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시대 끝" 로켓배송→가두리 전략까지…e커머스 누가 남을까
e커머스 시장의 성장 둔화가 현실화되면서 '묻지마 투자'의 시대는 갔다. 적자를 감수하고 물류 인프라,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는 손을 들고 시장에서 이탈했고 일찌감치 전국 물류 인프라를 갖추며 시장을 장악한 쿠팡과 연합군을 형성하며 이에 맞서는 네이버 양강 구도 아래, 오프라인 경쟁력과 투자여력이 남은 롯데, 신세계그룹의 도전이 남았다.
◇전국 '쿠세권' 만든 쿠팡 VS 네이버의 연합군 VS 오프라인 강자 롯데·신세계의 물류 전쟁
e커머스 업계의 물류 경쟁을 촉발한 것은 쿠팡의 로켓배송이다. '오전 9시에 주문한 세제가 오후 2시에 배송 완료' '11시에 주문한 소고기가 다음날 새벽 6시에 집 앞에…' 온라인 배송의 개념을 아예 바꿔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로켓배송 출시 이후 쿠팡이 구축한 물류 인프라는 4000만 제곱피트(약370만㎡) 이상이다. 축구장 500개 크기와 맞먹는다. 지금도 전국 광역시권에 초대형 물류센터를 구축중이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풀필먼트부터 라스트마일까지 하나로 통합된 물류 네트워크를 설립하고자 지난 7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고, 현재 시장 최대 규모의 풀필먼트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저가 경쟁에 몰입했던 e커머스 업계도 로켓배송에 기반한 쿠팡의 빠른 성장세에 자극 받아 자체 물류센터를 짓고 물류 계열사를 설립하는 등 빠른 배송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쿠팡 경쟁력을 따라잡긴 역부족인 것으로 판명났다. 박영태 동의대 상경대학 무역학과 교수는 "물류가 e커머스 업체들의 경쟁력이 되고 있는데, 센터 설립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다보니 업체들간의 격차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연스레 상위업체를 중심으로 물류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쿠팡에 맞서 CJ대한통운 등 기존 물류업계와 연합세력을 형상하고 있는 네이버와 G마켓글로벌을 인수하고 물류인프라에 조단위 투자를 공언한 신세계, 영국 기반의 글로벌 물류업체 오카도와 손잡은 롯데쇼핑 등의 게임이 된 것이다. 특히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는 온라인 영업시간 제한 규제가 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새벽배송, 휴일 배송이 가능해지면 전국 오프라인 지점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해 한판승부를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성장 둔화된 e커머스 시장 뺏기지 않으려면...
e커머스의 경쟁은 단순히 저가로 판매량을 늘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객단가를 높이려는 시도를 한다. 패션, 뷰티 등 사치재 판매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게 그 한 예다. 생필품에서 중요한 게 가성비라면 사치재는 가심비에 무게가 실린다. 사치재는 기능보다 브랜드가 좌우한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자신에게 아낌없이 소비하는 MZ세대들은 높은 가격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쿠팡의 경우 앱 내 프리미엄 브랜드 온라인숍인 'C.에비뉴'를 통해 패션, 럭셔리뷰티 제품을 팔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고객 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2년 쿠팡 뷰티 어워즈'를 선정하고 할인 행사를 벌였다. 컬리는 지난해 2월 유아동복, 3월 가구, 4월 여행상품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한 뒤 11월에는 화장품 버티컬 서비스 '뷰티컬리'를 론칭했다. 롯데온과 쓱닷컴은 각각 뷰티 전문관 '온앤더뷰티'를 출시하고 '먼데이문'을 재단장했다. 네이버도 지난해 11월 백화점, 아울렛 등 각각의 윈도로 운영되던 패션 쇼핑 서비스를 통합해 '패션타운'을 열었다.
유료 멤버십을 통해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이른바 '가두리' 전략도 구사한다. 쿠팡의 유료회원은 2021년 말 900만명에 이어 지난해 1000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도 지난해 6월 기준 누적 가입자 수가 800만명에 달한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5월 그룹 e커머스 계열사인 SSG닷컴과 G마켓의 통합 멤버십인 스마일클럽을 출시했다. 향후 스타벅스,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등 오프라인 계열사까지 아우르는 그룹 통합 멤버십으로 확장한다.
이동일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 소매 섹터는 과거와 같은 고속성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업계 내부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무차별적인 투자나 경쟁보다는 운영 효율성을 강화하면서 효과적인 경쟁 방안을 찾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e커머스 업계의 화두는 '수익성'이다. 고물가와 금리인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만큼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쿠팡은 지난해 3분기 로켓배송 론칭 이후 첫 분기 흑자를 거뒀다. 영업이익은 1037억원(7742만달러, 분기 평균환율 1340.5원 적용)였고, 매출액은 51억 달러로 전년비 10% 증가했다. 사상 최대 매출액이었다. 그러나 e커머스 업계의 상황은 정반대다. 쿠팡, 네이버를 제외한 e커머스업체는 출혈 경쟁으로 적자를 키워가는데도 점유율은 하락하는 지경이 됐다. 업계 3위인 신세계그룹의 SSG닷컴은 지난해 상반기 영업손실이 662억원으로 전년대비 적자가 두배 규모로 늘었다. 롯데쇼핑의 온라인 사업부인 롯데온 역시 지난해 상반기 적자가 950억원으로 매출액(520억원)을 웃돌 정도였다. e커머스가 '공격적 확장'에서 '수익성 추구'로 선회한 이유다.
