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방탄만 문젠가… 미래 등치는 `방탕 국회`는?
혈세 화수분 취급 '방탕국회'함구가 더 눈살
'돈 내고 못 받는' 현행 연기금 수술에 미온적
고육책 보고받고도 지출·보장강화 다그친 野
절박감 결여된 與…'밑빠진 독' 개혁 책임져야
연말연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이 '방탄 국회'다. 현직 의원은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 가결 없이는 구속영장이 발부되지도, 실형이 집행되지도 않도록 한 불체포특권을 거대야당이 남용하고 있다며 여당에서 주로 쏟아내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보면서는 레토릭만 그럴싸하고 선택의 기로에선 절대 사익을 좇는 정치권 생리(生理)를 재확인한다. '방탄'을 전가의 보도 삼아 모든 비판에 우겨넣는 여당도 '소음 유발'에 한몫 한다. 그들도 특권 폐지를 선택해야 할 순간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사실 방탄은 정치권과 수사기관 '그들만의 리그'다. 더 문제시하고 싶은 건 '방탕 국회'다. 본예산 협상 정국부터 그랬듯, 정부 재정을 화수분(재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보물단지) 쯤으로 여기는 행태다. 실제론 혈세(血稅)가 나오는 국민의 지갑, 호주머니를 그렇게 취급하고 있다. 재정규모가 줄면 국민의 경제가 쪼그라드는 것처럼 엉터리 선동을 하고, 경제활동과 재산보유에 조세가 비용·징벌 성격을 띠며 사중손실·구축효과를 부른다는 고찰은 보이지 않고,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란 상식마저 부정한다.
조세·재정만이 문제가 아니다.
날로 늘어가는 국민의 준(準)조세 부담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열린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인 여야 정치권의 모습은 아주 실망스러웠다. 특위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인 김용하(순천향대)·김연명(중앙대) 교수가 각각 4대 공적연금을 비롯한 현존 연금제도의 문제점, 연금개혁의 방향을 중간보고하는 자리였다. 이런 자리에 주호영 연금개혁특위 위원장(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나타나지 않았고, 여당 간사에게 사회권을 맡겼다.
자문위가 보고한 연금 재정 실태는 심각했다. 요컨대 4대 공적연금은 현행대로면 자력 유지가 불가능하다. 사실상 강제 가입된 이들이 약속된 연금은커녕 자신이 보험료로 낸 만큼의 돈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각 연금을 유지하려면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지' 조정이 제1과제일 수밖에 없다. 소득대체율 40%를 약속하며 월 소득 9%씩을 가져가는 국민연금(현재 가입자 2200만명)은 2018년 4차 재정계산대로면 2041년 1777조원까지 기금이 늘지만 이듬해 수지 적자 전환 후 2057년 고갈 예정이다.
5년 전 추계보다 현실은 더욱 냉혹할 것이다. 국내외 주식 등 기금투자는 수익률만 좇기에도 벅차고, 전임 정권의 잔재인 스튜어드십코드가 연루된 잡음만 커지고 있다. 군인연금·공무원연금은 오래 전부터 적자를 국고로 보전 중이고 사학연금은 2049년 기금 소진이 예고됐다. 인구구조 급변에 보험료를 내는 사람 수를 수급자 수가 초월할 악재까지 자명하다. 국민연금에 대해 자문위에선 '보험료를 내야할 연령대(만 59세까지 의무가입)는 더 높이고, 수급 개시는 만 65세에서 더 늦추는' 안까지 조심스레 제시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한마디를 못 해 온갖 고육지책을 꺼내는 셈이다. '더 내고 덜 받는' 정공법 개혁이 지지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지 '더 내고 더 받는' 방향도 가능한 것처럼 검토대상 안에 포함됐는데, 공허하다. 정치권부터 개혁에 열의가 없다. 자문위의 개혁안 보고 직후,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은 질의에서 "미세한 제도개혁 설계에 집중되는 게 맞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 인구·연금담당 실장·국장급 공무원들이 자리해 있었지만 질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손조차 들지 않았다.
