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자유는 민주주의 근본가치이자 위협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속살 분석한 문학이론가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1.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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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베탄 토도로프(1939~2017)

러시아도 북한도, 중국이나 아랍국가들도, 그리고 우리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강령으로 삼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세계적 문학평론가인 츠베탄 토도로프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는 지켜야 할 도를 넘어선 나머지 탈이 났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횡포가 되고, 국민은 조작 가능한 우매한 대중으로 전락한다. 이제 경제, 국가, 법은 더 이상 모두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성을 말살하는 수단이 된다. 언젠가 이 과정을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민주주의'를 만사형통의 단어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민주주의만큼 왜곡되고, 민주주의만큼 한계를 드러낸 단어도 드물다.

'민중이 주권을 가진 주의'라는 뜻일 텐데, 민중이 주권을 가지기만 하면 그 나라는 잘될까.

불가리아계 프랑스인인 토도로프도 같은 의문에 빠진다. 그는 '민주주의 내부의 적'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속살을 고찰한다.

토도로프가 누구인가. 러시아 형식주의를 서구에 소개하면서 구조주의 서사론의 막을 열고, '환상문학 서설'을 통해 장르문학 비평의 토대를 만든 문학이론가이자, '일상예찬'이라는 명저를 펴낸 미술비평가이기도 한 인물 아닌가.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격동기를 지내왔다. 격동기를 살아온 그는 불가리아 공산주의부터 신자유주의까지 다양한 정치 체제를 경험했다.

'민주주의 내부의 적'은 그의 체제 경험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나는 전에는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 중 하나라고 믿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도로프는 특히 '자유'라는 말의 본질을 의심한다. 인종차별을 내세우는 유럽의 극우 정당도 '자유'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고 그 나라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자유'를 구실로 내세운다. 이처럼 자유는 쓰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이용해먹기 좋은 구실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는 비관만은 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정원'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한 정원이다. 자유는 활짝 꽃을 피우기까지 정성 들여 가꾸어야 하는 식물이다. 자유는 (크든 작든) 일련의 과정을 거쳐 획득되는 하나의 결과다."

자유도 노력의 결과라는 말이다. 토도로프는 차라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속박해야 하는 그 모순적인 속성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말한다. 과연 그게 맞는 말인가.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자유를 속박당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가 지나치게 자유를 제약한다면 그건 새로운 문제다. 이처럼 자유에는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자유는 하나의 유기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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