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넘어 찢생’ 하루를 여는 일력이 돌아왔다
지난 연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예년과 달리 달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글이 자주 목격됐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고 종이 달력을 사용하는 이들이 줄어들며 기업들도 환경보호를 이유로 홍보용 달력 생산을 하지 않으면서다.
공급과 수요가 불일치하는 상황 속에서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달력을 팔거나 사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어렵지 않게 포착됐다. 특히 ‘돈이 들어온다’는 풍문 덕에 은행권에서 발행해 무료 배포하는 달력은 중고시장에서 ‘없어서 못 파는’ 인기 제품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차피 사는 달력, 취향대로 고른다”는 소비자도 증가했다. 2023년의 대세 달력은 ‘매일 뜯어보는’ 일력이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일력이 대거 출간된 지난해 10월에는 판매량이 전월 대비 13배 치솟았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2020년 12종에서 36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일력’이란 매일 한 장씩 넘기며 의미 있는 단어나 문장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든 달력을 의미한다. 큼지막한 숫자가 덩그러니 적힌,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 봤던 바로 그 달력이다. 복고를 즐기려는 ‘뉴트로’의 바람과 미니멀한 디자인이 인기를 끌며 일력은 ‘갓생(god+인생)’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새해맞이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일력은 디자인과 목적에 따라 굿즈용, 교육용, 감성용, 자기계발용 등으로 크게 나뉜다. 굿즈용 선두를 차지한 달력은 지난달 출시된 롯데리아의 ‘2023 포켓몬 일력’이다. 매장에서 1만8000원으로 판매되던 이 제품은 중고시장에서 최대 2배에 가까운 호가에 거래되는데, 이마저도 품귀 현상을 보인다. 총 367매로 구성된 포켓몬 일력은 피카츄, 이상해씨, 파이리 등 각각의 캐릭터가 한 장 가득 그려져 있다. 매일 뜯는 재미는 기본, 색칠 놀이가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학령기 자녀를 둔 집에서는 ‘이은경 쌤의 초등 어휘 일력 365’가 인기다. 초등교사이자 교육 관련 유튜버로 활동 중인 이 작가는 평소 강조해온 독서의 중요성을 달력에 녹여냈다.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문학 속 다양하고 흥미로운 어휘를 적었다. ‘실현되다’, ‘오도카니’ 등 일상 속 어휘와 어원, 유의어, 반의어, 예문 등을 넘기며 볼 수 있어 교육적인 효과도 있다.
감성과 자기계발, 두 마리 토끼를 원한다면 민음사의 ‘인생일력’이다. 동양고전 60여 종에서 뽑은 365개의 문장으로 채워진 이 제품은 매해 조금씩 업데이트되는 것이 특징이다. 올해에는 계묘년을 맞아 달과 별, 토끼를 형상화한 이미지를 품었다. 파란색과 형광빛이 도는 주황색이 어우러져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없다. 달력에는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면 베껴 적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고, 특별한 날에는 낱장에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해보라” 등의 팁도 기록돼 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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