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의 NBA다이브] 모두가 사랑한 '역대 최악의 편파 해설자'
[점프볼=김호중 객원기자] 그의 해설은, 처음 들으면 상당히 불쾌하다.
공식 방송인데 괴성을 막 지른다.
"심판에게 가볼게. 나 말리지마! 코트에 내려갈거야"
"심판들, 정신좀 차려! 말도 안 돼!"
본인 팀 선수가 득점하니, 또 소리를 지른다.
"그렇지! 역시 리틀 가이(아이재아 토마스)야! 그가 해낼줄 알았어!"
처음보면, 내가 듣고 있는 것이 공식 방송 해설위원인지, 방구석 소파에 앉아서 응원팀을 응원하는 할아버지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 대부분 불쾌감 때문에, "도대체 해설 누구야?"며 인터넷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치고, 그의 경력을 보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가 왜 편파해설을 하는지 이해가 되고, 어떤 부분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편파 해설을 수긍하고, 응원하기 시작한다.
오늘 <NBA 다이브>에서 다뤄볼 인물은 보스턴 셀틱스의 '셀틱 프라이드'를 건립한 인물, 선수, 감독, 해설로 팀을 위해 60년을 헌신한 남자, '톰 하인슨'이다.
톰 하인슨.
NBC스포츠보스턴 소속.
30년차 보스턴 지역방송 해설자였다.
시중에 있는 보스턴 셀틱스 영상을 보고있다면, 90%의 확률로 하인슨의 목소리가 들어가있다고 보면 된다. 셀틱스 지역방송으로 송출된 구단의 모든 경기는, 하인슨의 괴성이 담겨있다.
그는 독특한 해설자였다. 경기 중의 괴성만봐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다.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은 쉽게 느낄 수 있다.
보스턴의 구단주 윅 그루스벡에 의하면 선수단의 아침 식사, 저녁 식사에도 매번 참여할만큼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하인슨은 해설위원이죠. 근데 선수단 아침 식사, 저녁 식사에 동행해서 선수단에게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어요."
이 해설자는 왜 선수들에게 간섭했을까?
실제로 선수단은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단순 립서비스가 아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얘기한 부분이다.
그럴만하다.
본인들과 얘기하고 있는 노장 해설은 그들과 공감대가 있다. 바로,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스턴에서 선수로 뛰었던 과거가 있다는 것이다. 선수로서, 상당히 잘했다.
선수를 은퇴한 뒤, 보스턴에서 감독도 맡았다. 감독으로서도 상당히 잘했다. 그리고 노년기는 해설로서 보스턴 구단과 함께하고 있다. 약 70년간, 보스턴 셀틱스와 함께하고 있다. 선수들도 그 정도면, 말할 자격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구단주인 제가 얘기했어요. 너희들이랑 밥 먹는 저 남자, 방송인은 맞는데, 그냥 방송인이 아니다. 우승 반지가 10개 있는 방송인이다. 꽤 들을만한 조언들일 것이다" 그루스벡은 하인슨이 "보스턴의 모든 것이었다"며 극찬했다.
#빌 러셀은 왜, 신인왕이 없을까?
이 편파해설자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지금 매스컴에 비춰진 하인슨의 모습은, 웃긴 편파 해설자 정도로 남겨져있다.
팬들이 그의 이력을 자세히 보면, 깜짝 놀라는 이유다.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였던 빌 러셀. 상이란 상은 다 받아본 그의 수상 이력에 빠져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신인상.
러셀을 제치고 신인상을 수상한 남자가 바로 이 편파해설자, 톰 하인슨이다.
하인슨은 보스턴 구단의 창단멤버 격이다. 1956년, 보스턴의 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데뷔 시즌부터 평균 16.2점 9.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그가 신인왕 경쟁에서 물리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드래프트 동기 빌 러셀이었다. 하인슨의 NBA 커리어는 화려하게 시작했다. 첫 시즌부터 신인왕-올스타-우승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후 행보는 막힘이 없었다. 하인슨은 주전 파워포워드로 뛰면서 불도저를 연상시키는 전투적인 면모를 보였다. 팀의 골밑을 러셀과 확실히 책임졌다.
