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섭과 북산고···언더독이 할 수 있는 건 ‘꺾이지 않기’다[위근우의 리플레이]

기자 2023. 1. 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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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확률을 뚫고 승리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송태섭은 단 한 번도 자신보다 작은 상대와 맞붙어본 적이 없다. 168㎝에 59㎏. 일반 고등학생 중에서도 왜소한 편인 그에게, 농구 코트에서 만난 도내 최고 수준 파워를 지닌 해남의 이정환이나 그런 이정환도 묶을 정도의 압박 능력을 지닌 산왕의 이명헌은 은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인 차원에서 벽이나 다름없다. 현란한 볼 핸들링과 빠른 스피드, 슛 페이크를 지니고 있지만, 결국 상대편 림을 향해 돌진하기 위해선 어느 순간 그 벽에 부딪혀 뚫어낼 용기를 내야 한다. 그 용기 없이 벽 앞에 멈춰서 펼치는 모든 기예는 공허한 자기증명의 몸부림일 뿐이다. 1월4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 벽에 도전하고 돌파하는 이야기다. 원작 만화 <슬램덩크> 중 마지막 에피소드인 산왕공고와 주인공 북산고의 대결을 담아낸 이번 작품에서, 전국 최강 산왕공고는 명성 그 자체로 이미 벽 같은 존재다. 심지어 그들이 무시무시하게 단련된 체력으로 전방부터 압박하는 올 코트 프레스 전술을 펼칠 때, 그 넓던 코트는 강고한 벽에 둘러싸인 듯 극도로 좁아진다. 드리블로 돌파할 공간도, 공을 패스할 공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송태섭이어야 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에도 없던 과거사를 포함해 송태섭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산왕공고와의 경기를 그려낸다. 도저히 넘거나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은 벽.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송태섭은 단 한 번도 자신보다 작은 상대와 맞붙어본 적이 없다.

송태섭과 북산고 농구팀이
그려내는 부침과 패배 이야기
삶과의 승부를 마주한 언더독이
할 수 있는 건 ‘꺾이지 않기’
그리고 실낱같은 승리 가능성과
훨씬 큰 패배 가능성 사이에서
근성을 가지고 뛰는 것
26년 지나도 사랑받는 ‘슬램덩크’
편견 깨는 도전이라는 서사의 힘
우리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다

한 세대가 열광했던 원작이었던 만큼 산왕과의 경기 결과는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언더독’이었던 북산의 승리, 그리고 모든 체력을 쏟아낸 뒤 다음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패배. 물론 성공하고 오래된 IP 대부분이 그러하듯, 때론 아는 맛이 더 매혹적이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마찬가지다. 펜선으로 하나씩 북산 멤버들이 완성되며 걸어오는 오프닝을 보며 원작 팬으로서 가슴 뛰지 않기란 어렵다. 하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향수를 자극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3D를 이용해 질감과 공간감, 속도감을 살린 애니메이션 연출 안에서 산왕은 진정 압도적이다. 도내 최강 센터 채치수조차 자신감을 잃을 정도로 림을 지켜내는 신현철의 육체는 철벽과도 같으며, 서태웅조차 반응할 수 없는 빠른 퍼스트 스텝으로 정우성은 순식간에 공간을 찢어 페인트존을 유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송태섭의 시선으로 올려다보는 이명헌의 수비는 관객마저 숨 막히게 한다. 경기 초반, 작품은 송태섭의 시야를 통해 이명헌과 송태섭의 미스매치를 묘사한다. 키는 결코 숫자일 뿐인 게 아니다. 송태섭보다 12㎝ 더 크고 뛰어난 예측 능력까지 지닌 그가 바짝 밀착해 수비를 펼치며 송태섭의 시야는 극도로 좁아진다. 원작에서도 센터 채치수나 파워포워드 강백호를 중심으로 골 밑에서의 거친 몸싸움을 묘사한 바 있지만, 단신 메인 볼 핸들러에겐 수비수 앞에서 패스할 공간을 찾는 것부터 일종의 몸싸움이다. 마냥 시간을 끌기엔 공격 제한 시간이 있고,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패스를 했다간 공격 기회 자체가 날아가며,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면 이명헌에게 공을 빼앗긴다. 북산 공격의 시발점인 송태섭이 처한 어려움이 가시화될수록 산왕이란 벽은 더더욱 거대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송태섭의 과거사. 세 살 터울에 지역 농구 유망주였던 형이 바다낚시를 나갔다가 죽고 형을 동경하던 그는 농구부 활동을 한다. 드리블과 패스 센스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형에 비해 많이 작아 강한 압박엔 쉽게 무너지며 형과 비교당한다. 이사를 가서도 농구 연습은 열심히 하지만 이제 그와 일대일로 붙어 강하게 수비하고 동기 부여해주는 형은 없다. 어떤 기술로도 부재하는 형을 돌파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산왕을 이기는 것보다도. 과연 형이 살아 있었다고 송태섭이 상대해온 김수겸, 이정환 같은 특급 에이스로 성장했을지는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함께 나이 먹다 160㎝대 후반 즈음 비슷한 키에서 멈춰 송태섭에게 지는 날이 왔을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알 수 없음이 부재의 끝없는 깊이를 만든다. 어디까지 하면 형을 따라잡고 형을 대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도 해결하거나 종결할 수 없는 질문. 가능한 건 농구를 계속하는 것뿐이다. 영원히 이길 수 없더라도 영원히 승부를 시도할 수는 있다. 정석적인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고 채치수에게 혼나도, 왕년의 농구 유망주였던 정대만 패거리에게 린치를 당해도, 송태섭은 농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북산의 안 감독은 포기하면 그걸로 경기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포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송태섭의 과거사는 포기하지 않아 반복됐던 패배의 기록에 더 가깝다. 삶과의 승부에서 때로 언더독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다. 백퍼센트의 패배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대신, 실낱같은 승리의 가능성과 훨씬 큰 패배의 가능성 사이에 뛰어드는 것.

