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하자마자 ‘퇴직준비’...“회사 언제 망할지 모르니까요” [Books]

고보현 기자(hyunkob@mk.co.kr) 2023. 1. 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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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퇴사, 이호건 지음, 월요일의꿈 펴냄
조용한 퇴사
“그들은 번아웃에 ‘노’라고 말하며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집중한다. 이 움직임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과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BBC)

“화려한 퇴장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겐 좀 더 부드러운 접근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

팬데믹의 끝이 보이던 지난해 여름 소셜네트워크상에서는 전 세계 MZ세대의 심금을 울린 신조어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등장했다. “일은 곧 삶이 아니며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성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뉴욕의 20대 엔지니어가 틱톡에 올린 영상은 곧바로 주요 외신과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화제가 됐다.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는 세대는 회사와 나 사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주어진 일만 충실히 한다. 그만두는 것도 아니지만 승진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야근 또는 추가업무에는 선을 긋는다. 자기 삶을 바쳐 조직에 헌신하는 허슬 컬처(hustle culture·열정적인 근무)를 거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책 ‘조용한 퇴사’는 오늘날 MZ세대를 알기 위해 ‘대퇴사 시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시기 미국에서 수백만 명의 자발적 퇴사자가 발생하던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원격근무가 지원되지 않거나 보상이 낮은 곳을 떠난 이들은 팬데믹이 끝났음에도 현장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저자는 MZ세대 특유의 가치관이 발현된 조용한 퇴사 현상이 이 같은 ‘대퇴사’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한다. 조용한 퇴사자는 실제가 아닌 ‘심리적 퇴사’라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조직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3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MZ세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현상)와 그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원인), 그리고 조직은 어떻게 이들을 붙잡아야 하는지(대책)를 다뤘다.

MZ세대 입사자의 절반 이상은 2년 이내 퇴사하고, 5년 안에는 전체의 90% 이상이 퇴직한다는 통계가 있다. 수십 년이 지나 강산은 바뀌어도 기업이 지닌 가치관은 변하지 않아 실망하는 일이 잦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더 많은 이 세대는 취업에 성공했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작가에 따르면 이들은 입사 전 ‘취준생’에서 더 나은 회사로 옮길 수 있는 ‘퇴직준비생’으로 신분을 바꿀 뿐이다. 조직 현안에 적극적인 의견을 내지만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으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 미련 없이 그만두는 것도 특징이다.

“팔자를 고칠 만큼 높은 자리로 올라선다는 보장도 없고 현실적으로 고지가 너무 높이, 멀리 떨어져 있다. 십수 년 뒤에도 현재 회사가 시장에서 살아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MZ세대는 조직 밖에 목표를 설정해두고 현재 조직과는 무관한 꿈을 꾼다.” 종신고용이 사라지고 평생을 경쟁 속에서 살아온 요즘 세대에게 현재의 직장이란 ‘종착역’이 아닌 ‘정거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같이 새롭고 발칙한 트렌드는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 노동력의 최소 50%가 이미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고 있다. 1989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는 역대 1분기 사상 최저 직원 참여율(employee engament rate)을 기록했다. 저자는 다양성이 높고 개인주의가 강한 MZ세대와 관계를 쌓는 것은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직원의 퇴사율이 높은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해결책을 마련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와 사랑하려면 먼저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중략) 결국 오늘날 경영자나 리더에게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설정에 있어 새로운 사랑 방정식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저자는 기업에 근무하며 인사 및 교육(HRD)을 담당했다. 현재 교육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인문학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는 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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