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늪’에 빠진 집주인-세입자…허술한 제도가 키운 전월세 분쟁 [부동산360]
빌라 공시가격 140%까지 전세대출 허용해 전세사기범 악용
계약갱신청구권 중도 퇴거 임차인에게 일방적 유리
정부, 전세사기 방지 법개정부터 추진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20대 직장인 홍모씨는 지난달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전세계약하려고 했으나 전셋값이 매매가랑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깡통전세가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기 떄문이다. 고민하던 그는 5000만원 더 비싼 다른 동네 전셋방을 계약했다. 홍 씨는 “최근 전세 사기가 만연해 집 구하는 내내 스트레스가 컸다”며 “보증보험을 들어준다고도 하는데, 만약 문제가 생겼을 경우 추후 청구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 다른 지역을 알아봤다”고 털어놨다.
지난 정부에서 무리하게 통과시킨 임대차2법의 후폭풍이 전월세 시장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 급등한 전세가격과 주먹구구로 이뤄진 전세대출로 인한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으며, 계약갱신청구권은 집주인과 세입자의 불신을 키우는 불합리한 법제도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곳곳에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전월세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보증보험 들어드릴게요” 안심시키고 전세사기= 최근 사회 문제로 불거전 깡통전세와 이에 따른 전세사기는 전세보증보험의 한계를 여실히 노출시켰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이 돼있음에도 전세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보증보험은 전세계약 만료 후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지급하고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청구하는 제도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임대인이 이를 악용한 정황이 뚜렷하다. 보증보험을 들어준다며 세입자들을 안심시킨 뒤, 결국 깡통전세로 판명나자 세입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이른바 '빌라왕' 김모씨 사건의 경우, 임차인 614명이 보증보험에 가입된 상태였으나 지난해 말까지 보증금을 돌려받은 사람은 139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HUG가 집주인 대신 돌려준 보증금은 ▷2019년 2836억원 ▷2020년 4415억원 ▷2021년 5040억원 ▷2022년 9241억원으로 급증하고 있지만,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보증금을 받기까지 약 5개월이 걸렸다”면서 “이 과정에서 시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모도 커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전적 조치와 임차인 권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현 보증보험 제도는 전세 계약 후 가입이 이뤄지기 때문에, 보험 가입 요건이 되는지 등을 사전적으로 알 수 없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전적으로 미리 해당 물건을 검토해 어느정도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세입자가 계약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현 공시가격 인정 비율인 140%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현재 시세 확인이 어려운 신축빌라의 경우 HUG는 보증 가입 기준을 공시가격의 140%로 적용하는데, 이로 인해 집주인이 해당 비율에 맞춰 전셋값을 올리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HUG가 모든 물건을 현장 답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증 가입기준으로 공시가 140%는 너무 높다”고 평가했다.
▶임대차보호법도 다시 갈등 불씨로= 전셋값이 떨어지자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나와있는 '계약갱신청구권'을 두고도 집주인과 세입자간 다툼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사실상 제도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혹평까지 쏟아진다.
2009년 개정된 임대차보호법 제6조2항은 묵시적 갱신을 통해 계약을 갱신한 경우에만 임차인이 일방적인 계약을 해지 통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재차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통해 성사된 계약 역시 제6조2항 조항을 준용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5% 갱신계약을 통해 주인과 정식 계약을 맺은 경우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도 언제든지 이사 등의 이유로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조항으로 인해 세입자들의 '전세 갈아타기'가 쉬워지면서, 집주인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세입자도 나타나고 있다. 마포구에서 집을 임대하고 있는 B씨는 최근 4억원에 전세 재계약을 했는데 임차인이 부동산을 통해 “5000만원을 깎아주지 않으면 나가겠다”고 요구한 사실을 전달받았다. 이 임차인 또한 5% 갱신요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중도 해지 조항을 들어 이 같은 요구를 한 것이다.
집주인이 수억원대 보증금을 반환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한 임대인은 “대출이 나오지 않아 보증금을 돌려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세입자에게 사정을 봐달라 양해를 구한 상황이지만 이대로라면 경매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한탄했다.
▶정부, 뒤늦게 제도 손질 착수= 부랴부랴 정부는 최근 피해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부터 법 개정을 통해 방지하겠다는 대책을 뒤늦게 내놓고 있다.
먼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추진해 임차인이 임대인의 선순위 권리관계와 납세증명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도 예비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를 받아 확정일자 부여 기관에 ‘선순위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를 요청할 수 있으나 관련 규정이 모호하고, 임대인이 거부할 경우 확인이 불가능하다. 즉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먼저 입주해 살던 임차인의 보증금을 빼고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남은 보증금 액수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법이 개정되면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선순위보증금 등 정보 제공에 관해 동의를 요구할 수 있으며, 임대인은 의무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또 정부는 임대인이 세입자 몰래 선순위 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이달부터 시중은행에 확정일자의 확인 권한을 부여하는 시범사업도 시작할 예정이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어디에나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부가 현 상황을 고려해 법을 손볼 필요 있다”고 말했다.
nature68@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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