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애써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이들에게
실제로 사람이 변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지능이든 성격이든)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감이 넘치고 더 많은 노력을 하며, 어려움이 닥쳐와도 더 굳건하게 버틸 수 있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예컨대 아이들의 경우 실제로 그런지와 별개로 “지능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더 열심히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어차피 지능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아이들의 경우 문제를 본격적으로 풀어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만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무슨 짓을 하든 변할 수 없다고 믿으면 노력하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출발지점이 비슷하더라도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더 높은 성과를 이뤄내곤 한다.
이렇게 '믿음'은 주관적이지만 우리의 행동을 주관하며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꼭 주관적이지만은 않다. 다른 말로 믿음은 자기실현적인 성격을 띈다. 특히 어떤 믿음은 신념 또는 삶의 신조가 되어 여러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은 꼭 성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성과를 내는 것에만 끈기와 굳셈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 '선한' 삶을 영위하는 것 또한 결코 적지 않은 노력을 요한다.
선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크게는 희생, 작게는 다양한 불편함을 요구한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인지적 정서적 노력,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서처럼 수십년간 지켜지지 않았던 누군가의 권리를 위해 몇 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때로는 불의의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맞서 싸우는 것 등 선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보통 이기적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용기와 인내가 요구된다.
물론 단지 두렵고 용기가 없어서, 참을성이 없어서, 원래 이기적이어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친절을 베풀지 못할 때도 많지만 그 기저에 작은 배려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패배감과 무력함이 깔려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어차피 바뀌지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자기변명적이고 방어적인 화를 표출하는 경우들이다. 예컨대 누군가 내게 오늘부터 키를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좌절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은 선행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지, 작은 친절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따뜻함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지 등 다양한 믿음에 의해 희생이 따르더라도 도덕적인 행동을 선택하거나 굳이 여분의 에너지를 써가며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드러나는 결과가 없더라도 묵묵히 따뜻함을 전파하는 등의 행동이 나타난다.
바람과 해가 어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했는데 거친 바람보다 조용히 따뜻한 햇볕을 내리쬐던 해가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가 실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작은 관심과 친절, 따듯함이 사람과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잃지 않고 내가 행하는 친절이 눈에 띄는 결과를 내지 않더라도, 어떨 때는 혼자만 애쓰는 것 같다는 억울함이 밀려오더라도,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밀려오더라도 묵묵히 나아갈 수 있기를 한 해가 되기를 바래본다.
사람이 나무라면 수 많은 사람 중 또 다른 지나가는 1인일 뿐인 내가 여러 나무 중 어떤 나무에 달린 작은 나뭇잎 하나라도 흔들 수 있다면 이는 분명 행복한 일일 것이다. 모두 각자의 신념을 되새겨 보고 지킬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Dweck, C. S., & Yeager, D. S. (2019). Mindsets: A view from two eras.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14(3), 481–496.
Derr, S., & Morrow, M. T. (2020). Effects of a growth mindset of personality on emerging adults’ defender self-efficacy, moral disengagement, and perceived peer defending.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 35(3-4), 542-570.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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