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반도체 적자 각오해야" … 날개 꺾인 삼성전자 실적
반도체 겨울은 예상보다 혹독했다. 전 세계가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고 반도체 부문에 주로 의존해온 삼성전자 실적도 고꾸라졌다. 시장에선 올해 1분기 반도체 사업 부문이 적자에 빠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불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6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잠정 영업이익(연결 기준)은 4조3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9%나 줄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인 6조9254억원을 2조6000억원이나 밑도는 '어닝쇼크'였다.
사업 부문별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영업이익이 쪼그라든 가장 큰 이유로 반도체 사업 부진이 꼽힌다. 증권업계에선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이 4000억~60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2분기만 해도 약 10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반도체 부문이다.
특히 주력 제품 중 하나인 낸드플래시 메모리 사업은 아예 적자 전환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금리에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반도체가 들어가는 데이터센터 서버와 가전제품, 스마트폰 등의 소비가 일제히 줄었기 때문이다.
수요가 줄면서 재고가 쌓이고, 높은 재고량 탓에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는 '악순환'도 벌어지고 있다. 예상보다 낮은 영업이익 역시 재고자산 평가 손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재고자산) 시가가 취득원가보다 하락하면 이는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영업이익에 반영된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에서 예상보다 더 급격하게 매출이 둔화했고, 재고평가 손실이 일부 반영돼 영업이익이 급락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모바일 사업을 담당하는 MX·네트워크 부문은 4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직전 분기(3조2400억원)와 비교하면 큰 폭의 감소다. 세계 경기 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스마트폰 출하량이 예상을 밑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측은 "MX는 매크로(거시 경제) 이슈 지속에 따른 수요 약세로 스마트폰 판매·매출이 감소해 이익이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 스마트폰 원가에서 10~20%를 차지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가격 상승이 모바일 사업 부문 실적 악화의 이유로 꼽힌다.
영상디스플레이와 생활가전 사업 부문 역시 수요 부진에 원가 부담이 겹쳐 수익성이 악화했다. 증권업계에선 이들 부문 영업이익을 직전 분기보다 33.9% 줄어든 3700억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고금리에 전 세계적으로 주택 구매가 줄어들고, 소비자들이 지갑 문을 닫은 게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TV 출하량은 전년보다 3.8% 감소한 2억2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10년 만에 최저치다.
사업부문 중에서는 그나마 디스플레이(SDC)가 선방한 편이다. SDC는 직전 분기(1조9800억원)와 비슷한 1조7700억원대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찌감치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집중하면서 구조조정을 해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같은 불황이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특히 반도체 시장 전망이 어둡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는 올해 세계 반도체 매출을 5565억달러(약 703조1934억원)로, 지난해(5801억달러)보다 4.1%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칩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이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PC용 D램 가격이 최대 20%, 낸드플래시 가격이 최대 15%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감산'을 선언했으나 아직 재고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초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D램 재고 일수는 각각 15주로, 올해 1분기(6~7주)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서버와 TV 등 고객사 재고량도 높은 수준이다.
업계에선 올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적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위민복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낸드사업 부문 영업 적자를 시작으로 올해 1분기는 반도체 부문 적자, 2분기에는 D램까지도 영업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만약 반도체 부문 적자가 현실화하면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이다.
시장 관심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감산 여부다. 메모리 반도체 1위 업체인 삼성전자 측은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시장 불황이 점유율을 확대하고 다른 회사와 기술력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계기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어닝쇼크로 삼성전자가 간접적으로 반도체 공급량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인위적인 감산을 안 한다고 했을 뿐 간접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감산을 진행할 수 있다"며 "캐펙스(CAPEX·설비투자)를 축소하고 라인을 점검하는 등 칩 공급량을 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행인 건 올해 하반기쯤에는 반도체 업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올해 예정된 D램과 낸드 신규 증설, 공정 전환 계획을 일부 지연시킬 것으로 추정한다"며 "올해 3분기부터 D램, 낸드 수급은 공급 축소와 재고 감소 효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마트폰과 가전 등 다른 사업부 실적은 소비심리가 얼마나 되살아나는지에 달렸다. 김영건 연구원은 "1분기에 출시될 플래그십 스마트폰 효과와 모바일 패널 고객사의 회복 등으로 (반도체 사업으로 인한) 이익 감소분을 일부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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