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寶 토끼에 김혜수 닮은 청자까지… 하늘빛 닮은 비색에 빠져 ‘청자멍~’

허윤희 기자 2023. 1.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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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새 단장 중앙박물관 ‘청자실’
’사유의 방’ 잇는 명소 될까
12세기 고려청자 절정기에 탄생한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토끼 세 마리가 향로를 등에 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의 핵심 공간인 '고려비색' 방에서도 정중앙을 차지한 작품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귀를 쫑긋 세우고 가지런히 발을 모은 토끼 세 마리가 무거운 향로를 등에 지고 있다. 천년 세월, 한결같은 자세로 받치느라 얼마나 허리가 아팠을꼬. 음각으로 그린 눈매와 검은 철화점 찍어 완성한 눈동자에선 영민함이 느껴진다. 12세기 고려청자 절정기에 탄생한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바닥에서 몸집의 몇 십 배를 지탱하는 세 토끼가 앙증맞은 ‘신 스틸러’다.

지난해 11월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청자실’이 ‘사유의 방’을 잇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청자 향로. 젊은 관람객들은 “계묘년 새해, 귀한 국보 토끼가 여기에 있다”며 비취색 영롱한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어두운 공간에서 명상하듯 청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달멍(백자실 달항아리), 반가사유상멍(사유의 방)에 이어 청자멍”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의 바닥에 있는 토끼 세부 모습. 음각으로 눈매를 그리고 검은 철화점을 찍어 눈동자를 완성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비 갠 뒤 하늘빛 닮은 청자에 빠져들어

전시는 고려청자의 시작과 비약적 발전을 보여주며 그 문을 연다. 10세기 무렵 청자를 만들기 시작한 고려인들이 불과 150여 년 만에 고려청자의 독자적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과정이 도입부에 한 줄로 펼쳐졌다. 이애령 미술부장은 “초기의 진한 올리브색에서 완벽한 비색이 나오기까지 150년에 응축된 열망과 실험을 상상할 수 있다”며 “폭발하는 창의적 에너지가 현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고 했다.

하이라이트는 ‘고려비색’ 방. 절정기 비색 청자 중에서도 조형미 뛰어난 상형 청자(식물·동물·인물 모양을 본떠 만든 청자) 18점을 엄선해 모았다. 어두운 방 안, 맑은 비취색 청자에만 조명이 떨어져 관람객을 압도한다. 한 30대 여성은 “하늘 빛깔 같기도 하고 오묘하게 빠져든다. 넋을 놓고 한참 바라봤다”고 감상을 남겼다. 특히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를 비롯해 ‘청자 사자 모양 향로’ ‘청자 어룡 모양 주자’ ‘청자 사람 모양 주자’ ‘청자 귀룡 모양 주자’ 등 국보 다섯 점을 각각 독립 진열장에 전시해 사자 궁둥이까지 360도 돌며 감상할 수 있다.

비색 청자 중에서도 조형미 뛰어난 상형청자 18점을 엄선한 '고려비색' 방. 특히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등 국보 5점을 단독 진열장에 전시해 360도 돌며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은 1123년 고려를 방문한 뒤 남긴 ‘고려도경’에서 “고려인들은 청자 종주국인 송나라 청자의 비색(祕色)과 구별해 고려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이라 불렀다”고 썼다. 일찌감치 많은 예술인이 비색을 보며 감탄했다. 월탄 박종화는 고려청자를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같다고 노래했고,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청자의 비색을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에 비유했다. 허형욱 학예연구관은 “사실 청자는 자연빛 아래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답다. 실내 전시장에서 자연광과 최대한 가깝게 비색을 구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조명·조도 실험을 했다”고 했다.

상형청자 18점을 엄선해 전시한 '고려비색' 방.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벽·소리·기포까지...디테일의 힘

전시장 곳곳에 디테일이 숨어 있다. 청자실에 들어서면 먼저 귀가 열린다. 미디어 아티스트 다니엘 카펠리앙이 작곡한 명상 음악 ‘블루 셀라돈(Blue Celadon)’이 잔잔하게 흐른다. 박물관 측은 “관람객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오롯이 청자와 마주할 수 있도록 소리로 먼저 다가가고 싶었다”며 “음과 음 사이에 긴 숨을 두는 곡을 찾다가 이 공간을 위해 새로 작곡을 부탁했다”고 했다.

벽에도 비밀이 있다. ‘고려비색’ 방 배경은 먼저 청록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그물처럼 짠 검은 장막을 드리워 두 가지 색이 은은히 겹쳐 보이게 했다. 고려 불화에서 관음보살이 투명한 베일을 걸친 것처럼 고려의 느낌을 벽에까지 구현한 것이다. 국보 ‘청자 참외 모양 병’을 1억 화소 고화질로 찍은 영상에선 보글보글 올라온 기포까지 균일한 청자 표면을 확인할 수 있다.

국보 '청자 음각 연꽃 넝쿨무늬 매병'. 당당한 관능미가 느껴지는 12세기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장 섹시한 고려청자’도 인기다. 당당하게 벌어진 어깨에서 매끈한 곡선으로 떨어지는 국보 ‘청자 음각 연꽃 넝쿨 무늬 매병’을 가리키면서 이애령 부장은 “드라마 ‘슈룹’의 중전 김혜수처럼 기품 있는 관능미가 느껴지지 않느냐”며 “우리는 이 매병을 볼 때 시선이 위부터 아래로 내려가지만 도공의 손길은 밑에서 위로 차오른다. 곡선과 각도까지 치밀하게 계산해서 올렸다는 점에서 여간 명품이 아니다”라고 했다.

깨진 조각들도 전시장 한편을 차지했다. 전라북도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한 상감청자 조각들이다. 파초 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 풍경이 묘사돼 있어, 자연을 사랑하고 동경한 고려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박물관은 “개관 1년 만에 65만 관람객을 모은 ‘사유의 방’처럼 ‘고려비색’도 내·외국인들에게 박물관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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