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떨어져 시연 중단 망신... CES에서 중국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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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개막한 5일(현지 시각) 미 라스베이거스 전시장. 주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센트럴홀에선 화웨이를 비롯해 샤오미, 하이얼, 창훙 같은 중국 간판 기업들의 부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코로나 이전엔 CES 때마다 대형 부스를 차렸던 이들 기업은 이번엔 아예 자리를 뺐다. 그나마 눈에 띄는 중국 기업은 세계 TV 시장 3, 4위인 TCL, 하이센스뿐이었다.
부스를 차린 중국 업체들도 미국을 의식한 듯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TCL은 ‘NFL(미국 풋볼리그) 공식 파트너’라는 커다란 홍보 문구를 부스에 내걸고, 유명 풋볼 스타를 줄줄이 부르는 이벤트를 벌였다. 최신 TV·가전과 함께 스마트 안경을 선보였지만 한 시간 만에 ‘배터리가 떨어졌다’며 시연을 중단했다. 주요 전시품인 초대형 마이크로 LED(발광다이오드) TV도 개막 첫날 오전부터 곳곳에 불량 화소(화면을 구성하는 단위)가 발생해 까만 부분이 듬성듬성 드러났다. 110인치 8K(화면 가로의 화소가 약 8000개인 초고화질) TV를 비롯해 다양한 제품을 전시한 하이센스 부스는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처음 열린 CES에서 ‘중국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가 기업 숫자(500여 개)로는 미국(1500여 개), 한국(600여 개)에 이어 셋째지만 정작 개막을 하고 보니 과거 CES에서 기세를 올렸던 중국 대형 기업들 대부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 워낙 중국 참가자와 관람객이 많아 ‘C(China)ES’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번 CES에 참가한 중국 기업들은 명단 확인 결과, 전시장 한편에 작은 부스를 차려놓은 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회사명에 ‘선전’ ‘둥관’ ‘광저우’와 같은 이름을 단 소규모 제조사, 무역상들이다. 부스에 가보니 이들이 전시하는 제품은 첨단 기술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선풍기, 전자 기기 연결 케이블, 스마트폰 차량용 거치대, 전기 자전거를 비롯해 장난감 자동차를 판매하는 업체도 CES에 나왔다.
완성차와 부품사들의 부스가 몰린 전시장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이전까지 바이톤, 니오 같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CES에 대거 명함을 내밀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CES에 매년 참석하는데 올해는 일부 상위권 기업을 제외하곤 중간급 업체가 대거 빠진 것 같다”며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 속 중국에 대한 제재 분위기에 더해 최근 봉쇄 정책을 해제하면서 중국 내 코로나 감염자가 폭증한 영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중국 업체들은 북미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고 CES에 대거 참가해 자사 제품을 선보여왔다. 삼성·LG 등 한국 기업의 첨단 제품, 기술을 베끼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 기업들은 턱밑까지 따라붙는 중국의 기술 추격 때문에, 최신 제품을 별도의 비공개 전시장으로 옮기는 식의 대안까지 마련해야 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그런 중국이 CES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미·중 경쟁 덕분에 한국이 결과적으로 수혜를 보게 된 측면이 있다는 뜻”이라며 “중국 기업 부스가 빠진 자리를 한국의 대기업, 중견기업이 고스란히 채웠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박순찬 기자, 김성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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