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대체 선수에서 우승 청부사로! 전천후 포워드, 아비 스토리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2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외국 선수는 빅맨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아비 스토리는 달랐다. 스토리는 스몰포워드로 자신의 이점을 살려 내외곽을 두루 오갔다. 외곽에서 득점원으로 활약하면서도 탄탄한 신체 조건을 매개로 프로농구에서 세 시즌을 누볐다. 공교롭게도 국내 무대와 인연이 끝난 후, NBA에도 진출했다. KBL 선수로는 1호 NBA 선수가 되는 영예도 안았다.
대학 시절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이후 베넷 왕의 가정이 입양이 됐다. 새로운 곳에서 자라면서 농구 선수로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프로비스웨스트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주를 대표하는 일리노이대학교에 진학했다. 한 시즌을 뛴 후 그는 애리조나대학교로 전학을 택했다. 한 시즌을 뛸 수 없다는 징계에도 그는 애리조나스테이트 와일드캐츠로 건너간 이후 각광을 받았다.
미국에서 주로 스윙맨으로 나섰음에도 그의 리바운드는 단연 돋보였다. 당시 팩-10컨퍼런스(현 팩-12)에서 수준급 리바운더로 거듭났다. 운동 능력도 돋보였던 그는 여러 포지션을 두루 수비하면서 가치를 높였다.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수비수였던 그는 주로 가드와 포워드를 막았으나 팀의 사정이 급박할 때는 센터 선수를 막기도 했다. 전학 이후 세 시즌 동안 16번의 더블더블을 작성하는 등 웬만한 빅맨이 부럽지 않은 활약을 했다.
3학년이던 지난 2000~2001 시즌에는 29경기에 나서 경기당 26.5분을 소화하며 13.1점(필드골 성공률 : 49.8%, 3점슛 성공률 : 50%, 자유투 성공률 : 60.2%) 9.1리바운드 2.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컨퍼런스 리바운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러나 스토리가 뛰는 동안 애리조나스테이트는 NCAA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했다. 4학년이었던 지난 2001~2002 시즌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이로 인해 평균 출전 시간이 16.2분으로 줄었다. 기회가 줄어 들면서 기록 하락도 피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NBA 드래프트에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4학년 때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지명 가능성은 없었다. 결국, 부름을 받지 못한 그는 프로농구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그러나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못했다. 외국 선수가 빅맨 위주 선발이 이뤄졌기에 윙맨인 스토리의 가치는 다소 낮았다.
그러나 서울 삼성에서 뛰기로 예정이 됐던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에서 총격으로 인해 사망했다. 삼성은 지난 2002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로 윌리엄스를 택했다. 윌리엄스는 직전 시즌 인천 대우(현 한국가스공사)에서 뛰면서 성공적으로 리그에 적응했다. 삼성은 오프시즌에 서장훈을 데려가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유명을 달리하면서 삼성은 급하게 새로운 선수를 찾아야 했고, 안드레 맥컬럼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맥컬럼은 시즌 초반에 크게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5경기 만에 방출을 피하지 못했다.
급한 데로 삼성은 연습 상대로 함께 했던 스토리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삼성이 미국 전지훈련에 나섰을 때, 스토리가 상대 팀으로 뛰었던 바 있다. 스토리는 이내 프로농구에 잘 녹아들었다. 첫 경기에서 15점 9리바운드로 성공적인 첫 경기를 치른 그는 2002~2003 시즌 평균 19.4점 7.1리바운드 2.2어시스트 1스틸로 크게 활약했다.
'서장훈-스테판 브래포드-스토리' 조합의 높이는 막강했다. 하지만 스토리의 3점슛이 취약해 삼성이 지닌 약점도 뚜렷했다. 삼성은 당시 리그에서 3점슛 성공률이 가장 저조했다. 서장훈이라는 리그 최고 센터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외곽에서 기회를 좀처럼 살리지 못했다. 삼성은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쳤다. 삼성은 6강 플레이오프에서 여수 코리아텐더(현 수원 KT)에 패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스토리의 활약은 다소 모자랐다.
부산을 거쳐 다시 서울에서
스토리는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던 만큼, 재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여느 선수와 달리 주로 스몰포워드로 나섰던 점을 고려하면, 그의 외곽슛 부재는 뼈아팠다. 그는 지난 2003 외국 선수 드래프트에 다시 나섰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도 그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 시즌 코리아텐더의 주포였던 이버츠가 돌연 계약을 취소했고, 코리아텐더는 스토리를 영입했다. KTF(현 수원 KT)가 코리아텐더 농구단을 인수하면서, 스토리의 두 번째 팀은 부산 KTF가 됐다.
주전 포워드였던 스토리는 현주엽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외국 선수와 매치업이 용이하지 않았다. 삼성에서는 서장훈의 존재로 주로 토종 선수와 매치업이 됐으나, KTF에서는 외국 선수를 막아야 했기에 수비 부담이 컸다. 현주엽이 무릎 부상 여파로 경기력이 온전치 않은 가운데 스토리가 주포로 나서면서 팀에서 득점과 리바운드를 모두 책임져야 했다. KTF의 2003~2004 시즌은 꽤 험난했다.
전력 구성에 어려움을 느낀 KTF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서울 SK와의 거래를 통해 국내 선수와 외국 선수를 바꾸기로 한 것. KTF가 스토리와 황진원을 SK로 보내기로 했고, SK는 리온 트리밍햄과 손규완(캐롯 코치)을 받기로 합의했다. KTF는 해당 트레이드로 높이를 보강했다.