송태섭의 과거사를 중심으로 교차하는 다른 북산 멤버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성장하고 전진해 산왕전 승리라는 기적에 이르기까지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겪었던 그 수많은 부침의 순간마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던 그 순간순간의 선택이 모두 기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농구 명문이 아닌 북산에서 외로이 원맨팀을 유지하면서도 전국제패라는 꿈을 꾸는 것(채치수), 오랜 방황을 마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농구부에 복귀하는 것(정대만), 하다못해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관심도 없고 무서운 주장이 있는 농구부에 투신하는 것(강백호)까지, 그 자체로는 무엇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 모든 순간이 실은 기적이다. 100분의 1 확률을 뚫고 승리하는 것만 기적이 아니다, 포기해도 좋을 수백 가지 이유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보다 더한 기적이다. 최강 산왕을 상대로 승리하는 기적은 총 40분 경기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았던 수많은 기적의 순간들이 모여 또 하나의 기적을 더한 것에 가깝다.

경기 막바지, 첫째를 잃은 슬픔과 첫째를 따라 농구를 하는 둘째 송태섭에 대한 착잡함에 힘겨워하던 어머니는 송태섭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온다. 이명헌과 정우성의 더블팀 수비에 고전하던 그에게 어머니는 돌파하라 외치고, 그는 키 작은 선수에게 유일한 살길은 드리블이라며 그 둘 사이를 돌파한다. 어머니의 등장을 제외하면 원작에도 나오는 장면이지만, 원작에선 일종의 주인공 팀 보정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선 그가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부딪혀온 벽을 끝끝내 돌파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돌파와 함께 전개되는 북산의 속공은 새삼 코트가 얼마나 넓은 공간이었는지 확인시켜준다. 그 넓은 공간에서 송태섭의 움직임은 더없이 자유롭다. 그 자유로움 안에서 둥근 공은 비로소 어디로 튈지 모를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오늘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만약 <슬램덩크>가 근성에 의한 승리에만 의미부여하는 자기계발 서사였다면 그토록 오래 사랑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코트에서 얼마나 많은 청춘의 가능성이 펼쳐질 수 있는지 보여주며 <슬램덩크>, 그리고 완결 26년 만에 나온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여전히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원작에 없던 이번 작품의 오리지널 엔딩은 그래서 상당히 의외이되 일관된 메시지를 드러낸다. 시간이 흘러 송태섭은 어쩌면 이정환, 이명헌을 능가하는 최강 최악의 매치업 상대를 만난다. 하지만 괜찮다. 송태섭은 단 한 번도 자신보다 작은 상대와 맞붙어본 적이 없었으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승부는 계속됐다. 그 계속되는 싸움 속에 가끔은 멋진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어쩌면 바로 오늘.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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