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종합] '우리는 듀오' 아이스댄스-페어…"둘이 하나의 작품 만드는 게 매력이죠"
[스포티비뉴스=의정부, 조영준 기자] "싱글의 경우 점프의 비중이 커서 이 부분에 더 신경 쓸 수 밖에 없는데 아이스댄스는 프로그램에 집중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아이스댄스 유망주 김지니(15, 구미중)는 싱글 경기와 다른 아이스댄스의 매력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아(33) 이후 거친 파도를 헤치며 세계 경쟁력을 다져온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여자 싱글의 '쏠림 현상'이었다. 그러나 남자 싱글에서 차준환(23, 고려대)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등장하면서 각종 국제 대회 남녀 싱글 메달을 거머쥐었다.
여자 싱글은 김예림(20, 단국대) 유영(19, 수리고) 이해인(18, 세화여고) 등이 시니어 국제 대회에서 선전하며 김연아의 계보를 잇고 있다. 여기에 차준환을 앞세운 남자 싱글은 '맏형' 이시형(23, 고려대)이 뒤늦게 꽃을 피웠다. 또한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는 서민규(15, 경신중)라는 유망주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스댄스와 페어 스케이팅의 빈곤함도 '풍요의 씨앗'이 뿌려졌다.
올 시즌 급성장한 임해나(19)-취안예(22, 캐나다, 이상 경기일반) 조는 한국 아이스댄스 역사를 하나 둘 씩 갈아치우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프랑스 쿠르슈벨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국 아이스댄스 사상 처음으로 ISU 메이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또한 지난해 12월 열린 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훈련 중인 임해나와 취안예는 오랜만에 국내 팬들 앞에서 경기를 펼쳤다. 임해나-취안예 조는 6일 경기도 의정부실내빙상장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십 2023(제77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아이스댄스 주니어 1그룹 프리 댄스에서 102.33점을 받았다.
전날 열린 리듬댄스 67.12점과 합친 총점 169.45점을 기록한 임해나-취안예 조는 125.59점을 얻은 김지니(구미중)-이나무(성서중) 조를 제치고 아이스댄스 주니어부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이번 대회에 걸린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국내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경기를 펼친 임해나는 "관중들을 직접 앞에서 볼 수 있어서 에너지와 힘이 생겼다. 그래서 경기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취안예는 "한국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관중들 앞에서 펼쳐서 기쁘다"고 말했다.
올 시즌 급성장한 원인에 대해 둘 모두 '팀 워크'를 꼽았다. 취안예는 "지난 시즌과 비교해 기초에 집중했고 발레에도 많이 신경 썼다. 팀 워크도 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즌을 앞둔 이들의 목표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진출과 세계 선수권대회 출전, 그리고 3위권 안에 진입해 메달을 따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며 목표도 상향 조정됐다. 임해나는 "올 시즌이 시작할 때는 주니어 파이널과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목표였다. 또한 3위 안에 드는 것도 목표였는데 지금은 1등을 하고 싶다"라며 당차게 말했다.
취안예도 "3위권 안에 드는 것이었지만 당연히 우승이 목표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임해나-취안예 조와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에 선 김지니-이나무 조도 아이스댄스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남녀싱글 선수로 활약한 이들은 지도자의 권유로 아이스댄스를 시작했다. 홀로 스케이트를 타다가 '듀오'가 된 이들은 어린 나이에 팀을 꾸렸다.
이나무는 "우리는 원래 알던 사이였다. 그런데 같이 무엇인가를 하려다 보니 평소 알던 부분과 다른 점도 느껴졌다. 지금은 그런 점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니는 "처음에는 나이도 어리고 사춘기여서 좀 어색한 점도 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지났고 파트너로 좋은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아이스댄스나 페어 선수들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경쟁자의 부재'다. 경쟁 팀 없이 홀로 경기를 치렀던 사례도 있었지만 김지니와 이나무에게는 롤 모델이자 좋은 경쟁자가 있다. 바로 임해나-취안예 조다.
이나무는 "임해나와 취안예 선수가 멋있다고 생각했고 우리도 저런 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해나-취안예 조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면서 감동도 받았는데 우리도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페어 종목에 유일하게 출전한 조혜진(18)-스티븐 애드콕(28, 캐나다) 조도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 멋진 경기를 펼쳤다. 지난해 5월 결성된 이들은 이번 대회가 공식 경기 데뷔전이었다. 서로 호흡을 맞춘지 이제 겨우 6개월을 조금 넘었지만 능숙한 연기로 총점 157.3점을 받았다.
조혜진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한국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피겨 여자 싱글 선수로 활약했고 아버지의 일 문제로 미국으로 이사한 뒤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로 돌아와 정착했다.
코치의 권유로 아이스댄스로 전향한 그는 이미 경험이 풍부한 애드콕을 만났다. 자신보다 10살이나 위인 파트너를 만났지만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페어에 흥미를 느꼈다.
조혜진은 "페어를 처음 할 때는 좀 무섭기도 했다(웃음)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가야 하는데 스티븐은 힘도 세고 믿음을 줄 수 있어서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페어는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기술이 많다. 파트너에 대한 신뢰가 이 종목의 우선순위로 꼽힌다.
조혜진은 "스티븐은 믿음직한 오빠 같다. 스케이트를 탈 때 매우 즐겁고 파트너로 서로 친해지면서 스케이트가 더 즐거워졌다"고 밝혔다.
올해 목표에 대해 조혜진은 "바로 시니어로 올라가서 좀 급하지만 우선은 작은 대회에 나가서 세계선수권대회 기준 점수를 따고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다.
조혜진과 첫 공식 경기를 치른 애드콕은 "이번 대회를 시작으로 경험을 많이 쌓고 싶고 앞으로 잘 성장해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예상하지 못한 팬들의 응원에 "놀랐다"라고 밝힌 조혜진은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셔서 힘이 났고 즐겁게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스댄스나 페어 스케이팅 팀이 오랫동안 유지되려면 서로 간의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또한 남녀 싱글과는 다른 행정적인 문제도 받쳐줘야 이들이 태극 마크를 달고 꾸준하게 활약할 수 있다.
선수층이 열악한 현실을 고려할 때, 순수 한국 국적을 가진 선수로 많은 팀을 만들기는 어렵다. 아이스댄스의 임해나-취안예 조와 페어의 조혜진-애드콕 조는 모두 여자 선수가 한국 국적이 있는 이중 국적자이고 남자 선수는 외국 국적자다.
ISU 규정상 아이스댄스와 페어의 경우 선수 둘 중 한 명의 국적을 선택해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을 최종 목표로 삼는 이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남자 선수의 '특별 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스댄스와 페어의 발전을 위해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또 하나의 교차로에 섰다. 어느 종목이건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적극 귀화를 추진한 평창 올림픽 때와 지금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태극 마크를 달고 뛰고 싶어 하는 선수들을 위한 적극적인 귀화 추진은 시행되어야 한다.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을 대비한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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