대다수의 e커머스업체는 쿠폰, 적립금, 무료배송 등을 통해 프로모션에 힘쓰기 보다는 오히려 이를 줄여 적자 규모를 줄이려고 시도한다. 쿠팡과 함께 '소셜커머스 3인방'으로 꼽히던 위메프, 티몬이 일찍이 이 같은 전략을 채택했다. 11번가도 마찬가지다. SSG닷컴, 롯데온, GS리테일의 GS프레시몰 등도 성장에서 수익으로 무게를 옮겨 왔다.
정규진 SK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e커머스 업체들은 대규모 물류 투자를 통한 직매입, 풀필먼트 서비스, 판매 솔루션 등을 제공하며 성장해 왔으나, 엔데믹 국면이 되면서 오프라인으로 소비가 이전되고 금리 인상도 계속되고 있어 수익성 개선을 위해 사업 모델에 변화를 줄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적자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즉 국내 e커머스 시장은 침투율이 47%에 달한다. 이는 시장이 성숙해지고 경쟁도 심화됐음을 의미한다. 하명진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실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지난해 e커머스 시장 규모 성장세가 10% 초반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되는데 올해도 고금리, 인플레이션 등의 이슈로 인해 과거보다 성장세는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고성장을 기반으로 IPO(기업공개)를 하거나 외부투자를 유치하던 시절도 지나갔다. 지난해 하반기 IPO를 추진했던 컬리는 결국 상장을 연기했고 11번가, SSG닷컴 등 IPO를 계획하고 있는 업계도 시기를 조율중이다. 반면 고물가와 고금리로 소비자들의 심리는 움츠러들었다. 오히려 성장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고문(동덕여대 교수)는 "투자 시장이 좋지 않은 만큼 e커머스는 쿠팡처럼 올해 회원비를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수익성을 강화하려 할 것"이라며 "어느 한 절대 강자의 등장을 막기 위해 합종연횡 식으로 M&A(기업의 인수·합병) 사례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기간 빠르게 몸집을 키워왔던 e커머스 업체들은 이제 해외로 눈길을 돌린다. 점차 포화 상태에 접어들면서 내수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쿠팡이다. 2021년 6월부터 일찌감치 일본에 진출했다. 도쿄 시나가와구를 시작으로 도교 주요 지역에서 식료품·생필품을 30분 이내에 배송해 주는 '퀵커머스'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시범 서비스에서 출발해 1년 만에 8개 구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한 달 뒤인 2021년 7월에는 대만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대만 역시 '퀵커머스' 형태로 진출해 '10분 내 배달완료'를 슬로건으로 삼으며 영업 기반을 확대했다. 인구밀도가 ㎢당 673명으로 한국(515명)보다 높은 대만의 환경은 퀵커머스 사업 확장을 용이하게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대만에서 '로켓배송 상품을 배송해주는 '로켓직구'와 현지 로켓배송 서비스도 선보였다. 대만 고객들이 한국에서 판매하는 로켓배송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인터넷 사용률이 92.4%에 달하지만, e커머스 침투율은 10% 수준에 불과한 대만을 일명 '쿠세권(쿠팡 새벽배송이 가능한 지역)'으로 만드려는 의도다.
SSG닷컴도 지마켓글로벌과 함께 해외 역직구 영역을 확장해 왔다. 지난해 4월부터 국내 최대 규모 역직구 플랫폼으로 불리는 G마켓글로벌샵(영문샵·중문샵)에 신세계백화점, 신세계몰 우수 셀러들의 패션 뷰티 상품을 팔았다. 미국·홍콩 등 전 세계 80여개국 소비자들이 965만 개에 달하는 SSG닷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SSG닷컴은 2017년 11월에도 동남아시아 최대 e커머스 플랫폼으로 불리는 '쇼피(Shopee)'에 입점해 역직구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국내 새벽배송 시장을 열었던 컬리도 해외로 눈길을 줘 왔다. 컬리는 지난해 8월 싱가포르 식품 e커머스 플랫폼인 레드마트와 협업해 '마켓컬리 브랜드관'을 오픈했다. 칼국수, 만두, 떡볶이 등 인기 냉동 간편식 44개를 구비했다. 앞으로 물량과 상품 수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컬리 자체 브랜드와 단독 판매상품인 '컬리온리'를 중심으로 식료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수출도 검토중이다. 컬리는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는 코로나19가 발발한 뒤 3년 동안 e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크긴 했지만 5000만명 인구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게다가 물가가 오르며 내수시장마저 침체한 분위기다. 엔데믹 이후 다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시장을 가져가고 있는 것 역시 한 이유다.
업계는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한 e커머스 업체가 오프라인 업체보다 해외 진출이 용이하다고 판단한다. 별도 오프라인 점포를 운영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할 수 있어 초기 비용도 적게 든다. 역직구 사업을 펼치고 있는 아마존·큐텐 등 해외 e커머스 역시 국내에 거점 사무소만 마련한 뒤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의 온라인 시장 침투율이 최고치에 도달한 상황이므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경영 전략 차원에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라며 "인프라·서비스 등 국내 e커머스 사업 역량이 해외 국가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경쟁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은령 기자 taurus@mt.co.kr,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임찬영 기자 chan0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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