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의 그림] 움직일때마다 꽃잎 '활짝'···자연과 기술이 만나 예술이 되다
-스튜디오 드리프트 '메도우'
24m 높이에 실크꽃 20개 매달아
사람 움직임따라 반응 '꽃멍' 제격
-A A 무라카미 '포그 캐논'
대포알 쏘듯 하얀 안개고리 뿜어
지구 최초 탄생 생명체 보는 듯
-이이남 '아크 23.5'
외부 진입로 초대형 LED패널서
인왕제색도 빛의 패턴으로 구현
꽃이 스르르 벌어졌다 이내 오므라든다. 피고 지는 꽃도 저마다의 속도를 가진다. 얼른 피어 빨리 저무는 꽃이 있는가 하면, 조금 더디 피어 오래 버티는 꽃도 있다. 어떤 이는 물속을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 같다고 하고, 누구는 우아한 나비의 날갯짓 혹은 매달린 우산들 같다고도 말한다. 엄연한 꽃이다. 자유롭게 핀 야생화처럼 층고 24m의 탁 트인 공간을 차지한 스무 송이의 꽃은 네덜란드의 작가 듀오 ‘스튜디오 드리프트(Studio DRIFT)’의 대표작 ‘메도우(Meadow)’다.
이들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의 22년 역사를 접고 강서구 마곡동으로 옮겨 지난해 10월 재개관한 ‘LG(003550)아트센터 서울’의 로비 작품이다. 9호선 마곡나루역의 전용 출입구로 들어서면 지하 2층에서 LG아트센터 1층 로비까지 이어지는 계단 ‘스텝 아트리움’에서 만날 수 있다. 천장이 3층 객석까지 뚫려 있어 공간감이 상당하다.
거꾸로 매달린 꽃이 사람들의 움직임에 반응해 움직인다. 꽃의 수면운동에서 착안했다. 꽃은 밤낮의 길이와 주변의 온·습도에 반응해 동물의 호흡처럼 스스로 개폐 활동을 한다. 움직임이 작고 느릿한 데다 주로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밤에 일어나는 일이라 맨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드리프트는 로네커 호르데인과 랄프 나우타가 네덜란드 명문 예술학교인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에서 만나 2007년에 결성한 팀이다. 이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공학적 설계를 더해 움직이는 조각인 키네틱 아트를 만들어낸다.
작가들이 꽃의 움직임에서 영감 받은 ‘메도우’를 처음 구상한 것은 2006년이었지만 기술적 완성을 이루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늘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깡충 뛰어다니다 폴짝 내려앉을 때의 그 펄럭임처럼 꽃이 옷을 닮았다. 실크로 꽃잎 형태를 만드는 데 100번 이상의 레이저 커팅과 40시간 이상의 손바느질이 필요했으니, 흙이 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묵묵한 과정이었다. 어떤 꽃은 다른 꽃의 움직임에 따라 피고, 어떤 꽃들은 남들 움직이지 않을 때만 속살을 드러낸다. 그 움직임에 자신의 호흡과 심장박동을 느껴봐도 좋겠다. 자연에서 온 속도감이라 희한하게 맞아떨어진다. 몰입감 높은 작품이라 ‘꽃멍’ 하기도 좋다.
‘메도우’는 네덜란드 스테델레이크 미술관,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과 마이애미 슈퍼블루 등지에서 여러 버전으로 선보였지만 이곳 LG아트센터의 작품에는 특별함이 추가됐다. LG상록재단이 운영하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화담숲’에서 자라는 7종의 우리 토종꽃 색을 반영했다. 미선나무와 남산제비꽃의 흰 빛, 탐라산수국의 백자색, 섬기린초의 연노랑과 진달래의 분홍, 꽃창포의 보라색과 두메부추의 자주색이 은은한 색감의 원천이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걸어 오른다면 꽃잎이 활짝 벌어졌을 때 그 안의 빛이 햇살처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고는 한다.
LG아트센터 서울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스텝 아트리움’이 건물 아래위를 수직적으로 연결한다면, 1층 로비를 관통하는 80m의 터널 ‘튜브’는 남북을 수평으로 잇는다. 건물 전반은 안도의 시그니처인 콘크리트로 제작됐지만 이 ‘튜브’ 공간만은 나무로 이뤄졌다. 엄지손가락 길이만 한 폭의 나무로 15도 정도 기울어진 13.8m 높이의 길쭉한 타원형 단면을 촘촘히 채웠다. 큰 고래의 갈비뼈 속에 들어간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와 엄마 뱃속 같은 안온함이 느껴진다. 나무가 흡음재처럼 주변 소음을 쫙 빨아들여 비현실적인 고요를 느낄 수 있다. 내 발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멀어지는 남의 발자국 소리의 여운이 길게 늘어진다. 끝나버린 공연의 아쉬움을 오래 붙들수 있는 묘한 공간이다.
“드르륵 찰칵. 폭 폭 폭.”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이어 하얀색 증기 고리가 뿜어 나온다. 마치 대포알을 쏘는 듯하다고 제목 붙인 ‘포그 캐논(Fog Cannon)’이다.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동문인 영국 태생 알렉산더 그로브스와 일본 출신의 건축가 아즈사 무라카미가 2011년 결성한 디자이너 그룹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의 작품이다.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의자 ‘시 체어(Sea Chair)’를 비롯해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알루미늄 캔, 버려진 고무 등을 재료로 삼는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으로 유명하다. 예술가로 활동할 때는 ‘A A 무라카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공기 방울이나 연기 등 자연에서 온 가볍고 사라지기 쉬운 것들을 즐겨 다룬다.
‘포그 캐논’은 튜브의 중간부를 브리지처럼 이으며 설치됐다. 8개의 둥근 구멍에서 도넛 모양의 증기 고리가 뿜어나오고 둥둥 떠다니다 홀연히 사라진다. 대포형 캐논은 40억 년 전 지구상에 처음 탄생한 생명체가 가열된 물을 분출하는 심해의 열수구에서 시작됐다는 가설에서 착안했다. 뽀얀 연기처럼 보이지만 물 입자로 이뤄진 일종의 ‘안개 고리’라 인체에는 무해하다. 둥근 고리는 이따금씩 서로 부딪혀 커지기도 하고 서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지구의 근원적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작가들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예술이 우리 삶에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지하철역 출구 근처 지상 진입로에도 작품 하나가 기다린다. LG전자의 곡면 디스플레이 기술을 제대로 보여주는 초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패널에서 움직이는 그림으로 유명한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아크(Ark) 23.5’를 만날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빛의 패턴으로 현란하게 그려냈다. 15분의 상영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겸재는 지금의 강서구인 양천현의 현령을 지내기도 한 인물이라 그림 속에 마곡의 옛 모습을 담기도 한 인연이 있다.
LG아트센터 서울의 설계자 안도는 처음 이 마곡 땅을 방문했을 때 방대한 대지와 자연에 감탄했다고 한다.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고스란히 담았기에 고층 빌딩 직선 사이에 나지막이 곡선이 살아있는 건축으로 이어졌다. 자연 안에 예술이, 그 안에 사람이 머무르는 곳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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