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10] 실전 요리 ② 맛있는 볶음밥 만들기
〈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10.-실전 요리 ② 맛있는 볶음밥 만들기
밥통이나 냉장고 안에서 잠자고 있는 찬밥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것은 자취생이나 싱글들의 가장 흔한 한 끼 식사가 아닐까요. 버터, 김치, 카레 가루 등 여러 부재료를 첨가해 다양한 풍미의 응용 볶음밥을 뚝딱 완성해낸다면 이미 볶음밥의 고수이겠죠. 그런데 밥에 채소와 고기(햄 등 가공육 포함), 달걀 등을 넣어 불에 익히는 이 단순한 요리에도 비법이 있다면? 왜 집에서 프라이팬을 가스 불에 얹어 만드는 볶음밥은 동네 중국집의 볶음밥처럼 고슬고슬하지 못한 게 나오는 것일까요? 바삭바삭한 맛이 나지 않고 장마철 누룽지처럼 눅눅한 느낌만 남을까요? 화력의 차이일까요? 대형 웍처럼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지 못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몇 가지 과학적인 조리 비결만 알면 누구나 다 프로 볶음밥 요리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차례로 살펴봅시다.
첫째, 프라이팬을 좀 달군 후 강한 불로 볶아야 합니다. 기름을 두르기 전에 연기가 날 정도로 냄비를 충분히 가열해 놓습니다. 철판 가까이 손을 갖다 대면 뜨거운 공기가 훅 올라올 만큼 충분히 뜨거워지면 기름을 넉넉히 붓고 냄비를 돌리며 면 전체에 고루 묻도록 합니다. 볶음은 구이의 일종입니다. 불과 재료 사이에 철판이 있는 간접 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이는 불과 바로 접하는 바닥과 재료 중심부의 온도 차가 큰 반면, 볶음은 재료를 잘게 썰어 열이 잘 통과된다는 게 다를 뿐입니다.
한 마디로 볶음 요리는 불과의 전쟁입니다. 강한 불에서 단시간 내 가열하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약한 불은 물기가 생기게 하고 재료의 풍미를 날리기 쉽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불로 조리하려면 미리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군 후 볶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재료에 열이 잘 통과해 바로 단단해져 냄비 바닥에 잘 들러붙지도 않게 됩니다. 약한 불로 볶는 경우는 볶음 찜을 만들거나 양파, 마늘 등을 볶아 재료 속 향을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볶음은 조리의 준비에서 승부가 납니다. 냄비는 되도록 두꺼운 재질, 무쇠라면 더 좋습니다. 뜨겁게 달구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식는데도 오래 걸려 열을 마지막까지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식재료는 미리 썰어서 모두 준비를 합니다. 단단한 뿌리채소는 살짝 끓는 물에 데쳐 잘 익도록 애벌 조리를 합니다. 양배추처럼 너무 수분이 많은 재료는 볶음밥에 안 어울리죠. 고기도 수분이 적은 돼지고기나 햄이 좋습니다. 양념도 손과 가까운 곳에 두거나 미리 섞어놓고 밑간을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볶는 도중에 간을 맞추려 하면 재료에 이미 기름 코팅이 된 상태라서 스며드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재료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볶으면 안됩니다. 냄비 절반 정도에 찰 정도의 분량이 적당합니다. 양이 너무 많으면 골고루 익히기 힘들고 볶는 시간도 많이 걸려 재료의 맛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셋째, 웍질은 자제하세요. TV에서 본 쉐프의 현란한 손놀림을 따라 하고 싶겠죠? 냄비를 크게 움직여 재료 전체를 한꺼번에 뒤집고 공중에 떴을 때 불 위를 통과시켜 이른바 ‘불맛’이 나게 하는 기술 말입니다. 하지만 가정용 불은 화력이 약하고 프라이팬이 대부분이라 이렇게 웍질을 하면 오히려 냄비와 재료의 열이 식어버립니다. 프라이팬에서 눈을 떼지 말고 지그시 볶는 쪽이 더 낫습니다. 또 젓가락 등으로 너무 뒤적여 섞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열이 달아나고 채소의 조직이 파괴돼 질척해지기 때문입니다. 냄비에 재료를 넣고 얼마 동안 가만히 놔두다가 전체로 열이 퍼져나가면 한번 크게 뒤집는 정도로 합니다. 요는 너무 힘차게 섞지 말고 살살 달래듯 뒤집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재료를 넣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전형적인 중국식 볶음밥은 밥, 채소, 고기, 달걀 등의 재료로 만듭니다. 가장 먼저 풀어놓은 달걀을 프라이팬에 넣습니다. 볶음밥에 수분은 가장 큰 적이기 때문입니다. 달걀의 단백질은 열을 받아 익을 때 기름과 수분을 감쌉니다. 볶음밥 마지막에 달걀을 넣으면 볶은 밥과 채소에서 나온 수분을 꽉 잡아 마치 질척질척한 덮밥처럼 변합니다. 처음에 달걀을 단단하게 익히면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달걀이 반쯤 익으면 곧바로 밥을 투입합니다. 달걀이 기름을 조금 흡수한 상태라서 밥의 표면에 달걀을 통해 기름이 달라붙습니다. 그럼 밥에 뜨거운 기름 막이 입혀져 고슬고슬한 질감이 유지됩니다. 달걀 다음에 채소를 넣고 밥을 넣는 순서도 금물입니다. 채소에서 나온 수분이 쌀로 스며들어 축축한 볶음밥이 되기 일쑤입니다. 밥과 달걀을 잘 섞고 난 다음 고기와 채소를 넣습니다. 소금, 후추를 살짝 쳐서 간을 맞춥니다. 간장을 쓸 경우 프라이팬 빈 구석에 뿌려 증발하면서 밥과 섞이게 하세요. 간장을 밥에 직접 뿌리면 질척해지고 비린 맛이 날 수 있습니다.
고기를 익힐 때 ‘겉바속촉’의 식감을 내려면 겉과 속의 온도 차를 잘 조절해야 하듯, 채소도 셀룰로오즈 구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면 씹을 때 연한 질감을 느끼고 소화도 잘됩니다. 자른 양파를 현미경으로 보면 벽돌담 같은게 보이죠? 실제 양파의 세포들은 벽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배열돼 있고, 이때 셀룰로오즈를 주성분으로 한 물질이 일종의 시멘트 역할을 하는 겁니다. 채소의 구조를 벽돌담에 비유한다면 채소를 익히는 일은 그 담을 허무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벽돌과 벽돌의 이음새를 공략해 담이 약해지게 만들면 됩니다. 셀룰로오즈는 수만 개의 당 분자로 이뤄진 다당류 계열의 천연 중합체(polymer)입니다. 셀룰로오즈 분자는 아주 기다란 사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슬이 하나씩 풀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면 쉽겠죠? 셀룰로오즈는 식물이 포도당 같은 단당(單糖)을 여러 개 결합해 만든 다당(多糖)으로, 녹말(전분)과 사촌지간이지만 동물이 소화하기 어려워 분해 효소를 가진 초식동물만 풀을 먹을 수 있다고 했죠? 우리는 풀을 그대로 흡수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하게 만들어 대변 형성의 구심체(섬유소)로서 섭취하는 겁니다.
마지막 필살기. 마요네즈가 있으면 밥에 섞습니다. 밥 한 공기에 마요네즈 한 숟가락 정도면 충분합니다. 수분이 날아간 마요네즈 속 기름이 밥에 코팅되고 나중에 식어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있으면 금상첨화, 없어도 괜찮습니다. 과학으로 볶음밥 맛있게 드세요!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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