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 과학적으로 일리 있는 이유
뇌, 신체 한계 예측해 설정했다가 의지력 생기면 비상 에너지 발동
기대의 발견
데이비드 롭슨 지음|이한나 옮김|까치|422쪽|2만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카타르 월드컵 이전에 이미 여러 스포츠 스타가 증언했다. 올림픽에서 아홉 차례 금메달을 따 ‘날아다니는 핀란드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중·장거리 육상선수 파보 누르미는 말했다. “마음이 전부다. 근육은 한낱 고무 쪼가리에 불과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모두 나의 마음가짐이다.” ‘21세기 최고의 마라톤 선수’라 불리는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는 “어떤 사람을 더 잘 달리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차분하고 집중이 잘된 상태라면 몸은 그냥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과학적으로도 근거 있는 이야기다. “근육 위에 마음 있다”고 BBC 선임기자 출신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주장한다. “박빙의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 경기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마음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뇌에서 기인한 ‘의지’가 고갈되는 정신적인 과정이, 과도한 운동으로 젖산이 축적되는 생화학적 과정과 마찬가지로 근육의 피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신체를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어디까지 혹사시킬 수 있는지 예측하고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5㎞ 달리기 도중이든 철인 삼종 경기의 마지막 코스에서든 ‘한계에 다다른’ 느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건다.”
신체의 한계를 설정할 때 뇌는 아주 보수적이다. 그러나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면 뇌의 한계 설정에도 융통성이 필요한 법. 심리적으로 작은 계기가 마련되면 비축했던 비상 에너지를 봉인 해제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여러 실험 결과 운동선수들은 혼자 훈련할 때보다 팽팽한 경쟁 상황에서 더 나은 성적을 낸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만 발동하는 비상 에너지 때문이다.
‘예측 기계(prediction machine)’라는 개념이 이 책을 떠받치는 축이다. 뇌는 우리가 방에 들어가기 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실제로 마주하는 것들과 비교한다. 스스로의 예측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일부 신호는 무시하고 또 다른 신호는 약화시킨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눈앞의 장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해석’에 도달한다. “우리는 실제 눈앞의 대상이 아닌 우리가 예측한 것을 본다.”
‘맛있게 먹으면 0 칼로리’라는 조크는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다. 저자는 금식(禁食)보다는 식도락이 다이어트에 더 효과적이라 주장한다. 뇌의 예측 작용 탓에 음식의 영양분에 대한 기대가 소화나 대사와 같은 신체적 반응에 영향을 주기 때문. 적은 열량을 섭취한다고 생각하면 우리 몸도 맞춰 반응한다. 포만감을 덜 느껴 헛헛함을 경험하며 남은 지방을 보존하기 위해 대사량을 확 줄인다. 이 ‘결핍형 마음가짐’ 때문에 스파르타식 다이어트 식단을 따르고도 기분이 좋아지는 맛있는 음식으로만 식사할 때보다 살을 빼기가 더 힘들어진다. 다이어트 중인 131명을 3개월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 케이크 같은 간식을 ‘죄책감’과 연관시켜 생각한 참가자들은 체중이 증가했다. 반면 ‘축하’와 연관시킨 이들은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갔다. 미식을 즐기는 프랑스인의 체질량 지수가 독일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 호주 등보다 낮은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의 기대가 어떻게 삶을 특정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마음이 젊은 사람이 신체 나이도 젊고, 굳건한 의지가 일에 대한 생산성을 높인다는 오래된 믿음에 과학적 근거를 부여한다.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 믿고 복용한 환자들이 호전되는 ‘플라세보(placebo) 효과’와 함께 부정적인 기대가 실제로 신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되는 ‘노세보(nocebo) 효과’도 소개한다.
모두가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새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헛된 위로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이 솟아오른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옛말이 지겹다면 저자가 책에 소개한 이 문장을 기억하자. “마음은 제자리에 머무르며 지옥을 천국으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존 밀턴, ‘실낙원’ 중에서.) 원제 The Expectatio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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