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의 ‘더 글로리’, 왜 나팔꽃과 바둑이었나

양소영 스타투데이 기자(skyb1842@mkinternet.com) 2023. 1. 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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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송혜교와 나팔꽃. 사진|넷플릭스
김은숙 작가는 ‘더 글로리’에서 나팔꽃과 바둑을 꺼내들었을까.

지난해 12월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을 쓴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맛과 나는 대사와 ‘비밀의 숲’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왓쳐’ 등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안길호 감독의 사실적인 연출이 만나 서늘하고 건조한 ‘K-복수극’을 완성했다.

첫 복수극에 도전한 송혜교 역시 서늘한 연기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학교 폭력 피해자 문동은의 복수 서사에 몰입도를 높였고, 정지소 신예은 임지연 박성훈 정성일 이도현 등도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 가운데, ‘더 글로리’ 포스터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팔꽃’과 ‘바둑’의 의미를 분석하는 게시물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은숙 작가는 왜 나팔꽃과 바둑을 상징으로 사용했을까.

‘더 글로리’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천사와 악마의 ‘나팔꽃’
나팔꽃은 ‘더 글로리’ 1회 초반에 등장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송혜교)은 세명시에 얻은 빌라로 향하고, 빌라 옥상에서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의 집을 내다본다. 이때 빌라 주인(손숙)이 나타나 문동은을 환영하며 ‘악마의 나팔꽃’을 건넨다.

그는 나팔꽃을 가리키며 “저건 지상을 향해 나팔을 불어서 천사의 나팔꽃이다. 그건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어 악마의 나팔꽃. 신이 보기에 건방지다나. 그래서 그런지 그 꽃은 밤에만 향기가 난다”고 설명한다.

‘더 글로리’ 프스터 속 송혜교 임지연 사진|넷플릭스
캐릭터 포스터에도 나팔꽃이 등장한다. 학교 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은 포스터에서 악마의 나팔꽃을 배경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칼 춤출 망나니”를 자처하며 문동은과 연대하게 되는 주여정(이도현)은 악마의 나팔꽃을 배경으로 아래를 응시한다. 아직 그 사연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에게 편지를 받으며 괴롭힘을 당한 것이 드러난 피해자이기도 하다. 문동은과 연대하는 가정 폭력 피해자 염혜란도 악마의 나팔꽃을 배경으로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이와 반대로 가해자 박연진,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최혜정(차주영), 손명오(김건우)는 천사의 나팔꽃을 배경으로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다만 가해자의 남편이자 문동은이 접근하는 하도영(정성일)은 천사의 나팔꽃을 배경으로 위도 아래도 아닌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앞서 김은숙 작가는 “작품을 준비하며 자료를 읽는데, 그 사례들이 수위도 세고 힘든 이야기들이 많았다. 진짜 신이 있을까, 이 정도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나팔꽃이 눈에 띄었다.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면 악마의 나팔꽃, 지상을 향해 나팔을 불면 천사의 나팔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악마의 나팔꽃을 절대자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차용했다”며 ‘나팔꽃’의 의미를 설명했다.

‘더 글로리’ 이도현 송혜교의 바둑. 사진|넷플릭스
침묵 속에 맹렬한, ‘바둑’
문동은과 주여정, 문동은과 하도영의 관계에서 바둑은 중요하게 쓰인다. 극 중 문동은은 박연진의 남편 하도영에게 접근하기 위해 바둑을 선택하고,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주여정에게 바둑 과외를 받는다.

주여정은 문동은에게 바둑을 가르치면서 “바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이라며 “자기 집을 잘 지으면서 남의 집을 부스면서 서서히 조여 들어와야 한다. 침묵 속에서 맹렬하게”라고 설명했다. 건축가를 꿈꾸었으나 박여진으로 인해 꿈이 바뀐 문동은은 “마음에 든다”며 미소를 짓는다.

문동은의 계획대로 모든 것에 답이 있는 하도영은 기원에서 문동은과 마주치고,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답변을 내놓는 문동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김은숙 작가는 왜 바둑을 선택했을까. 그는 “바둑이 좋았던 이유는 남이 지은 집을 부수고 내 집을 튼튼하게 지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사력을 다하는 전투라는 점이 동은이 복수하는 마음과도 닮아있다. 흑백의 바둑돌도 선명한 것이 보기에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 인물들의 서사에 중요한만큼 연출도 힘을 줬다. 안길호 감독은 “바둑을 통해서 인물 간의 긴장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투하듯 바둑을 두는 느낌도 있고, 정을 쌓아가는 느낌도 있을 것이다. 동은과 여정이 바둑을 두는 장면에서는 성장하는 느낌을, 반면 동은이 도영과 바둑을 둘 때는 고요한데 전투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잘 안 쓰던 렌즈도 써보았다. 바둑을 두는 템포도 여정과 바둑을 두는 템포가 정석에 가깝다면, 도영하고는 조금 더 빠르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한편 6일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더 글로리’는 전날 기준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세계 4위를 기록했다. 공개 이틀 만에 5위에 오른 뒤 6~4위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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