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걱정된다면… 발 밑에 '블랙박스' 달아라

김필수 교수, 김정덕 기자 2023. 1. 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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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접근 못한 급발진 사고
제조사는 회피, 운전자만 피해
입증책임은 제조사에 물어야
발 밑 블랙박스라도 의무화해야
지난 수십년간 급발진 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동차에는 해묵은 논쟁이 있다. 바로 급발진 사고 논란이다. 지금껏 급발진을 주장한 이들이 적지 않지만 제조사가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는 단 한건도 없어서다. 법원 판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실제 급발진 유무가 과학적으로 가려지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럼 지금처럼 피해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밖엔 없을까.

"가속페달을 밟지도 않았는데 차가 굉음을 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제동페달을 밟아도 소용이 없었다. 급발진이 의심된다." 누군가 이렇게 주장하면 으레 나오는 반박이 있다. "제동페달을 제대로 밟지 않았거나 가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착각해서 잘못 밟은 거다. 사고기록장치(EDR)에도 가속한 것으로 돼 있다. 사고 당시 제동등도 들어오지 않았다.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의 과실이다."

제법 그럴듯한 반박처럼 읽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차량의 결함으로 급발진한 것이라면 EDR 역시 믿을 수 없다. 결함이나 오류를 전제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령, 제동장치에 결함이 있었다면 제동등이 들어오지 않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급발진의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를 위해 좀 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이런 유형의 시도를 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급발진 사고의 통계조차 불확실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급발진 현상을 신고한 건수는 196건이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소방청 산하 각 지역 소방본부가 급발진으로 추정 혹은 의심되는 교통사고로 신고를 받아 출동한 건수는 791건이었다. 급발진 추정 또는 의심 사고 건수 대비 국토부 신고 건수가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일을 겪었지만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사고가 경미해서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실제 급발진 의심 사고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참고: 물론 예기치 않게 발생한 사고로 당황한 운전자가 앞뒤 재보지도 않고 급발진을 주장하는 일도 없지는 않을 거다. 중요한 건 급발진이냐 아니냐를 두고 제대로 된 판단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 급발진을 경험하고도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급발진을 주장해도 지금껏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어서다. 급발진으로 신고된 사고는 대부분 운전자 실수로 마무리되기 일쑤다.[※참고: 2018년 5월 호남고속도로 부근에서 발생한 'BMW 급발진 사건'은 재판부가 2심에서 급발진으로 인정했다. 다만, BMW 측이 항소하면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급발진 사고는 증거가 남지 않고, 재연도 되지 않는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실제로 급발진 의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정부나 공공기관의 역할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급발진이 있었다는 걸 소비자가 입증해내야 한다. 책임도 혼자 져야 한다. 지난 40여년간 자동차 급발진 사고 관련 소송에서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패배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급발진 사고는 매우 공포스러운 경험이다. 운전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동차가 급가속하면서 앞으로 튀어나가기 때문이다. 일부 피해자는 그래서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를 당한 운전자가 사고의 흔적이 별로 남지 않는데다 재연마저 불가능한 급발진의 원인을 밝혀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대부분의 운전자는 자동차 전문가가 아니다. 상당수 전문가는 급발진 사고가 자동차에 전자제어장치(ECU)를 포함하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3년 미국의 민간 소프트웨어 컨설팅업체인 바(BARR) 그룹은 당시에 일어난 도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ECU에 내장된 소프트웨어 오류를 급발진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결국 도요타 자동차는 유죄판결을 받고, 대규모 리콜과 함께 12억 달러의 벌금을 지불했다.

이렇게 급발진의 원인을 찾기 위한 과학적 접근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EDR에만 의존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뀐다고 해서 급발진 사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전기차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발진 사고의 원인을 찾는 데 발을 빼선 안 되는 이유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우선 미국의 시스템을 들여다보자. 미국은 재판 과정에서 운전자 측이 요구하면 제조사가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입증을 못하면 재판 전에 합의를 통해 소비자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에선 급발진 유무를 따지지 않아도 배상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더구나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채택하고 있다. 같은 차량에 비슷한 사고가 계속 발생하면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조사에 나선다. 제조사가 소비자를 위해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입증 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에 지울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마땅하다.

다른 방법도 있다. 운전자가 정말 가속페달을 밟았는지, 제동페달을 밟았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운전자 발 주변에 영상기록장치 탑재를 의무화하는 거다. 필자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자동차급발진연구회를 이끌면서 운전자의 발을 찍는 블랙박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제조사의 입증 책임을 제도화하는 게 시간이 걸린다면 블랙박스라도 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예전엔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블랙박스 보급이 일반화돼 있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위변조 가능성이 없어 재판 과정에서 증거자료로 사용하기도 쉽다.

이제 근거도 없이 급발진 의심 사고를 무조건 '운전자의 실수'나 '운전 미숙'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당수의 운전자는 이미 발을 찍는 용도로 블랙박스를 설치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갖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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