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기후소송 판결을 기다리며
“기후위기는 생명권, 식량권, 건강권, 주거권 등 인권에 직간접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 의무로 인식하고, 기후위기를 인권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지난달 30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송두환)가 정부(대통령)에 보낸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의견 표명’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인권위는 이 의견 표명에서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유형화하고 위협요소를 분석하여 보호 및 적응역량 강화대책을 세울 것 △IPCC 제6차 평가보고서(2022)의 국제기준을 고려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설정하고, 이후의 감축목표도 설정하여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할 것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때는 기업뿐만 아니라 농어민,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소비자 등의 참여를 보장할 것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 및 정책 도입을 통해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기후위기를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인권학자인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저서 <탄소사회의 종말>에는 그 어려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기후위기는 정책적 해법을 추구하는 반면, 인권은 정의·불의의 관점에서 사법적 해법을 추구한다. 기후위기는 미래예측을 기반으로 하지만, 인권은 사건이 벌어진 이후의 상황을 다룬다. 기후위기를 주로 다루는 과학계가 환경·생태·경제의 관점을 가진 반면, 인권은 당위의 관점(경제적 손익을 따지지 않음)을 취한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각자 발전해온 두 문제는 점차 통합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인권을 위협하는 핵심 요소이며, 인권의 관점을 취한다면 기후위기 대응은 경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이다.
이번 인권위 의견 가운데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라’고 명시한 대목은 특히 중요하다. 2021년 4월 독일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 판결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독일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 소속 청소년들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203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55%로 설정하고 그 이후의 목표는 세우지 않은 당시 기후보호법은 감축 부담을 2030년 이후로 부당하게 미룸으로써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소송을 국가를 상대로 제기했고, 독일 헌재는 이를 받아들였다. 판결 이후 독일 정부는 2030년 목표를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0%로 설정했으며 탄소중립 목표연도를 2045년으로 앞당겼다.
인권위가 2020년 12월 기후위기 피해자 40명의 진정을 받아 2년간의 실태 조사와 법리 검토를 거쳐 발표한 이번 의견은 강제력이 없으므로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도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정도를 넘어 그것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끌고 가는 현 정부가 이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에 유사한 내용의 헌법소원이 청구된 상태이므로, 그 영향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헌재에는 △당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소극적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해 청소년의 환경권, 생명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청소년기후행동 헌법소원(2020년 3월) △새로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이 실질적인 기후대응을 할 수 없어 국민의 기본권을 방기한다는 기후위기비상행동의 헌법소원(2021년 10월) △역시 탄소중립기본법이 정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아기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아기기후소송단의 헌법소원(2022년 6월) 등 3건이 청구돼 있다.
정권교체에 따라 정책이 오른쪽과 왼쪽을 시계추처럼 오가는 현실에 어느 쪽이든 신물이 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모조리 뒤집는 데 분통을 터트리는 진보 지지자들이라면, 과거 진보정부가 보수정부의 정책을 뒤집을 때 보수 지지자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역지사지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부동산, 복지, 통일, 기후위기 심지어 청년들의 죽음까지 모든 걸 정치논리로 재단하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런 현기증 나는 정치현실을 타개하는 길은 미래에 대한 합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시각을 용산 대통령실이나 여의도 국회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잇는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판단이 올해는 반드시 나오길 기다린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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