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아름다움이 있는 한 절망은 없다
1936년 봄, 조지 오웰은 영국 웰링턴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후, 정원 뒤뜰에 장미를 심었다. 시골의 정원 있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주로 작가로서 생계를 꾸리며 살겠다는 그의 꿈이 처음으로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웰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이 장미는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다.
에트루리아 말에 사에쿨룸(saeculu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자리에 있는 가장 나이 든 사람이 산 시간의 길이'를 뜻한다. 인간의 사에쿨룸은 때로는 100년쯤 된다. 오웰이 심은 장미의 사에쿨룸도 비슷할 듯하다. 이 말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는 기억 속에 머무는 시간의 길이'를 뜻하기도 한다. 가령, 스페인 내전에서 싸운 마지막 사람이 가버리면 그 사건의 사에클룸도 저문다.
인간의 사에쿨룸과 달리, 나무의 사에쿨룸은 훨씬 길어 수백 년에 달한다. 나무는 우리의 덧없음을 환기하고 더 깊은 지속성을 상기시키면서, 우리가 알지 못할 기억을 품은 채 우리 곁에 존재한다.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일은 인간의 사에쿨룸을 나무의 사에쿨룸으로 확장한다.
'오웰의 장미'(반비 펴냄)에서 미국의 문학 비평가 리베카 솔닛은 말한다.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것은 희망의 몸짓이다. 지금 심는 이 씨앗이 싹 터 자라고, 이 나무가 열매를 맺으리라는, 봄이 오리라는, 뭔가 수확이 있으리라는 소망 말이다. 그것은 미래에 깊이 관여하는 활동이다." 나무는 좋은 삶을 향한 우리의 노력과 분투를 기억해서 언젠가 열매 맺을 미래로 실어 나른다.
이 책에 따르면, 권력의 거짓과 왜곡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오웰의 글쓰기 바탕에는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과 장미의 아름다움이 놓여 있다. 장미는 "인간을 지탱하는 섬세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이고, "즐거움에 속하는 것을 추구할 내적 삶"을 상징한다. 아름다움이 없을 때, 정의와 진실과 인권에 대한 추구도 없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권력이 거짓을 진실로 강요하고, 시민의 삶을 낱낱이 감시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연인과 교외로 나간 그는 개똥지빠귀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두려움을 벗어난다. 아름다움이 권력의 기만과 압제에 저항해 우리를 구원한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매혹함으로써 지금 여기와 다른 삶, 다른 세계,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한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다음 해, 오웰은 절망의 시간에 장미를 심어 아름다움에 희망을 걸었다. 나무의 사에쿨룸에 의지해 미래를 여전히 우리가 이바지할 수 있는 기대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움이 있는 한, 절망은 없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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