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 ‘농슬라’ 100t ‘광슬라’ AI 장착 헬스기기에 “와” 탄성

심서현.최은경.박해리.고석현 2023. 1. 7.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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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신기술 경쟁
CES 2023 개막일인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LG전자 전시관 입구에 ‘올레드 지평선’이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CES) 2023’이 열리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앞에는 개막 전부터 관람객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5일 오전 10시(현지시각) 문이 열리자 “와~” 함성과 함께 인파가 물밀듯 전시장으로 밀려 들어갔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3년 만에 정식으로 치러진 행사를 보러 온 인파였다. 2021년에는 비대면으로, 지난해에는 온·오프라인으로 50% 축소된 규모로 열렸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자유롭게 음식을 먹기도 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건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주최 측은 행사 기간 약 10만명의 관람객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도 전시의 중심축은 가전제품이 많은 센트럴홀보다 모빌리티가 있는 웨스트홀이었다. 130만㎡(약 3만9000평) 규모의 웨스트홀에는 자율주행차·전기차 등이 가득해 거대한 자동차 박람회장을 연상케 했다. 테슬라는 지난해에 이어 지하 터널 ‘베이거스 루프’를 통해 전기차로 관람객을 메인홀에서 웨스트홀로 실어날랐다. 관람객들은 이날 내린 비를 피하며 도보 15분 거리를 1분 만에 이동했다. 농슬라(농업+테슬라)로 불리는 미국 농기계 업체 존디어의 인공지능(AI) 트랙터와 광슬라(광업+테슬라)인 건설기계업체 캐터필러가 전시한 육중한 트랙터도 보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노동력 부족 심해 AI 휴먼에 관심 커”

농기계 업체 존디어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트랙터. 심서현 기자
지난해 자율주행 트랙터를 내놨던 존디어의 부스 중심에는 성인 남성 키 2.5배 높이(약 4m)의 다용도 트랙터가 자리했다. 약 36m 길이의 살포용 날개가 부스를 가로지르며 관람객을 압도했다.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씨앗 위치를 식별하고, 제초제·비료 등을 살포하는 기기다. 이 회사의 에릭 크렉포드는 “최첨단 센서를 장착해 넓고 큰 농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트랙터에서 실시간으로 수집한 작물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농부가 사무실에서 일하듯 편리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옆 부스에는 캐터필러의 100t 트럭 ‘Cat777’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직원 재그 새마라와라는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자재를 빠르게 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생산성 전자 제어전략’(APECS) 기능을 탑재했다며 “이건 ‘베이비 트럭’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현장에서는 더 큰 차량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올해 CES 최고 혁신상을 받은 이들 제품은 첨단 모빌리티가 1차산업에 일으킬 혁신을 상징한다.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가 짚은 올해 CES 키워드는 모빌리티, 증강현실(AR), 메타버스 등으로 지난해와 비슷하다. 그러나 결은 다르다. 올해는 농기구·중장비의 자율주행, 헬스기기에 장착된 AR, 기업 판매용(B2B) 메타버스 처럼 기존 산업에 바로 적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술이 주목받았다.

건설기계업체 캐터필러의 무인 트럭. 심서현 기자
디지털헬스관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다쏘시스템은 뇌·심장 같은 장기의 디지털트윈을 이용한 수술 고도화 기술을 선보였고, 수면테크 기업 에이슬립과 소변 분석 진단기기의 위팅스 같은 국내외 헬스 스타트업들은 AI 기술을 활용된 헬스기기를 선보였다. 존 켈리 CTA 부사장은 “헬스케어, 웹3, 메타버스, 푸드테크, 모빌리티는 이번 쇼의 주요 분야”라면서 “AI는 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재료 기술에 가깝다”고 말했다. AI나 자율주행, VR 등이 산업 고도화 및 효율화를 이룰 새로운 ‘소재·부품·장비’인 셈이다. 이번 CES는 북적이는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맞춤 광고로 대표되는 플랫폼의 시대는 저물고 AI 반도체 같은 기반 기술을 갖춘 기업이 부상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국내 자율주행 스타트업 모라이는 도심항공교통(UAM)과 항공산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디지털트윈과 정밀지도 기술을 내놓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정지원 모라이 대표는 “이번 CES에서는 기술 자체를 자랑하기보다는 상용화됐느냐, 얼마나 효율적이냐를 보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국내 스타트업 딥브레인AI는 AI 휴먼이 고객 음성을 인식해 주문하는 대화형 키오스크를 전시했다. 키오스크 안에 등장한 이는 가상 인간이 아닌, 회사가 실존 모델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만든 가상 쌍둥이(디지털 트윈)다. 내가 가지 못하는 곳에 가상 쌍둥이가 대신 가서 일하며 나 대신 돈을 벌어오는 셈이다.

