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35층 룰’의 퇴장

서의동 기자 2023. 1. 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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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일반주거지역 아파트 층고 규제인 ‘35층 룰’이 폐지됐다. 사진은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풍경이다. 연합뉴스

중세 서양에선 교회의 첨탑이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15세기 벨기에의 세속도시 브뤼헤에서 옷감 제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높이 108m 종탑이 인근 성 도나투스 대성당보다 높았던 게 유일한 예외다. 도시에 종교건물보다 높은 세속건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서는 데는 그 이후로 4세기가 더 걸렸다. 19세기 후반 철골공법 도입과 엘리베이터 개량이 이뤄지며 마천루 시대가 열렸다. 미국 뉴욕의 수리공이던 엘리샤 오티스가 안전 브레이크를 도입한 엘리베이터를 1853년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인 것을 계기로 고층빌딩 건축 열풍이 불었다. 20세기 전반까지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극적으로 변모했다. 크라이슬러빌딩,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며 개발도상국들의 본보기가 됐다. 한국은 그 대열의 선두에 섰다.

한국은 압축성장과 함께 급속한 이촌향도를 경험했고, 서울은 1960년대부터 ‘만원’이란 탄식이 나올 만큼 인구가 몰렸다. 많은 인구를 효율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아파트가 대거 지어졌다. 한국의 아파트는 미관을 무시한 ‘성냥갑’이란 비아냥과, 중산층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한 근대화 특유의 산물(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서울 과밀론’은 2010년대 등장한 ‘콤팩트시티론’에 밀려났다. 초고층건물에 시설을 집중시키고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게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가 도시 담론을 지배하며 서울을 더 고밀도로 개발하고 규제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했다.

이런 흐름 속에, 서울시내 일반주거지역 아파트 층수를 최대 35층으로 묶어뒀던 ‘35층 룰’이 지난 5일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폐지됐다. ‘35층 룰’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지 않다. 하지만 층고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더 중요한 문제를 가리고 있다. ‘서울일극주의’에 인구 감소까지 겹친 한국에서 서울을 더 과밀화하는 방향으로 행정이 흘러가는 게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서울의 아파트 용적률을 더 늘리면 서울 인구가 더 늘어나야 수지가 맞는다. 서울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지방 인구를 더 빨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35층 룰’의 퇴장이 흔쾌하지 않은 이유다.

서의동 논설위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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