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없는 권력의 광기, 조선 중흥 결정적 기회 걷어차다
오동진의 시네마 역사
김효원·심의겸 파 모두 사림(士林)을 대표했으며 당시, 곧 선조 재임기는 이 두 파가 조선 건국과 초기 왕권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조정을 좌지우지 했던 공신파, 일명 훈구파들과 대립해 새로운 권력을 쟁취하던 때였다. 이후 김효원을 지지하던 신하들은 동인으로, 심의겸 파는 서인으로 자리 잡았으며 동인은 다시 북인과 남인,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선다. 선조에서 광해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북인이 권력을 쥐는데, 북인 중에서도 대북파가 소북파를 누르고 권력을 쥔다. 대북파는 외교 강경 노선이 주요 노선이었으며 덕분에 광해군은 명이냐 후금이냐를 놓고 실리적 외교를 펼칠 수 있게 된다.
선조를 교활하고 예민한 인물로 묘사
이 얘기는 추창훈 감독의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일부 그려진다. 그러나 대북파는 인조반정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명분없이 권력을 잡은 인조는 광해군의 지지 세력인 북인의 대북파와 대립하던, 동인 내 소수파 남인과 아예 동인의 대척점에 있었던 서인을 배후세력으로 삼는다. 인조의 집권은 곧 개와 원숭이 사이였던 남인과 서인의 일시적 야합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다. 두 파의 연합은 이들 모두 소외된 권력집단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조반정이, 백성의 삶과는 전혀 상관 없는, 얼마나 명분 없었던 집권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아우라를 보여 주는 작품이 지난해 개봉해 지금까지 극장에 걸려 있는 안태진 감독, 류준열·유해진 주연의 ‘올빼미’다. 아, 얘기가 너무 나갔다. 다시 선조와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으로 돌아가자.
이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역사관, 특히 선조에 대한 시선이 돋보였으며 선조 역 캐스팅 또한 ‘신의 한 수’였다. 가수 겸 배우인 김창완이 맡았기 때문이다. 김창완은 ‘산 할아버지’ ‘어머니와 고등어’ 같은 노래로 국민 아저씨 소리를 들으며 부드럽고 젠틀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으나 그런 성격의 한편으로 뮤지션답게 매우 예민하고 까탈을 부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건 아는 사람만 아는데 이준익 감독은 김창완의 그 예술가적 양면성이 선조의 그것과 맞는다고 봤던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적중한 영화였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1592년의 임진왜란과 정여립의 난, 곧 대동계의 정변을 영화적 상상으로 엮은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둘인데 황정학(황정민)과 이몽학(차승원)이다. 둘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자며 대동계의 열혈 멤버로 활동했으나 이몽학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고 점차 세속적 권력의 의지를 보이자 갈라서게 된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이 영화의 핵심 축이 된다. 황정학은 일종의 왕당파이고 이몽학은 공화파인 셈. 이몽학을 굳이 프랑스 혁명 때와 비교하자면 로베스피에르 정도가 된다. 어쨌든 조선은, 왕은 도망가고 개혁파 지식인들은 분열했으며 나라는 왜구의 침입으로 풍전등화의 상태가 된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죽어가는 이몽학을 품에 안고 그의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는 이렇게 되뇌이며 눈물을 흘린다. “내 가슴에 늘 당신이 있었는데 당신 가슴 속에는 내가 없었구려.” 조선의 남자는 늘 거대담론, 곧 세상을 구한다는 이론을 내세우는 척,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 한 명을 건사하지 못한다. 여인을 구하지 못하는 사내, 곧 일개 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자,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이준익의 메시지였다.
정여립은 서인이었으며 중도에 동인으로 이적한 변절자였다. 한편으로 보면 현실적 정치인이었다는 얘기다. 정여립의 몰락은 기축옥사(선조 22년)로 이어지고 동인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결국 이는 광해의 지지 기반이 강하게 이어지지 못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조선 왕조 500년 중 가장 비극적 시대
대북파의 대표격으로 권력의 실세였던 허균이 광해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라는 항간의 오해는 순전히 추창민의 걸출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허균(류승룡)은 광해(이병헌)를 암살 위협에서 구하기 위해 일명 ‘가케무샤(그림자 왕이란 뜻의 일본어)’를 내세운다. 하지만 허균은 이후 역모로 몰려 광해군에게 처형을 당한다. 아마도 그건 허균이 실제로 역모를 꾀했다(고 묘사되는 얘기는 김탁환의 탁월한 소설
『허균, 최후의 19일』에서 그려지고 있다)기 보다는 인목대비 폐비에 얽힌 당쟁 과정에서 읍참마속 격으로 희생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다만 허균의 리버럴한 성품과 그의 뛰어난 문필이 그로 하여금 수많은 음모에 알게 모르게 연루되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에서도 허균이 광해 앞에 조아리며 자신이 ‘두 명의 왕을 모신 셈이니’ 앞에 놓인 검으로 자신을 베어 달라고 하는 장면은 그래서 매우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의미가 깊다.
인목대비 폐비와 그녀의 아들 영창대군을 죽인 것이 광해 집권 14년 내내 정권의 발목을 잡았고, 선조의 또 다른 아들 정원군의 아들이었던 능양군(광해의 의붓 조카)으로 하여금 쿠데타의 명분을 준다. 속내는 전술했다시피 대북파와 대립각을 세웠던 동인 내 남인과 아예 동인의 반대파였던 서인에게 연합의 빌미를 준 것이다. 능양군의 권력쟁취, 곧 인조의 즉위는 당쟁의 열매이자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전술의 결과였다. 그렇게 명분 없는 (쿠데타)권력의 승계는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시대를 낳았다. 그 결과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최근에 나온 영화 ‘올빼미’다. 왕(유해진)이 오죽 자신의 권력비호에 스스로 앞장서려 했으면 친아들인 소현세자(김성철)마저도 독살했을까. 영화는 궁 내의 침술사(류준열)가 어의(최무성)가 저지르는 살해 과정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를 그린다. 침술사는 낮에는 맹인이지만 밤에는 사물의 윤곽이나마 볼 수 있는 주맹증(晝盲症) 환자다. 독살은 어둠 속에서 벌어진다.
광해군의 즉위가 오래 갔으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영민함을 그린 영화가 2017년 나왔던 정윤철 감독의 ‘대립군’이다. 여진구가 어린 광해로 나오고 대립군(생계를 위해 돈을 받고 남의 군역을 치르는 빈민)의 두목 ‘토우’ 역으로 이정재가 나온다. 영화 ‘대립군’은 도망간 선조 대신 광해군이 민초들과 함께 왜군에 대항하는 의병 활동 얘기를 그린다.
조선은 중흥의 기회가 딱 세 번 있었다. 세종 때가 그랬고, 개혁군주 광해 때가 그랬으며, 인조는 망조의 인물이었어도 청(후금)에 볼모로 잡혀간 8년 동안 신문물을 접했던 아들 소현세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으면 그랬을 것이며, 뛰어난 군주였던 정조의 치세가 대를 이을 수 있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할아버지였던 영조의 계비, 곧 의붓할머니 정순왕후에게 독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이어지고 순조-현종-철종-고종-순종으로 이어지며 조선은 몰락의 길로 간다. 이 과정은 이준익의 또 다른 영화 ‘자산어보’에서 그려진다. 조선은 선조와 광해 집권기, 그리고 소현세자 시기에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 영화는 늘 명분 없는 권력의 허망함을 그린다. 영화 안에는 역사가 있고 역사는 늘 영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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