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한족·조선인 서로 잘못해 충돌 땐 한족 억눌러라”

2023. 1. 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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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58〉
일본 패망 전, 중공은 옌안에 있던 영화 관련자들을 동북(만주)으로 파견했다. 만영을 접수해 동북영화제작소(東影)을 설립했다. 왼쪽 첫째가 마오의 사진을 담당하던 호우풔(侯波). [사진 김명호]
1932년 3월 1일에 발표한 ‘만주국 건국선언’은 민족협화(民族協和)와 공존공영(共存共榮)을 강조했다. “만주국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은 차별과 존비(尊卑)의 구별이 없다. 일·선·만·한·몽(日·鮮·滿·漢·蒙) 다섯 민족이 화합해 왕도낙토(王道樂土)를 건설해야 한다.” 일본 관동군 참모들은 비위가 상했다. 현역 육군 중장인 만주국 고문이 관동군 장교훈련학교에서 목청을 높였다. “만주인들이 자신이 만주의 주인이고, 일본인을 객(客)으로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일본인은 객이 아니다. 진짜 만주의 주인이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만주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고문의 일갈은 빈말이 아니었다. 만주에 부임한 일본인 관리와 관동군 대위급 이상 장교들은 관동군 사령관 인장이 찍힌 비밀 수첩, ‘일본인복무수지(日本人服務須知)’를 보물처럼 여겼다. 항상 몸에 소지하고 내용을 머리에 각인시켰다.

“일·선·만·한·몽 화합 왕도낙토 건설해야”

동영의 세트 제작 광경. [사진 김명호]
1960년, 전범관리소에서 풀려난 전 만주국 고관이 구술을 남겼다. “총리 비서 시절, 일본인 비서와 출장 간 적이 있었다. 한 방에 묵던 중 우연히 수첩을 발견했다. 황급히 보느라 다 보지는 못했다. 나 말고도 비밀 수첩 본 사람이 있을지 몰라 여기저기 물었다. 봤다는 사람을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일부 밝혀진, 일본 식민주의자의 만주 통치 기본이념은 민족 간의 이간질과 모순제조다. 만주국 건립은 중국 역사에 청(淸) 제국을 선보인 만주족의 구업(舊業)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황도(皇道)정신의 발전이라고 단정했다. “일본 민족은 하늘이 낸 지도자다. 만주 각 민족의 핵심이다. 만주국 황제는 신의 후예나 인간의 모습을 한 현인신(現人神)이 아니다. 일본 천황처럼 신성불가침이나 존엄의 조건을 구비하지 않았다. 일본의 국책을 위해 존경을 표해야 한다.” 일본인의 지위도 분명히 했다. “만주에 있는 일본인은 교민(僑民)이 아닌 주인이다. 비록 이중 국적이지만 일본인의 만주화가 아닌, 만주인의 일본화에 진력해야 한다. 만주국 관리로 봉직하는 일본인은 외국인 고문이 아니다. 주권의 행사자임을 명심해라. 관원들을 단속하고, 중요한 일은 관동군의 윤허나 동의를 득한 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 만주인 장관이나 상관에겐 직에 상당하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 중요한 정책이나 법령의 집행은 형식을 갖춰 동의를 구하고 서명을 요구해라. 거부할 경우 관동군에 도움을 요청해도 무방하다.”

국민당보다 한발 앞서 비무장으로 동북에 진출한 중공 8로군. [사진 김명호]
민족 문제도 주지시켰다. “만주국에는 10여 개 민족이 거주한다. 그중 일본민족과 조선 민족, 만주 민족, 한(漢)민족, 몽골족과 회(回)족이 중요하다. 이들은 고유의 풍속과 생활습관이 있다. 일본인의 이익에 장애가 되지 않는 것들은 존중해라. 일본인은 핵심민족이다. 희생을 중요시하는 무사도 정신을 배우도록 유도해라.” 약점도 인정했다. “일본은 섬나라다. 도량이 좁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수양을 통해 대도(大度)를 포용할 수 있어야 다른 민족을 설득하고 이용할 수 있다.”

각 민족의 특성도 나름대로 분석했다. “조선 민족은 손재주가 있다. 리튼조사단의 보고서를 귀신도 모르게 절취한 사람도 조선인 소매치기였다. 안일을 즐기고 노동을 혐오한다.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정치 얘기를 즐긴다. 역사적으로 한족(漢族)을 적으로 돌리며 원수처럼 대한 기간이 길다. 이용하고 회유하면 쓸모가 있다. 한족과는 소원(疏遠)한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친밀해지면 일본에 불리하다. 한족과 조선인이 충돌했을 경우, 양측에 잘못이 비슷하면 조선인의 기를 살려주고 한족은 억눌러라. 조선인 잘못이 클 때는 동등하게 처리해라.”

만주족과 한족의 이간질도 부추겼다. “만주에 거주하는 만주족은 소수다. 만주족 푸이(溥儀·부의)가 황제에 즉위해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민족 특징도 두드러지게 남은 것이 거의 없다. 거의 한족에 동화됐기 때문이다. 한족에게 사람 취급 못 받던 오랜 앙금은 여전하다. 만주족과 한족이 역사적으로 원수지간이었다는 것을 만주족이 까먹으면 안 된다. 부단히 상기시키는 것이 일본인의 의무임을 명심해라.” 몽고족과 회족, 한족에 관한 부분은 생략한다.

이중 국적 리샹란, 처형해도 안 해도 그만

만주국 시절 선양(당시는 펑텐)의 관동군 장교구락부. [사진 김명호]
일본 군국주의의 치밀한 만주통치도 원자탄이라는 괴물의 불구덩이에 무릎을 꿇었다. 1945년 8월 초, 일본의 투항이 확실해지자 국민당은 만주와 국경을 맞댄 소련과 우호조약을 체결했다. 중국 공산당이 비빌 언덕을 없앴다는 확신이 들자 옌안(延安)에 있던 마오쩌둥을 충칭(重慶)으로 초청했다. 두 사람 모두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협정문을 하찮은 종잇조각으로 여기기는 장제스(蔣介石·장개석)나 마오쩌둥이나 마찬가지였다. 뒤로는 전쟁을 준비했다.

비밀 수첩 내용대로라면 만영(滿影)이 배출한 리샹란(李香蘭·이향란)은 이중 국적이었다. 만주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성장한 만주국 국민이었다. 일본인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를 한간으로 처형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었다.

일본교민수용소에서 최종판결 기다리며 죽음의 문턱까지 와있던 리샹란을 구한 건 국민당 정보기관의 오판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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