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같이 자고, 같이 쉬자

기자 2023. 1. 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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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소비를 할 때 전망이 핵심이라고들 한다. 카페를 가도 이왕이면 뷰맛집이 대세고, 숙박업은 당연히 가든뷰, 오션뷰 등에 따라 차등요금이 적용된다. 나의 집은 강도 숲도 아닌 대형마트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마트뷰랄까. 물론 장점은 있다. 마트 앞 포장마차 사장님이 영업을 하시는지, 지금 마트에 사람이 많은지 적은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땐 자정까지 불이 훤하게 켜 있는 마트를 늘 봐야 하는 것도, 붐비는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와 나오는 차들의 클랙슨 소리를 늘 들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가끔 찾아오는 주말의 평화가 감사하다. 한 달 두 번의 일요일 의무휴업제도로 마트가 쉬는 덕분이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이 꽤 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어디 맡겨두고 일하러 갈 수가 없었던 여성들, 혹은 그 고비를 넘겼대도 막상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고 일찍 집에 오면서 어쩔 수 없이 퇴사하고 양육을 도맡았던 경력단절 여성들 중 많은 수가 마트를 취업처로 삼는다. 경력이 단절된 탓에 기존에 몸담았던 직장은 너무 먼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육아와 살림을 맡으면서 익숙해진 마트는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직장이 된다. 그래서 동네 언니들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가 커갈수록 마트의 구인공고가 매력적으로 보인단다. 그런 이유들로 동네에서 약속을 잡을 때 가장 만만한 날은 마트가 쉬는 일요일이다. 느슨한 동네모임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이유도 알고 보면 모두가 일요일에 쉴 수 있어서다. 어느 하루가 아니라, 남들이 쉬는 날 같이 쉰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일상을 주변과 함께 맞출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최근 대구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당사자’들과 협의한 ‘상생’ 방안이라는데, 정작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마트에서 보내는 마트노동자들은 그 당사자로서 의견을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한 달에 두 번은 가족과 친구가 쉬는 일요일에 같이 쉬게 해달라고, 남들 쉴 때 같이 쉬는 휴식권을 보장해달라는 어쩌면 당연한 그 내용을 2023년에 다시 외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영업제한시간이나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바깥 문만 닫아둔 채, 휴일에도 밤에도, 누군가는 주문을 접수하고 누군가는 물건을 담고, 포장을 해서 배송을 하겠다니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는 물류센터를 동네마다 두는 셈이다. 365일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유통업체의 과로사 문제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제 대형마트까지 24시간 영업에 동참하라고 내모는 셈이다.

정말 마트 노동자들의 건강은 괜찮을까. 밤샘노동이 심혈관계 등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는 이미 차고 넘친다. SPC공장의 팔 끼임 사망사고 역시 밤샘노동이 끝날 무렵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주야가 바뀐 근무는 생체리듬을 망가뜨리고 판단력이나 집중도를 떨어트려 여러 사고의 위험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마트라고 다를 리 없다. 정부가 유통공룡들의 눈치보기에 앞서 안전한 노동과 건강한 삶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모른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탄소는 더 적게 쓰면서, 노동자는 더 건강하게 일하는 2023년을 소망한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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