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강하다 … 물 만난 포터·봉고
생계형 소형 상용차 인기 끌어
작년 판매 증가율 5년래 최대
포터는 국내서 가장 많이 팔려
택배 늘며 배송차량 수요 쑥
레저용 구매도 호조 이끌어
서울에서 소형 이삿짐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중소기업 직장인이었다. 코로나19 사태 때 번번이 월급을 밀려 받던 그는 지난해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한동안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전망이 어둡다는 주변 만류에 결국 이삿짐 일을 택했다. 투자 비용은 1t 트럭 한 대 값, 실패해도 차 한 대는 자산으로 남는 데다 온라인 이사 플랫폼이 활성화돼 있어 진입장벽도 낮다고 판단했다.
한국 경제가 경기 둔화의 터널에 들어서면서 생계형 소형 상용차 판매가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포터와 기아 봉고 판매량은 최근 5년 새 최대폭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기아의 국내 자동차 판매 실적은 줄었지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생계형 차량인 소형 상용차 수요는 되레 늘어난 것이다.
6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기아는 국내에서 총 122만9952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이는 2021년 국내 판매 대수와 비교해 2.5% 줄어든 실적이다. 반면 지난해 포터·봉고 판매량은 15만7237대로 전년보다 3.5% 늘었다. 포터·봉고 판매량은 2019년을 제외하고는 2018년부터 매년 판매량이 줄었지만 지난해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불황형 자동차'로 통하는 포터·봉고의 판매 추이는 경기 상황에 후행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카드 사태의 여파가 지속된 2004년 당시 두 차종의 판매량은 34% 줄었다. 현대차·기아의 전체 내수 판매가 15.4% 줄었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의 타격을 받은 것이다.
포터·봉고의 주요 소비층인 서민들은 경제위기의 충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탓이다.
이후 2005년에 들어 두 차종의 판매량은 전년보다 13.8% 늘었다. 당시 현대차·기아 내수 판매 증가율(4.2%)보다 3배가량 수치가 높다.
두 차종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판매량이 급감했다가 이듬해부터 다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2021년에도 판매량이 줄었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해제된 지난해 반등했다.
경제 충격의 여파로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거나 직장을 떠난 이들이 늘어나면 포터·봉고를 생계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늘어 판매량이 증가한다고 해석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지난해 영업용·관용 차량을 제외하고 신규 등록된 포터·봉고의 개인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54%는 50·60대 남성이었다.
지난해 포터는 9만2411대 팔리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차로 기록됐다. 현대차가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 100대 중 13대가 포터였다. 포터는 지난해 현대차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그랜저(6만7030대)보다도 38% 더 많이 팔렸다.
최근 포터·봉고의 판매량이 늘어난 이유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 물량이 늘면서 배송 차량 수요가 확대됐다는 점이 꼽힌다. 또 물류회사들이 전기차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교체 주기를 앞당겼다는 것도 포터·봉고 판매량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지난해 판매된 전기 포터·봉고는 총 3만5791대다. 이는 전체 포터·봉고 판매 대수의 24%, 현대차·기아 전체 전기차 판매 대수의 30%에 해당한다. 이달 기준으로 포터 EV(전기차)의 출고 대기 기간은 1년 이상이다. 이 밖에도 포터·봉고를 '움직이는 집'으로 만드는 레저용 개조 수요도 늘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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