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오디오 사랑, 삼성 반도체 성공신화 ‘씨앗’ 됐다
명사들이 사랑한 오디오
1953년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난 그는 유학 생활의 외로움을 영화와 음악으로 달랜다. 유학 3년 동안 매일 5편, 3년간 1200여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어릴 적부터 ‘덕후’의 기질이 엿보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오디오에 빠지게 된 것은 다시 유학을 떠나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는 무렵부터다. 당시 일본 오디오 산업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개막을 맞아 미국, 영국 오디오가 대량 수입되고 여기에 일본 내 재즈 붐과 맞물리며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일본 오디오 붐을 고스란히 목도한 그는 오디오를 사들이며 매일 밤 분해하고 조립하며 기기를 분석한다.
오디오로 익힌 감각, 다른 제품에 쏟기도
유학을 마친 그는 결혼 후 동양방송 이사로 경영 수업을 시작한다. 여전히 오디오를 사랑한 그였지만 당시 삼성 그룹에는 삼성전자가 없었다. 그의 열망이 가닿은 것일까, 1969년 삼성은 마침내 전자 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갓 전자 사업을 시작한 삼성에게 오디오를 꿈꿀 여유는 없었다. 삼성은 산요, NEC, 코닝과의 제휴를 통해 TV 제조에 어렵게 성공하며 TV 시장에 집중한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오디오를 분해하며 진공관 시대가 끝나고 트랜지스터, 즉 반도체 시대가 닥칠 것이라 예감했다. 당시 오디오 산업은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급변하고 있었다. 반도체를 움켜쥔 일본 오디오 기업이 전세계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그는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 한국반도체가 경영난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자 인수를 결심한다. 이병철 회장을 비롯한 임원의 반대가 거센 중에도 그는 1974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 이것이 지금 반도체 부문 세계 1위 삼성 반도체의 시작이다.
1987년 마침내 삼성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숙원 사업인 자동차, 하이엔드 오디오 비지니스에 착수한다. 당시 국내 기업 인켈, 태광은 중저가 시장에 집중해 가장 비싼 제품도 500만원이 넘지 않았다. 이건희는 세계 1위에 도전하는 한국의 하이엔드 오디오를 꿈꿨다. 1991년 호기롭게 하이엔드 오디오 사업부를 발족했지만 경험 부족으로 개발은 답보에 머물렀다.
해외 기술의 수혈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1994년 5월 일본 오디오 기업 럭스만을 인수한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는 일본의 자존심이 한국에 팔렸다는 불평이 가득했다. 이건희 회장은 럭스만을 세계 1위 앰프 제조사 매킨토시에 비견하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럭스만 엔지니어들은 그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삼성 단독으로 하이엔드 오디오를 직접 개발하기로 결단한다. 자신의 한남동 자택 지하에 30평 규모의 오디오 룸이자 연구소를 꾸미는 용단을 내렸다. 이 곳에 당대 최고의 오디오 기기를 한데 모아 직접 테스트하고 분해하며 전략을 세웠다. 오디오 매니어인 그가 기획, 설계, 제조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 엔지니어는 그의 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자동차가 닛산의 도움을 받았듯 오디오 또한 업계 1위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다. 스피커는 미국의 헤일즈(Hales), 앰프는 마드리걸 그룹 산하 마크레빈슨(Mark Levinson)과 제휴한다. 삼성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명은 ‘엠퍼러(Emperor)’, 오디오로 세계를 호령하겠다는 의미였다.
1년 만에 제품을 완성한 뒤 1995년 12월 앰프, 1996년 7월 스피커를 발표한다. 대대적인 홍보가 뒤따랐고 신제품 발표회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당시 현장에는 20대의 나도 있었다. 프리 앰프, 파워 앰프, 스피커로 구성된 시스템 총액은 3000만원이 넘는 초고가였다. 당시 언론들은 ‘그랜저보다 비싼 고급 오디오’고 썼다. 고급 부품을 아낌없이 사용해 음도 매력적이었다. 호평을 기반으로 삼성은 엠퍼러로 해외 진출을 꾀했다. 중저가는 럭스만, 하이엔드는 엠퍼러라는 양공전략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는 삼성의 하이엔드 오디오를 반기지 않았다. 헤일즈, 마크레빈슨의 도움으로 음은 좋았지만 소비자는 삼성 브랜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사이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쳤다. 삼성 그룹은 극심한 적자를 기록한 자동차, 오디오 사업부를 정리해야 했다. 럭스만도 이 때 매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엠퍼러의 인기는 이 때부터 시작된다. 삼성은 엠퍼러의 재고 처리를 위해 파격 할인 판매를 단행했다. 음이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재고는 금세 모두 팔렸다. 이후 20여년간 엠퍼러는 오디오 중고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제품으로 꼽혔다. 하지만 시장에서 철수한 뒤 얻어진 인기란 덧없는 것이었다.
엠퍼러의 실패로 이건희 회장은 하이엔드 오디오 진출의 꿈을 접는다. 다시 순수 오디오 애호가로 돌아간다. 자동차 사랑이 그러했듯 오디오도 최고의 제품이라면 빠짐없이 경험하며 자신의 귀를 단련했다. 특히 스피커에 관심이 많아 B&W, 포칼, 윌슨오디오, 그리폰, 골드문트 등 궁극의 영역을 섭렵했다.
오디오 통해 시장 흐름 분석, 투자 결정
이 회장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사용하며 익힌 감각을 자사의 제품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임원 회의에서 “소니 DVD 플레이어를 써보니 발열이 심하고 데논은 심하지 않은데 벤치마킹해 이유를 분석해 보라”, “파나소닉 제품이 우리보다 부품 수가 적은데도 성능이 뛰어난 이유를 따져보라”며 세세하게 지시했다. 2007년 자사 신제품 품평회에서는 ‘TV 디자인과 화질은 최고인데 음질이 형편없다’며 가차없이 혹평했다.
오디오, 비디오 기기는 작은 디테일까지 집요하게 따졌다. “삼성에서 나보다 기기 많이 써본 사람이 있느냐”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의 혹독한 지도 덕분일까, 2000년 후반 삼성 DVD 플레이어는 일본산의 절반 가격에 오히려 성능은 압도해 해외의 극찬을 받았다. 삼성 TV 또한 점점 성장해 2006년 숙명의 라이벌 소니를 제쳤고 이후 16년간 부동의 세계 1위다.
다시 한 번 오디오 시장 1위를 꿈꾸어도 좋았을 2014년 그는 심근경색으로 기나긴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2년 후 삼성은 오디오 시장 세계 1위 하만 인터내셔날을 9조 원에 인수했다. 이제 삼성은 오디오 부문 세계 1위가 됐다. 이건희 회장의 오랜 꿈이 이뤄진 셈이다. 참고로 하만은 카오디오, 자동차 디지털 콕핏 부문에서도 세계 1위다. 삼성은 하만의 오디오를 중심으로 자동차 전장 사업 세계 1위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최근 발매된 BMW의 전기차 i7은 삼성이 배터리와 B&W 오디오, 5G 통신 모듈을 독점 공급한다.
모두가 이건희 회장의 혁신과 성공을 칭송하지만 그의 오디오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건희 회장의 대명사로 통하는 반도체 성공신화에 가려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오디오는 평생 그를 추동했다. 그는 오디오를 통해 시장의 흐름을 읽어 투자를 결정했고 반도체 세계 1위가 되었다. 지금의 삼성은 다시 한 번 오디오를 통해 자동차 전장 사업 1위를 차지했다. 오디오를 열렬히 사랑해 마침내 꿈을 이룬 오디오 애호가 이건희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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