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담대한 구상’ 과연 북이 받아들일까…시 주석은 그걸 본 것”[동북아 ‘신지정학 시대’…한·중·일 관계 해법을 듣다]
안전 보장 없이 핵 포기하라는 건
북 입장선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일
이대로면 중국도 도움 줄 수 없어
정권 따라 바뀌는 한국의 대북 정책
일관성 없어 북 도발 악순환 반복
중국 정치학계 석학으로 손꼽히는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70)는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남북관계 악화를 최근 동북아시아 정세에서 가장 큰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남북관계는 밑바닥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로 가고 있다”면서 “남북관계가 계속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고 북한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자오 전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중·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지 않고 미국과의 가치동맹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외교적 활용 공간을 좁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표부를 설치한 데 대해 “아시아에 작은 나토가 형성되고 한국과 일본이 교두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중국 학계의 우려를 전했다.
자오 전 교수는 중국 공산당 간부를 양성하는 중앙당교에서 정치학 연구실 주임을 지냈다. 경남대와 일본 게이오대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정치학 이론과 동북아지역 현대화전략 등을 연구해왔다. 현재 중국정치학회 이사와 중국한반도문제연구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미·중 갈등 격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 구도가 짙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새로운 냉전구도가 짙어진 정도가 아니라 실제 열전이 벌어졌다. 총포를 쏘며 싸우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신냉전 구도는 과거 냉전과는 차이가 크다. 경제가 융합된 상태서 벌어지는 냉전이라 손해가 더 크다. 기술과 산업구조, 국가 간 관계가 융합되고 있는 시대인데 중·미관계나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런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나라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신냉전 구도는 미국 국내 상황과 관련이 있다. 미국의 산업구조 변화로 제조업이 무너졌고, 그사이 제조업은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밀려왔다. 그런데 미국은 마치 모든 일이 중국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인식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반중 정서도 보편화됐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를 선거에 이용한다. 그래서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들도 해를 입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 문제 등으로 애를 먹고 있지 않나. 이런 상황이 언제 어떻게 해소될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지난해 동북아시아 정세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을 꼽는다면.
“남북관계 악화 아니겠는가. 남북관계는 밑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로 가고 있다. 미사일을 쏘고 막말이 난무한다. 막말 끝에 뭐가 올지 굉장히 아슬아슬하다. 이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직결돼 있다.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및 중국 견제와 맞아떨어진다. 나토에 대표부도 설치했다. 북한은 이를 비대칭 상황으로 보고 있다. 한·미·일 군사훈련이 이어지고 전략자산 배치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자기 통치 능력이 훼손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군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국제적으로뿐 아니라 국내 정치용으로도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북한은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질 텐데 남북관계가 계속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는다면 북한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다. 위기가 막바지까지 가면 북한은 긴장관계를 만들어 내부 통제를 하려 할 것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다. 전략자산 얘기가 나오고 북한도 핵 정밀도를 높이며 고체연료까지 가고 있다. 고체연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연료 주입 시간이 필요 없기 때문에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가 긴장 일변도 정책으로 가는 것도 우려스럽다. 북한을 계속 억누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미국에 놀아나는 것으로 비친다.”
- 한·미는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을 기대한다.
“가장 큰 장애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대외·대북 정책이다. 현 정부 대북 정책이 지금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중국이 도움을 줄 수 있겠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윤 대통령과 만났을 때 한국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북한이 받아들인다면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그게 가능하느냐는 얘기다. 북한에 핵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으라는 것인데 과연 가능하겠나.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지 못하는 건 그 이외에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을 하지 않고 핵 개발을 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단순히 중국이 돕는다고 해결될 상황도 아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면 전시경제와 군수산업 중심 경제구조가 정상 가동될 리 없다. 경제구조를 민영산업 중심으로 바꾸려면 안전보장이 필요하다. 한국도 그런 전략적 판단을 하겠지만 정권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본다. 핵 문제를 비롯한 북한 문제는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다. 북한 미사일 실험은 일본을 자극하고 있고 미국의 아시아 군사력 유지에도 구실을 제공한다. 현재로서는 이런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가 전혀 안 보인다. 중국의 역할은 한국 정부의 대중 정책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지금은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윤 정부의 추, 확실히 미국 쪽으로
중국 입장에서는 가장 큰 걸림돌
한국, 안보 목적 한·미 동맹 넘어
모든 걸 자유주의 진영과 함께할 땐
활용 공간 좁히는 결과 초래할 것
- 윤석열 정부 대외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윤석열 정부 대외정책은 가치를 핵심으로 한다.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려 한다. 안보 문제만 생각한다면 최강국인 미국을 등에 업고 있고 일본도 있는데 나토까지 갈 필요가 없다. 이전 정부와 차이를 두면서 보수 정권의 색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 진영과 모든 걸 함께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게 핵심적인 문제다. 중·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끝났고 확실하게 자유주의 진영과 함께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 입장이라고 본다. 중국 학계에서는 ‘아시아 나토’라는 개념을 많이 쓴다. 일본에 이어 한국이 주나토 대표부를 설치했기 때문에 아시아에 작은 나토가 형성되고 한국과 일본이 그 교두보가 되는 게 아니냐고 보는 것이다. 나토는 경제연합체가 아니고 유럽 군사동맹이다. 냉전 체제가 형성되고 미국이 가치 동맹을 묶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교두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의 미국 쏠림이 계속되면 중국이 제재 수단을 동원하거나 직접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당장 충돌로까지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한국 경제나 남북관계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한국에 어떤 제재를 가할 것으로 생각지 않지만 한국이 어디까지 가느냐를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이 잘 판단해야 할 것이 있다. 미국과 유럽도 하나로 똘똘 뭉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도 갈등 요소가 많다. 윤 대통령은 자유주의 이념을 중시하는데 자유주의의 맥락을 잘 짚어야 한다. 미국식 시장경제가 아니라 유럽식 자유주의가 미래 방향이다. 한국 정부는 유럽식 개혁을 하다 주춤했고 정권이 바뀌면서 뒤집혔다.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는 미국식에 가까워 보인다.”
