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가면 잡상인 취급, 난 앵벌이 교수

김은경 기자 2023. 1. 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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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교수가 밝힌 지방대 실태 “영업사원으로 전락”
/일러스트=이철원

“학과에서 나를 앵벌이 교수로 내보냈다. 학생 모집하러 고등학교 교무실에 들어가면 선생님들이 잡상인 보듯 했다. ‘팸플릿 저쪽에 두고 가세요.’”

부산의 한 사립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20년 여름 퇴직한 한모(65)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입시철마다 신입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고교 교무실을 돌아다니며 홍보했던 눈물겨운 ‘영업 전쟁’을 생생하게 전했다.

한씨가 있던 대학은 약 10년 전부터 가을마다 영화관에 학생들을 모아 입학 설명회를 했다고 한다. 설명회가 끝나면 영화표를 사서 교사와 학생들 영화 관람을 시켜줬다. 그는 “한번은 교사들이 ‘이 영화는 다른 대학 설명회 때 본 건데…’라며 불평하는 걸 듣고 굴욕감이 치밀어 올랐다”고 했다. 학교에 커피·간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거나 비싼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건 당연하고, 식당에 못 온 교사 몫으로 배달까지 시켜줘야 했다고 한다.

원서를 제출한 학생들에게 “꼭 등록해달라”고 전화를 돌리는 것도 교수 몫이다. 몇 날 며칠에 몇 번 전화했는지 대학에 보고해야 했다. 이렇게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정원을 채우기 위해 주변 지인과 친척들에게 읍소하러 다녔다. 대학 다니기엔 나이가 많은 지인들에게 고교 성적표를 떼 ‘가짜 만학도’로 등록해 달라고 빌었다. 대학은 이렇게라도 학생 모집을 못한 학과는 단칼에 폐지했다. 이 대학에선 2017년부터 경영학과가 없어져 한씨는 퇴직 전까지 공대 소속이었다고 한다.

한씨는 대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할 교수가 입학생을 모집하는 ‘영업사원’으로 전락한 현실에 좌절해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대학을 뛰쳐나왔다고 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연구·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본지 통화에서 “대학이 대학이 아닌 지 오래”라며 “비리 사학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을 퇴출할 실질적인 방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지방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정시 대학 입학 정보 박람회장의 모습. 상당수 지방대학은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자 학생 유치를 위해 교수들이 고교 교사들에게 읍소하고 있다. 교수들에게 발전기금을 강요하는 곳도 적지 않다. /뉴스1

학령인구 감소로 교수들이 직접 신입생을 끌어오기 위해 나서야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북의 한 사립대 교수는 “이제는 익숙한 장면이라 고교에선 귀찮아하면서 가장 막내 선생님에게 떠넘긴다”고 했다. 그는 “교수 한 명당 최소 신입생 10명을 데려오는 게 암묵적 룰”이라며 “교무실에 찾아가 굽신거려서 얻는 수확이 많진 않지만 모든 교수가 하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충청 지역의 다른 대학교수는 “교무실 앞에 ‘대학 관계자 출입금지’가 붙어있거나 담당 교사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제대로 말도 못 붙여보고 명함과 입시 요강만 주고 돌아온 적도 허다했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이런 박대를 당하면서도 신입생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학생 수가 줄어든 데다 15년째 등록금은 한 푼도 올리지 못해 재정이 파탄 났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156곳 사립대는 2017년부터 5년째 적자를 내고 있다. 2021년 적자 규모는 1555억원에 달했다. 등록금 수입은 평균 520억원으로 2011년(563억원) 대비 43억원가량 줄었다.

특히 지방대는 생존 위기에 몰려 있다. 사상 최악의 대학 신입생 미충원 사태가 벌어진 지난 2021학년도 입시에서 전국 대학이 채우지 못한 정원은 4만586명(미충원율 8.6%)이었는데, 이 가운데 3만458명(75%)이 비수도권에 몰려 있었다. 작년에는 미달 인원 3만1143명(6.7%) 중 2만2447명(72%)이 지방대에서 나왔다.

교수 승진이나 성과급 평가에 신입생 모집 실적을 반영하는 대학도 있다. 청주 서원대는 교원인사규정을 고쳐 2020년부터 인사 때 ‘신입생 충원 실적’ ‘입시 등 대외홍보 실적’ 등을 평가 항목에 넣었다.

심지어 교수들에게 발전기금을 강요하는 곳도 적지 않다. 천안에 있는 한 대학에서는 교수 임용이나 승진 심사에 발전기금 납부 실적을 반영했다가 교수들이 단체로 들고일어나 논란이 되자 평가 항목에서 삭제한 일이 있었다. 한씨는 “사립대 교수는 일반인이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박봉인데도 ‘발전기금’을 내라고 음으로 양으로 요구했다”며 “파리 목숨인 교수들이 발전기금을 ‘쾌척’하고 그 액수와 명단이 매일 공개됐다”고 했다.

일부 지방대는 ‘돈만 내면 입학시켜 주는 곳’을 넘어, 이제는 돈을 주고라도 학생을 데려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년 전부터 입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아이패드·노트북 등 고가 전자기기를 특전으로 내거는 대학이 늘고 있다. 올해도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치열한 유치전이 벌어졌다. 대전 배재대는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모두에게 첫 학기 장학금 100만~150만원씩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립 전문대인 김포대는 모든 신입생에게 고(高)사양 노트북을 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국내에서 학생 유치에 실패한 지방대는 유학생이나 어학연수생으로 빈자리를 채우기도 한다. 그런데 일부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모집하다 보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유학 비자(D-2)를 취득해 한국에 들어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된 외국인이 2018년 1680명(D-2 비자 취득자 중 1.56%)에서 지난해 9817명(7.13%)으로 급증했다. 유학생은 사전 허가를 받고 정해진 시간·직종에서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데 이를 어기고 불법 취업한 경우 등이다. 애초에 취업 비자보다 문턱이 낮은 유학 비자로 들어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가짜 유학생’이 상당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단 신입생을 채우고 봐야 하는 대학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방대 위기는 지역 소멸을 앞당기고 결국 국가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교육부는 대학 육성 권한을 대폭 지역으로 넘겨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지방대 살리기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에선 살아남기 어려운 한계 대학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교육부는 지난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영위기대학’ 구조 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립대 법인 재산 처분이나 대학 통·폐합 특례를 줘서 회생 기회를 주고, 이렇게 해도 회생이 어려운 경우는 법인이 해산하고, 남은 재산을 출연해 사회복지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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