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견] 동자동 쪽방촌,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사이
서울역 앞에는 동자동이라는 지역이 있다. '쪽방촌'이라고 불리는 영세 주거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동자동은 서울역 앞에 있다 보니 교통이 편리하고 크고 작은 일거리를 구하기가 쉽다. 또 이 주변에서는 각종 단체들이 식사를 제공하고 있어서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기도 한다.
이렇게 쪽방의 대명사로 불리는 동자동이지만, 이곳의 토지와 건물에도 물론 소유주는 존재한다. 이들 소유주 상당수는 동자동 쪽방촌의 재개발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저소득층 시민들도 이곳의 재개발을 원한다.
문제는 두 집단이 바라는 재개발의 방향이 다르다는 데 있다. 쪽방촌의 토지·건물 소유주 상당수는 본인들 이익을 최대로 확보할 수 있는 민간개발을 원하고, 쪽방촌 실거주자들은 자신들이 이곳에 재정착할 수 있는 공공개발을 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은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따라서 소유주들이 민간개발을 바라는 것은 정당하다. 문제는 이들 소유주 가운데 일부가 동자동에 거주하지 않는 부재지주라는 데 있다. 한편 동자동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저소득층 시민들에게는 유엔 세계인권선언 등에서 표명된 거주권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정부는 동자동을 공공주택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 그 뒤로 민간개발을 원하는 소유주와 공공개발을 원하는 실거주자들 사이에는 첨예한 대립이 있어왔다. 나는 그간 동자동을 답사하면서, 양측의 주장을 담은 플래카드와 벽보를 기록해오고 있다. 양측 모두 본인들이 진정한 '주민'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민의 이익이 되는 개발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국 부동산 문제에서 주민이라는 단어는 소유주와 실거주자라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된다. 주민이라는 단어가 지닌 이중적 의미가 최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동자동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이다.
서울역 앞이라는 입지에 지금처럼 노후 주택들이 남아 있는 상태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공공개발을 통해서든, 민간개발을 통해서든 동자동은 결국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지난해까지, 동자동 재개발은 바로 얼마 뒤면 시작될 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동자동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또 하나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자동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말 동자동을 다시 찾았을 때, 두 부류의 주민들이 내걸었던 플래카드는 떼어져 있었다. 그 대신 젊은층을 수요로 하는 카페와 식당이 몇몇 건물에 들어서 있었다. 서울역 주변 오피스 빌딩들 사이에서 구도심 그대로 남아 있던 동자동에는, 이제까지도 몇몇 맛집들이 쪽방 건물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고 있는 카페와 식당은 구도심의 노포가 아니라 핫 플레이스에 나타나는 그것이다.
어떤 지역이 핫 플레이스가 되기 시작하면 재개발 문제는 다른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건물을 헐지 않고 그대로 남기면서 임대료를 받는 것이 재개발에서 생기는 이익보다 더 커지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침체 상태이다 보니, 재개발을 추진하는 사람들보다는 공간의 현재 모습을 유지하면서 임대료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승기를 잡고 있다.
재개발이든 젠트리피케이션이든, 그간 입지 조건에 비해 저렴한 금액을 지불하고 이곳 쪽방촌에 머물러온 실거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것이다. 이제 쪽방촌 거주민은 소유주뿐 아니라 이곳에 카페·식당을 개업한 임차인들과도 경쟁해야 할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한 지역에서는 임차인들에게 밀려 예전 실거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이 확인돼왔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서 동자동 재개발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재개발을 둘러싼 그간의 2파전이 3파전으로 양상을 바꾼 것이다. 재개발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폭력에 호소하는 해결책이 강구되곤 했다. 동자동에서는 부디 폭력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본주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거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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