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37m ‘농슬라’ 뜨자, 줄 섰다…인류 문제 풀 첨단 기술 한자리
‘인류 안보’ 주제로 자율주행 트랙터 등 선보여
자율주행 트럭에 선박·로봇까지 지속가능성 강조
SK는 기후위기 경고와 넷제로 기술 선봬 주목
5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시이에스(CES) 2023’의 최대 볼거리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낼 기술’들이다. 올해는 유엔(UN) 산하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류안보(HS4A·Human Security for All)’를 중요 의제의 하나로 삼았다. 기후 위기 고조, 코로나19 대유행, 지정학적 위기 등 불확실성이 급증한 시대에 첨단 기술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농슬라’로 불리는 농기계 회사 존 디어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즐비한 웨스트홀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 회사 최고경영자는 농업 업계 최초로 개막일 기조연설에 나섰다. 이 업체 전시관의 주인공은 길이 37m, 높이 3.5m의 자율주행 트랙터였다. 2m 높이의 운전석에 앉아보려고 관람객들이 긴 줄을 설 정도였다.
스스로 움직이는 트랙터는 양쪽 팔에 자동 분무기(See&Spray)를 달고 있었다. 분무기는 36개의 카메라 센서와 고성능 지피에스(GPS)의 도움을 받아 작물과 잡초를 구분해 제초제를 정확하게 살포하는 기능을 갖췄다. 전시관 도우미는 “미국에서 밀 재배에 연간 2300만갤론(1갤론=3.8ℓ)의 제초제를 쓰는데, 이를 이용하면 1500만갤론까지로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율 비료 살포기(Exact Shot) 역시 필요한 작물에만 비료를 제공해 같은 기능을 한다. 도우미는 “미국에서 옥수수 재배에 매년 1억4천만갤론의 비료를 쓰는데 9300만갤론으로 줄여줘, 비용 절감은 물론 비료 낭비에 따른 환경 파괴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존 메이 최고경영자는 기조연설에서 “농부뿐만 아니라 지구를 돕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는 크게 변화했고, 시장은 변덕스럽고, 노동력은 줄어드는 등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머신 러닝과 로봇 공학을 개발해 고객에게 효율성을 높여 수익성 향상을 돕는 것은 물론 지구에도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목적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기술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안전을 보장하면서 생산성 향상과 사회공헌도 가능한 자율주행은 광산, 바다, 수도관 등에서도 시도되는 모습이다. 중장비 회사 캐터필러는 자율주행 100톤 트럭 ‘캣777’과 수백마일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중장비를 원격 조정하는 기술(Cat Command technology)를 선보였다. 높이 4.5m의 육중한 트럭은 주변 고급 승용차들을 장난감처럼 느껴지게 했다. 또 수백마일 떨어져서 수십톤의 광물이나 바위를 운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토니 파시노 캐터필러 회장은 “우리의 기술은 사람의 자율성을 높이고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방법”이라며 “트럭 외에도 불도저, 굴착기 등의 원격 작동을 자동화하고 있으며, 이는 생산성과 안전, 지속 가능성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이치디(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는 선박 자율운항을 통해 탄소 배출 절감과 선원 감소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해운시장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에이치디현대는 직접 개발한 자율운항 기술 ‘하이나스’를 공개했다. 이 기술을 적용한 선박으로 태평양을 횡단해 7%의 연료절감을 입증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을 적용한 항로로 자율운항해 연료비와 탄소 배출량을 줄였다는 것이다. 에이치디현대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의 임도형 대표는 “운전자의 운전 습관에 따라 차량 연비가 크게 차이 나듯, 선박은 선장의 습관에 따라 연료 소모 차이가 크다. 연료 소모를 줄이는 최적의 속도를 찾아 운항해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에이시더블유에이(ACWA)로보틱스는 수도관을 이동하며 누수를 예방하는 자율주행 로봇 ‘클린워터 패스파인더’를 선보였다. 스스로 수도관을 뱀처럼 움직여 다니며 균열을 측정해 파손 가능성을 따지고, 이를 데이터로 저장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전 세계 식수의 30% 정도가 수도관 누수나 파열로 낭비되고 있다”며 “패스파인드로 정확한 누수 발생 가능 위치와 관련 데이터를 쌓으면 순서에 따라 정확하게 예방 조처를 취해 식수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SK)는 지속 가능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시관을 두 곳으로 나눠, 한쪽에선 기후변화로 피라미드와 에펠탑 등이 잠기는 등 암울한 미래를, 다른 곳에선 에스케이 계열사들이 보유한 ‘넷제로 기술’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에스케이온은 특수 코팅 기술로 18분 만에 80%까지 충전이 가능하고 한번 충전에 400㎞ 이상 달릴 수 있는 ‘에스에프 배터리’를, 에스케이어스온은 탄소포집 기술을 선보였다. 에스케이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을 열로 분해해 뽑아낸 기름을 활용해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전시했다.
삼성전자는 파타고니아와 협업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돕고 있음을 강조했다. 전날 열린 프레스컨퍼런스에서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빈센트 스탠리 최고철학책임자(CPO)는 무대에 올라 미세 플라스틱을 줄이는 세탁 기능을 소개하며 “삼성전자와 파타고니아는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면서 더 훌륭한 제품을 만들 방법에 대해 논의해 좋은 결실을 맺었다”며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사내 벤처 육성과 외부 스타트업을 후원하는 시-랩(C-Lab) 기업 가운데는 망막질환 환자를 위한 마이크로 전자눈을 개발하는 소셜벤처기업 셀리코, 아이들의 언어발달을 위한 감성대화 인공지능(AI) 인형 ‘카티’를 개발하는 카티어스 등이 주목을 받았다.
엘지전자 북미이노베이션센터(LG NOVA)는 별도 부스를 마련해 협업이나 후원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소개했다. 엘지전자는 사람·사회·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미래 신사업 발굴과 사회적 책임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2021년부터 연간 2천억원을 마련해 스타트업 발굴에 나서고 있다. 바이오센서로 상처를 추적 관찰하는 앱을 만든 그래필, 카메라 센서를 바탕으로 의사가 원격 진단을 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한 마이드센 메디컬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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