스토리는 트레이드로 한 시즌 만에 브래포드와 다시 만났다. 삼성에서 주전 포워드로 뛰면서 역할을 했으나 SK에서는 달랐다. 스토리가 KTF에서와 마찬가지로 파워포워드를 소화했지만, 주전 센터인 브래포드의 존재로 2002~2003 시즌과 비슷한 경기력을 보였다. 평균 19.1점 11.5리바운드를 올렸다. 평균 득점과 평균 리바운드 모두 SK에서 가장 많았다. 브래포드가 몸싸움으로 상대 빅맨을 제어하는데 치중했고, 스토리가 보드 장악에서 큰 힘을 보탰다.
그리고 SK는 또 한 건의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조성원을 전주 KCC에 보내는 대신 전희철(현 SK 감독)을 데려온 것. 전희철까지 더해진 SK는 높이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SK는 정규시즌에서 많이 이기지 못했다. 브래포드, 스토리, 전희철이 포진하고 있었으나 19승 35패로 리그 7위에 그쳤다.
원주에서
스토리는 이번에도 서울에서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제도 변화도 결정적이었다. KBL은 지난 2004~2005 시즌부터 자유계약을 통해 외국 선수를 데려오기로 했다. 직전 시즌에 뛰었던 이중 살아남은 이는 찰스 민렌드, R.F. 바셋(당시 KCC), 앨버트 화이트(당시 전자랜드)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시즌 초반에 바셋이 방출을 당하면서 기존 선수가 살아남을 틈은 더욱 없었다.
스토리는 시즌 중에 원주 TG삼보(현 DB)의 부름을 받았다. TG삼보는 주전 슈팅가드인 처드니 그레이를 내보내고 스토리를 데려오기로 했다. 당시 그레이는 방출 이전까지 경기당 17.3점 5.4리바운드 3.4어시스트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TG삼보의 전창진 감독(현 KCC 감독)은 시즌 중에 큰 변화를 택했다.
2003~2004 시즌의 교훈 때문이었다. 당시 챔피언 결정전에서 KCC에 패했던 TG삼보는 김주성(DB 코치)의 체력 안배를 생각했다. 외국 선수와 몸싸움이 여의치 않았던 김주성을 대신해 외국 선수를 수비하게 해줄 이를 택한 것이다. 빅맨임에도 기동력이 남달랐던 김주성이 도움 수비로 안쪽에 힘을 보탤 수 있었기 때문. 이에 가드가 아닌 내외곽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스토리가 좋은 대체자가 됐다.
스토리가 김주성과 뛸 때, TG삼보는 높이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토리는 평균 14.2점 5.6리바운드에 그쳤다. 확실했던 득점원이면서도 외곽에서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시도했던 그레이의 공백이 느껴졌다. TG삼보의 우승 전망에 의문부호가 뒤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KCC도 바셋 방출 이후 제로드 워드를 불러들였으나 그가 정통 센터가 아니었던 만큼, TG삼보의 외국 선수 교체도 좋은 승부수가 될 수 있었다.
스토리는 플레이오프에서 TG삼보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친정인 삼성과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 세 경기 평균 23.7점 7.7리바운드 3.7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준결승에서 가장 돋보였던 그의 대단한 활약에 힘입어 3전 전승으로 시리즈를 마쳤다. TG삼보는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충분히 마련했다.
챔프전에서는 예상대로 KCC를 만났다. 스토리가 민렌드를 전담 수비했다. 이로 인해 김주성이 국내 선수를 막을 수 있었다. TG삼보는 매치업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고, 구단 역사상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미국에서
스토리는 지난 2004~2005 시즌 시작에 앞서 뉴저지 네츠(현 브루클린)과 계약했다.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 계약했으나 트레이닝캠프와 프리시즌에서 살아남은 그는 NBA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D-리그(현 G-리그) 아이다호 스탬피드(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뛰었다.
시즌 초반에 9경기에 나섰다. 주로 승패가 결정이 된 이후 나섰으나 NBA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2월 초에 경기에 나선 이후 주로 빅리그에서 뛰지 못했던 그는 D-리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05년 여름에는 워싱턴 위저즈와 계약했다. 당시 워싱턴에는 길버트 아레나스, 캐런 버틀러, 앤트완 제이미슨이 막강한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스토리는 워싱턴에서 전문 수비수로 기용이 되곤 했다. 그는 25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4.6분을 소화하며 1.7점을 기록했다.
시즌 중후반에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고 방출됐다. 이후 독일에서 한 시즌을 보냈고, 2006년 여름에 밀워키 벅스에서 뛰기로 했다. 그는 지난 2006~2007 시즌에 26경기에서 평균 10분 동안 3.5점 2.1리바운드를 보태며 NBA 진출 이후 가장 돋보인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을 끝으로 그는 지난 2008~2009 시즌을 중국에서 뛰었다. 이후 뉴질랜드와 필리핀도 거쳤다.
지도자로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지난 2017년에 WNBA의 시카고 스카이의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이후 그는 G-리그로 자리를 옮겼다. 워싱턴 산하인 캐피털시티 고고의 코치로 한 시즌을 보냈다. 지난 시즌부터 보스턴 셀틱스의 산하 구단인 메인 셀틱스의 어시스턴트코치로 재직하고 있다. 참고로, 디온테 버튼이 2021~2022 시즌을 메인에서 뛰었다. KBL에서 대단한 시즌을 보냈고,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 몸담기도 했다.
사진_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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