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폐암’ 원인 중 하나는 ‘주방’[의술인술]
직원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47세 여성이 수개월 전부터 숨이 조금씩 차고 기침이 나더니 피가 섞인 가래가 나와 병원을 방문하여 검사한 결과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이 여성은 담배를 피운 적이 없고 가족 중에서 흡연자가 없어 폐암 진단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20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2020년 많이 발생한 암은 갑상샘암, 폐암, 대장암 순이었다. 남자는 폐암, 위암, 전립선암, 대장암 순이었고, 여자는 유방암, 갑상샘암, 대장암, 폐암 순으로 많이 발생하였다. 2021년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암 사망률은 폐암, 간암, 대장암 순으로 높았다. 남자는 인구 10만명당 폐암 54.5명, 간암 29.4명, 대장암 19.6명 순으로 사망률이 높았던 반면에, 여자는 폐암 19.2명, 대장암 15.4명, 췌장암 12.9명 순으로 사망률이 높았다.
폐암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은 흡연인데, 한국 성인의 흡연율은 2020년 현재 20.6%이고, 남자 34.0%, 여자 6.6%로 성별 차이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흡연율이 매우 낮은 여성에서도 폐암 사망률이 암 중에서 1위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폐암연구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여성 17명 중 한 명에게서 일생 중 폐암이 발생하며, 흡연이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하지만 여성 폐암 환자의 20%는 비흡연자이며, 비흡연자에서 폐암 발생 위험은 여성이 남성의 2배나 된다고 한다. 여성 흡연율이 낮은 우리나라 여성의 경우 폐암 환자의 80~90%가 비흡연자이다.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여성 1만4000명을 대상으로 한 비흡연 여성 폐암 연구 결과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동아시아 비흡연 여성의 폐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부 유전자 변이가 동아시아 여성이 간접흡연에 노출되었을 때 폐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대한폐암학회가 비흡연 여성 폐암 환자 226명과 비환자군인 대조군 76명을 대상으로 주방환경, 간접흡연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폐암 환자군이 대조군보다 요리할 때 주방 내 연기가 심한 경우가 많았고, 요리 시 식용유를 4일 이상 사용한 때도 더 많았다. 기존 연구를 종합해보면 조리 시 연기로 인한 폐암 위험은 1.6~3.3배이며, 간접흡연도 폐암 위험을 약 2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정의 실내 공기 오염은 음식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등 가스와 미세먼지, 벤조피렌,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물질이 배출될 수 있다. 환기를 잘하지 않고 조리하거나 조리 과정에서 연기나 그을음이 나오는 경우 더 고농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 이 중 미세먼지, 벤조피렌, 포름알데히드는 잘 알려진 발암물질이므로 흡연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 한국인 18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 연구에서 미세먼지 농도와 폐암 발생을 조사한 결과, 미세먼지가 10㎍ 증가할 때마다 폐암 발생 위험이 9%씩 높아졌다고 한다. 7만여명의 여성을 13년 동안 추적 조사한 한 연구에서는 주방의 환기 상태가 나쁘거나 조리에 식용유를 자주 사용할수록 폐암 발생 위험이 커지고, 주방 환기 상태가 나쁜 것만으로도 폐암 발생 위험이 49%나 높아진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여성 폐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흡연자라면 우선 금연부터 실천해야 한다. 또한,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하면서 채소와 과일을 자주 챙겨 먹고 가공육 섭취를 제한하고 절주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면 여성의 폐암 발생 위험을 20~30%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지막으로 실내 환기를 자주 해 실내에서 발암물질에 노출될 확률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조리 전후에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후드를 틀어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집 밖으로 배출하고, 후드는 주기적으로 필터를 씻고 내부에 쌓인 기름때를 청소해야 한다. 조리 과정에서 음식이 타거나 연기가 많이 날 때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 발생이 증가하므로 음식을 태우지 않도록 조심하고, 식용유를 사용하는 요리 빈도를 줄이는 것 역시 유해물질 노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직업상 위험요인 노출이 많거나 흡연 기간이 길다면 정기적인 폐암 검진이 필요하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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