현대모비스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천재승 R&D 부문장이 90도로 바퀴가 꺾이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마이클 정 딥브레인AI 전략 담당은 “한국에서는 실감하지 못하지만 미국은 일할 사람이 없어 카페 영업시간을 단축할 정도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에서 AI 휴먼에 관심이 큰 이유”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은 총 550여곳이 참가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삼성전자 전시관 앞에는 복도까지 줄이 늘어섰다. 삼성관계자는 “개막 첫날과 둘째 날 그룹투어는 이미 몇 주 전부터 예약이 꽉 차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LG전자 부스 입구에는 올레드 플렉서블 사이니지 260장을 이어 붙인 초대형 조형물 ‘올레드 지평선’이 눈길을 끌었다. 관람객들은 자리에 서서 파도가 치고 대형 고래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한참 동안 감상했다.

미·중 갈등 탓 중국 기업 참가율 저조

헬스케어 기업 위팅스는 가정용 소변 분석기 ‘U-스캔’을 선보였다. 작은 분석기를 변기 안에 비치해 호르몬과 수분율, 단백질 균형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연합뉴스]
올해 CES에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정기선 HD현대(전 현대중공업그룹) 사장,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 등 ‘오너가(家)’ 경영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날 오후 삼성전자·LG전자 부스 등을 둘러봤다. 정 부회장은 LG전자 부스에서 무게가 998g인 초경량 노트북 ‘그램’을 직접 들어본 뒤, 옆에 있던 임원에게 “한번 들어보라”고 권했다. 이후 HD현대 전시관을 찾아 정기선 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HD현대그룹 전시관에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오른쪽)과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이번 CES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너경영인으로 꼽힌다. 그는 하루 전 미디어 콘퍼런스에 직접 나선 데 이어, 미국 경제지 ‘포천’의 100대 테크기업 경영진과 만나는 등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포천은 ‘CES 2023’ 참가 기업 중 혁신 기술을 보유한 100대 테크 기업을 선정했는데, HD현대는 탈탄소·친환경 기술력을 인정받아 여기에 포함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상무도 박람회장을 조용히 둘러본 뒤,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 등과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공장 현장점검에 나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개막식에 맞춰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지만, 수행직원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박람회장을 찾지는 못했다.

한때 침체기를 겪던 일본기업은 미래기술로 무장해 변화를 꾀하는 모습이었다. 삼성전자·LG전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부스를 마련한 소니 메타버스 체험 존에서는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체험자가 “레츠 고”를 외치며 박수 치자 10초 후 그와 똑 닮은 아바타가 메타버스에 등장했다. 머리 스타일, 옷차림뿐 아니라 움직임까지도 정교하게 표현했다. 메타버스와 별도 안경 없이 3D 효과를 내는 디스플레이를 체험하려는 대기 줄이 이어졌다. 소니와 혼다의 합작 전기차 ‘아필라’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카메라 제조업체 니콘 부스에는 건설현장 등에서 사용하는 로봇 팔, 카메라와 로봇을 결합한 오토바이 라이드존이 눈에 띄었다. 탄소 중립을 선언한 파나소닉은 입구에 태양광으로 광합성을 하는 나무를 배치하며 ‘그린 임팩트’를 강조했다.

반면 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기업들의 CES 참가율은 저조했다. 가전 기업 TCL과 하이센스 정도만 눈에 띄는 규모의 전시장을 꾸몄다. 이들은 모바일기기부터 TV, 세탁기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전시했다. 제품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한국 기업과 다른 분위기였다.

라스베이거스=심서현·최은경·박해리·고석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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