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완전정복] "66억원에 낙찰됐습니다" 미술계 우먼파워, 셀링파워 터졌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1.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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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MZ 작가 전성시대
작년 가격 경신한 경매 목록
애나 웨얀트·레이철 존스 등
40대이하 젊은 女작가 득세
3D 모델링 SW 활용한 화법
골판지에 손으로 그리기까지
독창적인 화풍 컬렉터 홀려

다사다난했던 작년 세계 미술시장의 가장 큰 사건은 MZ세대 여성작가의 약진입니다. 연초부터 경매에서 신기록 경신을 이어갔고, 아트페어에서도 큰 화제를 만들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세대교체는 급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미술시장 불변의 법칙은 시장에서 지명된 소수의 슈퍼스타를 위한 파티장이라는 점입니다. 갤러리, 옥션, 비평가라는 삼위일체의 지지를 받는 스타들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집니다.

21세기 미술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백인 남성을 위한 시장. 2008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파블로 피카소는 경매시장에서 약 62억달러(약 7조8789억원)를 팔아 같은 시기 모든 여성작가의 판매액보다 높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최근 발간된 2022년 아트넷의 번즈&할퍼린 리포트에 따르면 이 시기에 여성 예술가의 판매 비중은 5%를 차지했습니다.

에이버리 싱어作 'Happening' 66억원

거센 페미니즘의 물결과 과거에 대한 반성이 맞물리면서 여성작가들은 2020년대 들어서야 대세가 됐습니다. 그중에서도 새로운 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주가는 하늘 높이 치솟고 있습니다.

미술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도 작년 결산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시장의 5가지 특징 중 하나로 '정점에 오른 젊은 예술가들'을 꼽았습니다. 40대 이하 젊은 작가를 뜻하는 초현대 미술품(Ultra-Contemporary Art)의 총매출은 2013년 9140만달러에서 2021년 7억3930만달러로 700% 이상 증가했습니다. 전체 시장 점유율은 2.7%로 올라왔습니다. 이 작가들의 경매 출품 수도 2013년 3487점에서 2021년 1만2216점으로 약 250% 증가했습니다.

플로라 유크노비치作 'Tu vas me faire rougir' 30억원

광풍이 부는 이 시장에서 특히 여성의 주가가 높습니다. 아트시가 선정한 작년 10대 기록 경신 경매 목록에는 MZ세대 여성작가 이름만 가득합니다. 작년 경매 시작가의 10배 안팎이라는 놀라운 낙찰 기록을 세운 작가들은 애나 웨얀트(27), 루시 불(32), 레이철 존스(31), 로런 퀸(31), 캐럴라인 워커(40) 등 서구권 작가 외에도 베트남 출신 줄리언 응우옌(32), 한국 출신 애나 팍(26) 등 인종도 다양합니다.

아야코 로카쿠作 '무제' 17억원

'벼락스타'의 일회성 이벤트로 보기엔 변화가 뚜렷합니다. 아트프라이스닷컴의 '2022 초현대미술 리포트'의 동시대미술(1945년생 이후)과 초현대미술(1981년생 이후) 경매시장 분석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2022년 상반기 기준으로 초현대미술 작가 낙찰총액에서도 10위권 중 여성작가가 7명을 차지하며 우위를 점했습니다. 2위 아야코 로카쿠(40), 3위 플로라 유크노비치(32), 5위 에이버리 싱어(36), 7위 마리아 베리오(40), 8위 애나 웨얀트, 9위 크리스티나 퀄스(38), 10위 로이 홀로웰(39) 순입니다.

추상과 구상의 구분에 갇히지 않고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고 있는 MZ세대 여성작가의 약진은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독학으로 골판지에 손가락 그림을 그리는 아야코 로카쿠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고, 로코코 시대 고전을 거대한 화폭에 재해석하는 유크노비치는 30대 작가 중 가장 빠르게 작품 가격이 오른 작가가 됐습니다. 싱어는 3D 모델링 소프트웨어와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 방식의 새로운 화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싱어와 퀄스는 각각 약 520만달러(약 66억원), 약 450만달러(약 57억원)로 작년 40대 이하 작가 중 가장 비싼 낙찰가 2, 3위를 나란히 차지했죠. 웨얀트의 세피아풍 익살스러운 여성들의 도상은 아시아 고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출신 마리아 베리오의 섬세한 수채화는 여성과 남미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퀄스의 추상화는 인종과 성적 정체성, 젠더에 관한 탐구를 하고 있으며, 홀로웰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작년 5월 서울 페이스갤러리 전시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죠. 경매시장과 함께 갤러리의 '쌍끌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퀄스는 작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뉴욕 하우저앤드워스 전시를 동시에 열었고, 웨얀트는 논란 속에 작년 11~12월 가고시안에서 성대한 개인전 데뷔를 했습니다. 영국의 신성 흑인 작가 자데이 파도주티미(29)도 가고시안과 전속 계약을 한 데 이어 '파리+ 아트 바젤'에서 완판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2021년 1월, 미술 저널리스트인 스콧 레이번은 새로운 세대 작가들에 대해 우량주를 뜻하는 '블루칩'에 대비되는 '레드칩'이라고 명명했습니다. MZ세대 컬렉터들이 '높은 수익'을 기대하며 또래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는 현상에 주목한 것입니다. 티에리 에르만 아트프라이스닷컴 설립자는 "작가의 입지나 작품의 희귀성보다 작품의 새로움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열정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만 작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린 세계 3대 경매사는 연말로 접어들면서 경매시장의 온도가 빠르게 식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찬바람이 부는 와중에도 신고가를 찍는 일부 작품을 보며 '불황에는 걸작'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며, 젊은 작가들의 거품을 주의하라는 '레드칩 주의보'가 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아모아코 보아포, 루시 불 등 일부 작가 작품은 가격이 하락하며 거품이 걷히는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장 위축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상대적으로 여성작가의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변화를 가속화하는 건 시장의 탐욕과 돈이기 때문입니다.

해외 시장의 변화의 바람을 보고 있으면 국내 시장의 잠잠한 여풍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새로운 세대 여성작가들의 자리가 여전히 좁고 척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룹전에 젊은 작가들이 초청받는 경우가 귀하고, 대형 화랑에서는 연로한 작가들이 우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경매시장의 침체를 반등시키기 위해서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응원합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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