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위기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도전적 리더십
[EDITOR's LETTER]
얼마 전 중견기업의 박 모 팀장은 최고경영자(CEO)업무 보고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파워포인트 만드는 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팀은 막내를 시켜 멋진 파워포인트를 만든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어린 사원에게 가욋일 시키는 것도, 내 비전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싫었습니다. 거칠지만 직접 작성했습니다.
업무 보고 날. 다른 팀 파워포인트는 화려했습니다. 막대가 벌떡 일어서고, 화면이 갑자기 회전하고, 각종 색상의 차트가 날아다녔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자료에는 정작 들어가야 할 상황 진단과 극복 전략, 실행 방도가 빠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차분해진 박 팀장. 순서가 돌아오자 담담하게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 방도는 무엇인지 설명하고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파워포인트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전략은 복잡한 파워포인트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하고 직관적입니다. 그래서 파워포인트를 없애는 회사가 늘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지 10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화려한 수식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10년 전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새로운 버전의 엑셀 출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새 프로그램을 먼저 본 개발자들은 감탄했지요. 정보기술(IT)업계 종사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스티브 발머 CEO는 으쓱했습니다. 다음 새 프로그램을 실제 사용할 개사료 회사, 운송 업체, 알루미늄 제조 업체 직원들의 반응을 들을 차례. 포커스그룹 인터뷰였습니다. 질문자가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에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라고 묻자 참가자 대부분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잘 모르겠고 일 빨리 마치고 제때 집에 가 저녁 먹는 거죠.” “스프레드시트 같은 건 안 써요. 일이나 방해하지 마세요.” “저는 소프트웨어와 상관없어요. 회계만 합니다.”
그들은 그래프에 색상을 입히거나 회전시키는 엑셀의 기능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이 광경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개발자들보다 더 중요한 실수요자의 반응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최근 번역본으로 나온 ‘리더십 캠페인’에서 한 대목을 따왔습니다. 저자들은 말합니다. “직감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고객의 삶과 가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리더는 드물다. 그들은 우리처럼 생각하지도 행동하지도 떠들지도 않는다. 직접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이 책에는 비즈니스 리더와 정치 지도자들을 컨설팅하면서 얻은 캠페인의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 출시를 앞두고 빅 브라더인 IBM과 싸우기 위해 정치 컨설턴트를 고용합니다. 50.1%를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 전투를 매번 치르는 정치 컨설턴트에게 캠페인을 맡깁니다. 그렇게 20세기 가장 뛰어난 광고인 애플의 1984가 탄생합니다. 저자들은 이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빅 리더’가 아니라 ‘도전적 리더’가 되라는 것입니다. 첫째 조언은 “자신이 속한 시장을 그리고 현재 상태를 파괴하라”입니다. 새로운 리더가 오래된 보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도전적 리더는 변화를 사랑하고 변화는 곧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빅 리더는 일을 진행할 때 관료주의와 형식을 좋아하지만 도전적 리더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느슨한 조직과 유연한 전략으로 맞선다고 주장합니다. 소통의 리더가 돼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리더가 하는 일의 3분의 2가 소통과 관련돼 있다”고 말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성공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소통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레이건을 위대한 소통가라고 불렀다. 소통 능력이 레이건 리더십의 전부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도전적 리더의 대표적인 인물로 IBM의 루 거스너, 맥도날드의 마이크 로버츠, 월트디즈니의 밥 아이거를 꼽습니다. 이 리더들은 전임자들이 신뢰하지 않던 직원들과 함께 회사의 문화를 바꾸고 회사를 회생시킨 공통점이 있습니다. 조언은 이어집니다. “회사나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사람들이 변화를 기대하며 들뜨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리더가 믿는 게 무엇인지, 그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건 당신 때문이 아니라 그 의미 때문이다.”
다들 위기라고 합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리더는 대부분 위기 속에 탄생했고 그들은 모두 도전자였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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