 데이터 야구에도 관심이 많다. 염 감독은 이런 열정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팀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킨다고 믿는다.
형이라 부르는 “든든한 조력자”
‘반달곰’ 사령탑으로 5년 만에 지도자로 그라운드에 돌아온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은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 스스로에게도 낯선 구단에서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는 그로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형’으로 불렀고, 일본프로야구를 경험하고 돌아온 뒤에는 ‘코치님’ ‘감독님’으로 불렀던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했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많아 자칫 어려울 수 있는데 이 감독은 김한수 수석코치의 사령탑 경험치를 높이 샀다.
이 감독은 “김한수 수석코치는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라면서 “카리스마도 있고 내가 망각하거나 자칫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줄 분으로, 한 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김한수 수석코치라면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 2023시즌을 구상할 때 간과했던 것을 딱 짚어줘 “선택을 잘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승엽 감독처럼 보통의 사령탑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수석코치로 곁에 둔다. 케이비오(KBO)리그 사상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시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위 유지) 우승을 일궈낸 김원형 에스에스지 감독이 그렇다. 그는 우승 뒤 계약 연장을 한 뒤 조원우 벤치코치를 수석코치로 보직 변경했다. 조원우 수석코치는 김 감독의 최측근이다. 이들은 쌍방울 레이더스(1994~1999년)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고, 에스케이 창단 멤버로도 있었다. 이후 지도자 생활을 다른 곳에서 이어가다가 2016시즌 롯데 자이언츠에서 ‘감독 조원우’와 ‘수석코치 김원형’으로 조우했다. 7년이 흐른 뒤 역할이 바뀐 셈이다.
김원형 감독은 조원우 수석코치에 대해 “현역 시절부터 깊은 인연을 맺어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함께한 세월이 길어 둘 사이에 의리가 깊다. 조 수석코치 또한 감독 경험치가 있어 김 감독이 놓치는 부분을 짚어줄 수 있다. 김 감독은 2022년 한국시리즈 3차전 뒤 “중요한 순간에 김강민을 대타로 쓰려고 했는데 경기 중 깜빡했다. 대타를 낼 시점이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니, 조원우 코치가 와서 일깨워줬다”고 밝힌 바 있다.
강인권 엔씨(NC) 다이노스 신임 감독은 정식 감독 첫해 수석코치로 전형도 코치를 앉혔다. 이들도 김원형-조원우 조합처럼 옛날부터 막역한 사이다. 두산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고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는 한화와 두산에서 함께 코치로 있었다.
발전적 시너지? 믿을 만한 사람?
수석코치라는 자리는 감독과 공동운명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수석코치는 긍정적으로는 감독과 선수단의 가교 구실이나 경기 때 조력자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감독과 선수단, 혹은 프런트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40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수석코치의 다분히 의도된 정치질로 해당 구단 감독이 궁지에 몰리거나 급기야 해고되는 일도 있었다. 배신의 정치는 어디에나 있고, 야구판에도 있다.
내 성장을 위해, 혹은 내가 속한 조직의 발전을 위해 누구를 내 곁에 둬야 할까. 나와 전혀 다른 이를 발탁해 발전적 시너지 효과를 노릴까, 아니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으로 채워 조직 안에서 내 힘을 키울까. 전자든 후자든 밑바탕에는 강한 믿음이 깔려야만 할 것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면 조직은 모래알로 흩어질 테니 말이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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