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과학] ‘육신이 다시 흙으로’...확대되는 퇴비장...한국도 도입될까
미국 뉴욕주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뉴욕주에서 주검을 거름용 흙으로 활용하는 ‘퇴비장’을 허가했다. 퇴비장은 시신을 자연분해한 뒤 퇴비용 흙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자연적 유기물 환원법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에선 2019년 워싱턴주를 시작으로 콜로라도주, 오리건주, 버몬트주,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뉴욕주까지 미국의 총 6개 주에서 퇴비장을 합법화했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관에 들어 있는 시신은 평균적으로 부패를 통해 분해되기 시작해 뼈만 남는 데에는 최대 10년이 걸린다. 이에 비해 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시신이 모두 썩는데 5년이 걸린다. 뼈까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더 걸린다. 사람이 죽으면 혈액을 통한 산소 공급이 멈추면서 세포가 죽고 스스로 분해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땅속 곤충 등이 부드러운 조직을 먹어치우거나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천천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반면 퇴비장은 개방된 공간에 시신을 놓고 나무 조각, 풀, 산소를 넣어 시신 분해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관처럼 밀폐된 공간에서는 시신과 식물에 사는 미생물 가운데 산소가 없이도 생존하는 혐기성 미생물만 살아남아 부패가 비교적 천천히 일어난다. 하지만 퇴비장처럼 산소와 수분이 충분한 환경에서는 시신의 분해를 맡는 미생물 활동이 활발해져 빠르게 거름화된다. 퇴비장은 스웨덴에서 2005년 처음 합법화됐고 영국도 관 없이 자연에 매장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2018년 미국의 퇴비장 서비스업체 ‘리컴포즈(Recompose)’는 린 카펜터 보그스 미국 워싱턴주립대 교수팀과 퇴비장 방법이 적합한지 검증하는 예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자연 상태에서는 10년 이상 걸리는 시신 분해 과정이 4주면 끝났다. 연구진은 이렇게 생산된 퇴비는 열처리 뒤 꽃, 나무 등을 심는 데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화학적, 생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밝혔다.
◇스웨덴 이어 미국도 퇴비장...확대되는 이유
코로나19 사태 이후 장례문화의 친환경화와 간소화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퇴비장은 시신을 태우는 화장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매우 적다.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처럼 토지가 필요하지 않아 친환경적인 장례법으로 꼽힌다. 리컴포즈는 자사 서비스가 화장, 매장보다 탄소를 1t 덜 배출한다고 밝혔다.
퇴비장 비용은 7000달러(약 889만 원)로 화장, 매장과 비용이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 장의사협회(NFDA)에 따르면 매장을 하는 장례식의 경우 7848달러(약 997만 원), 화장 장례식은 6971달러(약 885만 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퇴비장과 비슷하거나 더 큰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워싱턴주나 오리건주에서는 화장률 80%에 이른다. 친환경적이고 비용에 큰 차이가 없는 퇴비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리컴포즈는 지난해 12월까지 시애틀에서 약 200여 구 시신에 대한 퇴비화를 진행했다. 퇴비장을 희망한 예약자도 1000명에 이른다. 리컴포즈의 뉴스레터 구독자는 2022년 4월말 현재 2만5000명에 이른다.
◇국내선 화장·매장 대안으로 자연장
국내에서도 간편하고 친환경적인 장례 방식을 찾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보험연구원(KIRI)이 발행한 고령화리뷰에 따르면 ‘고령화에 따른 장례 문화 변화’에서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 중심으로 변화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93년 19.1%에 머물던 화장 비율이 2017년에는 84.6%까지 올라갔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화장률은 90.5%로 ‘마의 90%’ 벽을 넘어섰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에야 화장률이 90%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 것보다 1년 앞선 결과다.
정부는 화장률 증가에 따른 납골당 부족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장’이라는 새 카드를 꺼냈다. 2008년 5월 허가된 자연장은 화장한 유골의 뼛가루를 나무나 화초, 잔디 주변에 묻는 장례법이다. 퇴비장처럼 매장에 따른 토지 사용과 오염을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자연장을 확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자연장지 관련 규제를 완화했다. 산림조합중앙회는 2030년까지 수목장림 100곳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자연장지 이용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아직 이용률이 높지 않다.
◇한국에 퇴비장 들어올 가능성
국내에선 아직 퇴비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장례 정책을 맡고 있는 박민지 보건복지부 노인지원과 행정사무관은 “국내에서 퇴비장과 관련해 논의된 적은 아직 없다”며 “이전에도 새로운 장례법은 많았지만, 장례는 문화적 성격이 강하다보니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실제로 통계청이 2021년 시신의 뼛가루를 바다나 강에 뿌리는 ‘산분장’에 대해 의견을 수렴한 조사했는데 ‘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22%에 그쳤다.
해외에선 종교계 등에서 퇴비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뉴욕주가 퇴비장 정책을 승인하자 뉴욕 교구의 가톨릭 주교들은 “사람의 시신을 ‘가정용 쓰레기’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퇴비장이 친환경적인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진다. 시신이 퇴비가 되더라도 미량의 화학 물질이 남아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조만간 2023~2027년 장례 시설 수급 종합계획 5개년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계획에 지속 가능한 장례 방법을 포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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