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켈트 음악, 서구 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선

2023. 1. 6. 22: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서 시작된 고대 유럽문화
이교도·반문명·신비주의로 점철
20C 후반 다방면서 가치 재평가
월드뮤직의 중요 장르 자리매김

지인들과 가진 송년회 자리에서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성탄절과 트리 장식의 기원에 대해서였는데, 엉뚱하게도 불똥이 켈트 문화에 튀었다. 이야기는 점점 거창해져서, 결국 화두는 켈트 문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이들의 문화는 반기독교 또는 반문명의 상징일 수도 있지 않은가까지 번졌다.

켈트 문화? 영화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와 판타지 소설 등에서 등장하는 켈트 문화는, ‘신비로움’이라는 단어로 압축,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문화가 서구 유럽에 전파되고 이후 서구 문명의 주축이 되면서, 켈트 문화는 이교도, 이단, 불경스러운 것 등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해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종교를 앞세운 새로운 문화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종교 또는 문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거나 그보다 우월함을 증명해야 한다. 그 잘못된 판단이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왔고, 켈트 문화권이 아닌 우리의 삶에도 이 서구 문화의 근간이 왜곡되어 소개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과 걱정이 그날의 내용이었다. 결론은 최근 수십년간 음악을 비롯해 서구 문화의 또 다른 상징으로 켈트 문화가 재평가를 받고 있으니 우리는 걱정하지 말자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아일랜드의 서쪽 해안가에서 시작된 켈트 문화는 당시 아일랜드에 거주하던 켈트족을 중심으로 브리튼 섬, 지금의 프랑스 북부 해안과 내륙지방을 가리키는 브르타뉴,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갈리시아 지방까지 분포되어 있던 고대 유럽 문화였다. 8세기 중반을 정점으로 퍼져 나갔던 켈트 문화는 아일랜드 왕 브라이언 보루가 1014년, 북해에서 내려온 바이킹들의 침략 때 살해되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1169년 노르만족의 정복으로 쇠퇴기에 접어들며,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켈트 문화는 이교도들의 고대 문화로 몰락하게 된다. 20세기 중반까지 켈트 문화는 정확한 판단과 객관적 근거 없이 드루이드교와 스톤헨지로 상징되는 신비주의 문화로 그 개념이 고정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평가를 받기 시작한 켈트 문화는 문학, 음악, 미술 등 다방면의 문화 운동을 통해 복권의 기회를 얻었다. 그 시작은 영화로 더욱 친숙한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이었는데, 1949년에 첫선을 보인 이 소설은 여러 설정을 통해 확실히 켈트 문화의 재평가에 발동을 걸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서구 사회에서 새로운 운동으로 인정받은 뉴에이지 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켈트 문화는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켈트 문화의 예술에서 차용되는 독특한 원형 문양, 그리고 휘슬을 비롯한 전통악기들과 언어체계는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서 서구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중요한 문화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월드 뮤직으로서 켈트 음악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일랜드를 비롯한 프랑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북부에서 성행했던 켈트족의 전통음악이다. 휘슬과 피들로 상징되는 아일랜드 음악으로서든, 백파이프를 사용하는 스코틀랜드와 스페인 갈리시아의 지역 음악으로서든, 켈트 음악은 이제 월드 뮤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이런 서구 문화의 방대함을 담은 켈트 음악과 켈트 문화의 전통을 우리가 간단히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프랑스 브르타뉴 태생 하프 연주자 알랑 스티벨이 언급한 켈트 음악의 신념을 보면 그 단초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켈트 음악은 우리를 서구 근대화의 시초로 이끌고, 우리를 서로 이어줍니다. 각각의 서로 다른 문화는 특히 제국주의로 인해 모두 그 연계가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켈트 문화권 국가에서 살지 않는 여러 국가의 젊은이들이, 켈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