보스턴은 하인슨이 데뷔한지 3년차인 1959년부터 10년차인 1965년까지. 7시즌 연속 우승을 거머쥐며 NBA 역사상 전무후무한 왕조를 달성한다. 현재 몇몇 팀들에게 붙은 왕조라는 이름이 붙곤 하는데, 보스턴의 7시즌 연속 우승 기록을 들으면 다소 무색해지고는 한다. 그 핵심 멤버가 하인슨이었다.
#화끈한 리더십, 훌륭했던 감독
NBA팬들이라면 NBPA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National Basketball Player Associaion, NBA 선수 협회다. 쉽게 얘기해서, 선수들 이익 보호 단체다. NBPA를 통해 선수들은 권리를 보호받았고,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는 창구를 획득하였다. (현 회장은 뉴올리언스 CJ 맥컬럼)
하인슨은 NBPA의 초기 멤버다. 2대 회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1대 회장이라고 봐도 된다.
최초로 NBPA를 개설한 것은 하인슨의 팀 동료이자 스타 포인트가드였던 밥 쿠지. 하지만 쿠지는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이내 부담을 느꼈고, 당시 팀내 막내격이었던 하인슨에게 회장직을 넘겨버린다.
프로에 온지 고작 2년, 하지만 졸지에 그는 모든 NBA 선수들의 수장이 되었다.
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하인슨은 물 만난 물고기마냥, 회장직을 찰떡같이 수행했다.
NBA 선수들은 은퇴한 뒤 연금을 받는다. 지금은 당연한 상식이다. 팀내 트레이너가 한 두 명씩 배치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인슨이 정말 힘들게 도입한 제도다. 협회 회장이 된 뒤, 하인슨은 연금 제도 및 트레이너 배치를 당시 NBA 총재였던 월터 케네디에게 건의했는데, 케네디는 선수 협회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무시한다.
그러자 하인슨은 큰 사고를 치기로 결심한다.
1964년 올스타전, NBA 역사상 첫 방송중계가 예정된 경기였다.
하인슨은 이 경기서, 선수들에게 '참가 거부'를 요구한다.
선수들이 뛰지않겠다고 선언하자, NBA 직원들은 난리가 났다. 앞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면서 선수들을 협박했지만 선수들은 꿈쩍도 안했다. 팽팽한 대립. 그들 사이를 보스턴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정확히 22분이 지나자, 케네디 총재가 항복을 선언했다. 그토록 기대하던 방송 중계 경기가 지연되고 있었다. 그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확실히 얘기했고, 그제서야 선수들은 경기장으로 향했다. NBA 역대 첫 중계 경기가 22분 지연 출발된 이유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하인슨의 타고난 리더십이 얼마나 훌륭한지 엿볼 수 있다.
보스턴 구단이 하인슨이 은퇴하자마자 팀 감독을 맡긴 이유다. 1969-1970 시즌부터 하인슨은 매스컴에 보스턴 감독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하인슨은 첫해부터 팀을 68승 14패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을 거머쥐었다. 모두가 예상했듯, 리더십 스타일은 상당히 화끈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심판 판정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하인슨은 1974년, 1976년 팀을 우승시켰다. 10년 조금 안되게(1969년부터 1978년) 셀틱스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427승 263패의 호성적을 기록한 뒤, 감독직을 내려놓는다.
선수로서, 우승 8회, 올 NBA팀 4회, 영구 결번.
감독으로서,우승 2회, 감독상 1회, 압도적인 승률.
하인슨에게는 굉장한 이력이 있다. 선수 및 감독으로서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이다. NBA 역사상 5명밖에 이룩하지 못한 업적이다.
보스턴 선수로 9년 뛰었고, 보스턴 감독으로 9년 지냈다. 사실, 보스턴 셀틱스 일원으로 해볼 것 다 해본 것처럼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마이크 고먼 캐스터입니다. 오늘도 제 파트너, 톰 하인슨과 방송 진행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셀틱스가 이기기 참 좋은 날씨네요. 상대를 밟아버리자고요!"