학계 전문가 중심의 자문위가 국정감사 피감기관처럼 '프로 정치인'들의 훈계대상이 되는 현장이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수익률 중심 금융시장에만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의 사회적 투자 역시 논의돼야하는 게 아니냐"며 "자문위에서 공적연금의 '공공주택 투자' 등 사회서비스 투자를 통한 출생률 개선을 의제로 다뤄달라"고 했다. 기금 유지가 곤란하다는 보고에, 기금을 이른바 '사회적 투자'에 더 쓸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달 내 국민의견 수렴 후 개혁 최종안을 내야할 자문위는 난색을 표했다.
민주당에선 정태호 의원이 노인빈곤율 낮추기 등 "목표에 대한 부분이 없다"며 자문위를 다그쳤다. 이용우 의원도 자문위에 70세 노인 최소 생활비 산출, 노후소득보장 목표 설정이 먼저라며 모수개혁안을 후순위로 미뤘다. 고영인 의원은 "50대 후반부터 70대·80대까지 빈곤문제를 당장 어떻게 해결할 건지"를 물었다. 만 65세 이상 인구 70%에 주는 기초연금 지급액 인상시 국민연금 장기가입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자문위의 분석에도 '100% 지급해 1차 계단으로 깔고 국민연금을 다 받게 하자'는 장밋빛 안까지 꺼냈다.
김민석 민주당 의원(보건복지위원장)도 보험료율·지급률·시기 등 모수개혁을 "예상되는 논의 흐름"이라며 제도적인 노후소득보장 목표 제시가 우선 과제라고 거들었다. 앞서의 '기본소득' 담론을 예로 들기도 했다. 대표 논제인 기금고갈 해소나 세대간·세대내 형평성이 아니라, '당장 노인층에 얼마씩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지'만이 관심사인 것처럼 보인다. 수익자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면 연금 자체의 존폐를 고려해야하는 게 기본인데, 여차하면 부족분을 전부 혈세 재정으로 떠넘기면 된다고 여기는 것인지.
정부재정으로 기금 부족을 때우는 걸 당연시한다면 더 이상 연금이 아니라 조세·재정 문제가 가중될 뿐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라도 할 것같은 정치권발 포퓰리즘이 결합되면 국민 앞에 청구서 폭탄이 날아들 뿐이다. 세금, 연금만 문제도 아니다. 지난 5일 경총은 '사회보험 국민부담 현황과 정책 개선과제(2022)' 보고서를 통해 2021년 한해 국민이 부담한 5대 사회보험료(건강보험료·국민연금·고용보험·장기요양보험·산재보험) 규모가 총 152조366억원으로, 전년대비 8% 늘어 물가상승률·GDP성장률을 훨씬 상회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당해 명목GDP 액수(2071조6580억원)의 7.3% 규모라고도 한다. 그중 국민연금 보험료가 35.2%를 차지하고, 가장 비중이 큰 건보료 부담(45.7%)은 '보장성 강화' 미명을 앞세웠던 '문재인 케어'와 직결된 이슈다. 5대 사회보험료가 2016년 한해 105조488억원이었다가 문재인 정부 5년간 연 부담액이 46조9878억원(44.7%) 급증했다. 국가채무 1000조원 돌파 등 '빚더미 나라'를 만드는 등 재정·화폐가치 문란을 부른 데다, 현 청년·미래세대엔 '밑빠진 독 돈 붓기'외 선택지를 주지 않는 정치가 공공빙자 방탕이 아니면 뭘까.
주호영 원내대표는 특위 이틀 뒤(5일)에야 당내 회의에서 자문위 개혁안을 거론했다. 야당이 민감하게 반응하던 국민 500명 공론조사 절차에 관해 "청년세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수 있는 논의 구조"를 예고한 게 요지다. 그 전날(4일) 원외인사인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미 2030에게 연금은 '내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불공정의 상징"이라며 "앞으로 30~40년 연금을 납부할 2030이 개혁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보다 톤이 낮다. 연금특위는 4월 종료 예정이고, 국회 논의는 이미 힘이 빠진 모양새다. 집권여당 당대표가 되겠다는 인물들이라도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구호',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만 부르짖지 말고 '어떻게' 실현할지 청사진을 내놔야하지 않을까.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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