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심장외과 의사의 ‘수술대 35년’ 자전적 에세이

정진수 2023. 1. 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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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5ℓ의 피를 뿜어내며 힘차게 펄떡이는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다.

저자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심장 수술의 결정적 후유증 중 하나인 '관류 후 증후군'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발견하고, 이후 옥스퍼드 대학병원에 심장센터를 설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세계적인 심장외과의다.

저자는 정신이상과 나르시시즘, 냉담함을 심장외과의의 '필수요소'로 꼽았지만, 에피소드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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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의 심장/스티븐 웨스터비/서정아 옮김/지식서가/1만9000원

분당 5ℓ의 피를 뿜어내며 힘차게 펄떡이는 심장은 ‘생명’의 상징이다. 그만큼 문제가 생기면 다루기 까다로운 기관이다. 수술 시 신체 기관 대부분은 제자리를 지키지만, 심장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잘못 건드리면 격렬하게 피를 토해내고, 서툴게 다루면 리듬이 깨져 심정지가 올 수 있다. 이 예민한 심장을 손으로 직접 쥐어짜기도 하고, 체온 조절을 통해 활동을 늦췄다가 빠르게 하기도 하며 ‘생사’의 최전선에서 환자를 구해내는 이가 바로 심장외과의다.
스티븐 웨스터비/서정아 옮김/지식서가/1만9000원
신간 ‘칼끝의 심장’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병원 등에서 35년간 1만1000여건의 심장 수술을 수행한 스티븐 웨스터비가 경험한, 현대 심장학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일화를 되짚은 책이다. 저자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심장 수술의 결정적 후유증 중 하나인 ‘관류 후 증후군’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발견하고, 이후 옥스퍼드 대학병원에 심장센터를 설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세계적인 심장외과의다.

그의 치열하고도 ‘평범한’ 하루를 들여다보자. 오전 6시 출근해 수술 병상 확보를 위해 병원 관계자들과 설전을 벌이고, 곧바로 어린아이의 심장 수술에 나선다. 수술 중 옆방에서 전문의가 뛰어와 도움을 요청하면, 환자의 체온을 18도까지 낮추고 순환 중인 혈액을 비워내 대동맥 감염 부위를 동종이식편으로 대체하는 수술을 집도한다. 피가 솟구쳐 간호사들이 혼비백산하는 와중에도 그는 극도의 침착함을 유지한다. 수술실이 꽉 차면 중환자실에서 바로 환자의 가슴을 갈라 지혈하기도 한다. 마지막 수술이 끝나면 동이 터오고, 그는 다시 오전 회진에 들어간다.

선천성 심장 기형에 새 생명을 선사하고, 드라큘라 백작처럼 환자의 피를 빼고 저체온 상태에서 심장 수술을 단행하는 등 그의 긴박한 수술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덩달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일반인에게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지만 저자는 ‘특정한 성격’이기에 이 분야에 끌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지독하게 냉정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치열한 경쟁에서 기어코 살아남으며 성취감을 느끼는 야심가, 그가 묘사하는 심장외과의다. 가족이나 개인 생활 대신 병원과 수술에 얽매인 삶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혼율은 상당히 높다. 존스홉킨스병원 연구에 따르면 외과의사 3분의 1이 이혼을 경험한다. 특히 심장외과의 이혼율은 더 높다. 한때 딘오브듀크 의과대학 이혼율은 100%를 넘기도 했다.

저자는 정신이상과 나르시시즘, 냉담함을 심장외과의의 ‘필수요소’로 꼽았지만, 에피소드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넘쳐난다. 그는 가슴에 말뚝이 박힌 채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여성의 시야에서 말뚝을 가려주기 위해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이제 곧 잠이 들고, 깨고 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것”이라며 편안한 마지막을 맞도록 돕는다. 생의 기로에서 만나고 싶은 의사는, 이런 의사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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