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날
[[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1.
학교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친다. 늘 그렇지만 시험이 끝나고 나면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으로 나뉜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소위 수학을 못하는 학생들이 구별되기 시작했다. 성적이 낮은 것. 그런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에 의해 출제된 문제들이 과연 수학을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구분을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늘 내 안에 있어 왔다.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면서 아직 이 문제가 익숙하지 않음 때문인 것이지 이 학생이 수학을 못한다 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터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두 명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만난다. 내가 의도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수학 얘기를 꺼낸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두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더니 이것저것을 물어온다. 몇 개월 지나면서 수학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 때문으로 파악이 된다. 얘기를 듣다가 이런 제안을 했다.
“혹시, 잘 다루는 악기가 있니?”
공교롭게 두 학생 모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안단다.
“나는 색소폰을 조금 불 줄 아는데….”
그리고 이어서 “우리 각자 연주하는 악기로 곡을 하나 선정해서 연주 한번 해볼까?”라고 했더니 학생들의 얼굴빛이 금세 밝아진다.
수학 공부를 잠시 뒤로 미뤘다. 지금 두 학생과 함께 곡을 정해서 연주를 연습하고 있다. 수학은 학생들이 질문하면 그때그때 답을 함께 찾아가 볼 생각이다.
2.
논어를 읽는다. 희한하게도 저절로 논어의 내용을 필사하게 된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뜻풀이는 아직 혼자 할 정도의 수준이 안되어 한학에 조예가 깊은 분들의 해설을 의지한다. 내용을 이해하며 잠시 하늘을 본다. 성경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성경은 주로 문장에 머무르며 나에게 흘러 들어오는 울림이랄까 메시지를 주로 깊게 묵상한다. 그런데 논어든 성경이든 마음이 편안해지며 잔잔한 여운이 감도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도덕경이나 금강경을 읽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가 썼는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 의해 써진 글이 바로 지금 여기에 나와 마주하고 있음이 내겐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글과 문장들이 나와 만나 나의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하며 나를 날마다 새롭게 일깨워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울림을 통해서 말이다. 영적 안내자로 따르는 스승님들 역시도 이 과정을 거쳤으리라. 아니, 지금도 이 과정을 경험하고 계시리라. 그 깨달음과 울림의 정도가 나와 다르겠지만 그것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경전들이고 그 경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며 나는 응대하고 다시 물어가며 나를 비추고 나의 행동과 삶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는 그것이 내겐 소중하고 기쁠 따름이다. 날마다 순간마다 빼곡히, 촘촘하게, 옹글게 경전의 가르침 따라 살아가지 못함이 아쉬울 뿐!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난 과거를 다시 마주할 수는 없는 것을. 지나간 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을. 그러니 잠시 이곳 여기에 머물도록 날마다 순간마다 나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볼 수밖에.
3.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는 것.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참으로 힘들다. 아니, 말로 설명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것을 경험하는 요즘이다. 내 안에 계신 또 다른 나.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느낌이다. 경험이다. 그리고 언어를 타고 내 안으로 스며드는 촉촉함이다. 느낌과 경험 그리고 언어는 두 개의 나를 보여준다. 나를 어둠 가운데로 돌아서게도 만들고, 빛 가운데로 돌아서게도 만든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일 뿐! 결국은 내 문제란 의미다.
4.
2006년 9월17일. 도서출판 삼인에서 출간한 <예수에게 도를 묻다>란 책을 구입했다. 연세대 앞 홍익문고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고 관옥 선생님께 편지를 드렸다. 당시 과학고에 근무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선생님께서 주신 답장은 예쁜 엽서에 ‘난’을 그리시고 과학기술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두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익산에서 소방관으로 살고 있는 막냇동생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10년쯤 지났을까? 도마복음과 마가복음 해설서를 읽던 중에 <예수에게 도를 묻다>란 책을 책꽂이에서 여러번 찾았다. 다시 구입할까 하다가 잊기를 여러 번. 최근에 이사한 막냇동생 집에 들렀다. 동생의 방 한켠에 이 책이 꽂혀 있음을 보고, 동생에게 물었다. 이 책이 왜 여기에 있느냐고. 동생의 대답. 형이 <붓다의 가르침>(아침이슬)이라는 책과 더불어 몇 권을 읽어보라고 주지 않았느냐고.
<예수에게 도를 묻다>란 책을 다시 연다. 처음 만난 지 16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읽게 되는 이 책은 내게 어떤 배움을 허락해 줄까?
주님. 아직도 궁금함이 많고, 그런 제게 자꾸 기다리라고 하시니 기다리며 또 기다립니다. 그러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할 때 답을 주시는 주님의 의도를 조금 알기에 조급하진 않습니다. 오늘 하루도 저를 떠난 일이 없으신 주님을 제가 알아보게 이끌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글 박진호(순천사랑어린학교 공동체원)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 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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