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참호전처럼 총질만… 보복의 원한 정치로 변질”
우리 사회가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보다 훨씬 위험한 것은 사회 분열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내부적으로 침식시킨 이념 갈등, 계층 갈등,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정도는 사회 분열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다양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갈등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사회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자체는 사회를 분열시키지 않는다. 다양한 갈등이 두 개의 대립적인 진영과 전선으로 단순화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두 동강으로 분열된다.
다양한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치가 바로 사회 분열의 주범이다. 우리 정치는 이미 오래전에 전쟁이 되었다. 분열과 분노의 정치를 끝내겠다거나 새로운 소통과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말은 선거 캠페인 동안만 상투적인 수사학으로 잠시 등장하고, 선거 이외의 기간에는 정치가 오히려 더 살벌한 전쟁이 되는 이상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 불참하고 양산에 내려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난 사건은 우리 정치의 진영화와 전선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사실 누가 해도 상관없는 보편적인 진리이다. 민주주의가 어떤 점에서 후퇴했는지, 어떻게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 없이 던져진 이 말은 단지 진영의 선명성만 부각시킬 뿐이다. 전선의 양쪽에서 대립하는 정치적 진영들은 상대방 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서로 비방하지 않는가? 상대방은 더 이상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다. 상대방은 제거되어야 할 적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진영 내에서도 벌어진다. “개밥에 도토리더라도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 갔어야 한다”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의 말이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정치는 1차 대전의 참호전을 방불케 한다. 우리 정치인들은 왜 싸우는지 이유도 알지 모른 채 서로 총질을 해대는 병사들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영국군이 발포하면 독일군이 발포하고, 양측은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 독일군이 폭격으로 다섯 명을 죽이면, 영국군도 집중 사격으로 똑같이 독일군 다섯 명을 죽였다. 진격할 의도가 없이 전선이 정체된 상황에서 남아있는 것은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었다. ‘네가 나를 죽이면 나도 너를 죽인다’는 부정적 복수의 전략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열시킨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복수의 전략은 르상티망, 즉 원한 감정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어떤 가치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면서 오직 상대방에 대한 복수로 혐오감을 부추기는 반동 행위가 바로 ‘르상티망’이다. 서로를 병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혐오감에 기반한 ‘원한 정치’는 결코 타인을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제는 갈등을 해결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혐오감을 이용하고 확산함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정치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만이 옳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독선주의에 갇혀 있다. ‘우리 안의 사람’과 ‘우리 밖의 사람’을 적대적으로 구별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사회의 여러 갈등들을 단일 전선으로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국민을 대변한다는 포퓰리즘을 통해 우리 사회를 ‘여기 아래에 있는 우리’와 ‘저기 위에 있는 그들’로 수직적으로 분열한다.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적대적 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혐오 표현으로 경쟁한다.
그런데 두려운 것은 보복의 원한 정치가 일단 시작되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의 모욕이 새로운 모욕으로 이어지고 다시 거기에 대한 보복이 이어지는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그 끝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사회 분열이고 붕괴이다. 우리의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이러한 위험을 직시하고 긍정적 팃포탯의 윤리를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네가 나를 살리면, 나도 너를 살린다는 통합의 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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