- 한·중관계는 30년 동안 경제 의존도는 커졌는데 정치적 협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 상태에 있다는 평가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있다. 또 양쪽이 모두 선택적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국은 스스로 과거 대국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한국은 지금 선진국으로서 앞서가고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러면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중·미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은 싸우면서도 물밑 교류를 계속한다. 정부 관계뿐 아니라 민간 외교도 중요한데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소통채널이 없다. 과거 전문가 공동위원회가 만들어져 2년 정도 활동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은퇴 정치인이나 학자, 언론인, 기업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은 서로 안 좋은 것만 꼬집으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 향후 한·중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중·한관계에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라는 밑바탕이 깔려 있다. 정치이념 때문에 거꾸로 가는 것이 답답하다. 개선될 여지는 있겠지만 아주 가까워지기는 힘들 것이다.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예컨대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중국의 핵심 이익에 관련된 변수가 발생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다. 한국이 안보 목적의 한·미 동맹을 넘어 모든 걸 자유주의 진영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중국과 미국이 모두 필요로 하는 나라로 있는 것이 유리한데 지금은 활용 공간을 좁히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 올해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가 본격화된다. 중국 외교 정책과 전략에 변화가 있을까.
“중국의 대외정책은 상당히 부드러워질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의 외교환경이 악화된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3년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며 경제환경이 나빠졌고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터져 더욱 어려워졌다. 시 주석은 3연임을 했기 때문에 통치 능력과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올해 경제 문제에 주력하면서 통치 정당성을 보여주려 할 텐데 그러려면 안정된 국제환경이 필요하다. 그게 부드러운 외교의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시 주석으로서도 3연임에 대한 부담이 크고 결과적으로 잘됐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무력 통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인데.
“정치 지도자가 역사적 숙제를 풀겠다는 포부를 갖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력 통일을 시도한다면 다음 상황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개혁·개방 40년 동안 쌓아온 외교관계가 무너질 텐데 그런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만 내 독립 세력을 계속 활용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 후 나토를 확대하면서 우크라이나까지 끌어당겨 러시아를 자극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에 말려 대리전을 해주고 있다. 대만 문제에서도 주변 국가들이 이런 상황을 잘 봐야 한다.”
- 일본이 안보문서를 개정해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천명했다. 동북아 정세나 중·일관계에 미칠 영향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일본 우익세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불안한 상황이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전쟁범죄에 대해 확실한 반성을 하지 않은 나라다. 중·일관계는 전체적으로 더 나빠질 것도, 더 좋아질 것도 없는 관계다.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이 별로 없다.”
- 미·중 갈등은 동북아 경제협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제협력도 미국이 가치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협력 가능한 부분이 많은데 어려워지고 있다. 다만 약간 완화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중국의 대외정책이 부드러운 방향으로 가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도 중국 견제로 인한 손실이 많다. 2023년에는 세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중·미관계도 그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외교장관 대화가 계속되고 유화적 제스처도 나온다.”
- 미·중 갈등이나 동북아 긴장관계 완화를 예상하나.
“지금 신냉전 구도라는 것은 큰 그림에서는 맞지만 과거 냉전 상황과 달리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성이 많다. 지금은 공동의 적이 없다. 중국과 북한에 공동의 적과 공동의 이익이 무엇인가. 과거 마오쩌둥(毛澤東)과 김일성은 이념과 생존 환경, 가치관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과 김정일은 같은 것이 별로 없었고 시 주석과 김 위원장에게서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이나 프랑스, 호주 같은 나라들의 (유화적인) 제스처도 미국에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19로 경제가 굉장히 어려운 시점에 시 주석이 3연임을 한 것이 동력이 될 수 있다. 지도력을 보여주기 위해 국제관계를 포함해 모든 걸 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밖에 없다. 큰 구조 변화는 없겠지만 완화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시리즈 끝>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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