이들은 처음, 래리 버드의 경기를 해설했다.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한 경기, 두 경기, 셀틱스는 우승을 차지했고,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어느새 이들이 중견급 방송인이 되자, 폴 피어스-케빈 가넷이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또 시간이 흘렀다. 이들은 엄연한 베테랑이 되어있었다. 아이재아 토마스가 이끄는 경기들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는 고인물이다. 제일런 브라운-제이슨 테이텀 듀오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30년의 시간동안 한 자리만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실로 위대한 행보다. 선수로 9년, 감독으로 9년.그리고 해설자로서, 30년을 지낸 것이다. 한 구단에서만 말이다. 그는 셀틱스의 우승 17회, 파이널 진출 21회에 모두 기여한 유일한 인물이다.
#11월 11일
2018-2019 시즌. 셀틱스 중계를 킨 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익숙한듯, 괴성 중계가 흘러나올 것을 예상하면서 방송을 켰는데, 정상적인(?) 해설이 나오고 있던 것이다.
톰 하인슨 해설의 결장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건강 악화로 현장 중계가 제한된 것. 이듬해 2019-20시즌, 코로나 펜데믹 영향으로 올랜도 버블에서 경기가 개최될 때에는 아예 참석하지 못했다. 무려 두 달간 결장한 것이다.
선수 시절 '화이트 맘바'로 불렸던 브라이언 스칼라브리니가 대타로 긴급하게 투입되었다. 해설 초보였지만, 기대 이상 수준급 해설을 선보였다. 드디어 NBC스포츠보스턴의 해설이 타 팀처럼 평범하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스턴 해설이 처음으로 수준급이라고 칭찬받기 시작한 순간, 팬들은 30년간 그들을 지킨 괴성 해설이 들려오지 않는 것에 대해 공허함, 그리고 일종의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인슨은 결장을 이어갔다. 건강이 허락되기만하면, 병원에서 어김없이 전화 인터뷰에 응하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2020-2021시즌을 앞두고, 보스턴은 30년만에 해설자를 교체했다. 화이트 맘바가 공식 해설자로 부임한 것이다.
그리고 2020-2021시즌이 개막한지 두 달여가 흐른 시점, 2020년 11월 11일, 톰 하인슨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혈전으로 인해, 87세의 나이로 별세한 것이다.
#끝으로
그렇게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전드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NBA를 30년본 팬이 있다고 해보자.
그야말로 헤비팬으로 분류되는 팬일 것이다. NBA 오래봤다고 자부할만하다.
하지만 이 30년차 팬도 '톰 하인슨'을 알고있다면, '명예의 전당 출신 선수', '선수협회장', '올해의 감독'으로서 하인슨이 보여준 모습은 알 수 없다. 하인슨하면, 그저 괴성 많이 지르는 편파해설자 정도로밖에 모를 것이다. NBA 시청 경력이 30년 이하인, 99%의 NBA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하인슨이 선수 시절, 그리고 감독 시절,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되새겨야하는 이유다. 그는 선수 시절 8번, 감독으로서 2번 우승을 한 구단에서 차지한, 전설 중의 전설임을 명심해야한다.
그래야지만, 그가 30년동안 남긴 편파 해설이 납득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인슨만큼 한 구단에 충성한 인물은 NBA역사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살에 선수가 된 이후, 80대가 될 때까지 보스턴만을 외친 사나이였다.
셀틱스 프라이드. 보스턴 셀틱스 구단의 독특한 문화로, 셀틱스 일원임에 자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셀틱스 프라이드를 가장 잘 구현한 인물은 하인슨이다. 빌 러셀도, 래리 버드도. 그 누구도 하인슨만큼 셀틱스 프라이드를 보여주지 못했다. 셀틱스 팬이라면, 그를 영원히 기억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그의 자극적인 편파해설이 생각나는 밤이다.
#사진=AP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NBC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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