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화장품 있게 한 '토끼'...대체 '오가노이드' 연구 활발

고재원 기자 2023. 1. 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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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제공

2023년 새해는 ‘계묘년(癸卯年)’으로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그동안 과학기술 연구와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동물 중 하나다. 유순한 성격과 저렴한 유지관리 비용, 뛰어난 번식력으로 쥐 다음으로 가장 흔한 실험실 동물로 쓰인다. 기초의학·생화학 연구, 화장품 독성 테스트, 항체 생산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장기 유사체 ‘오가노이드’, 디지털 가상세포(in silico) 모델링 등 동물실험을 대체할 기술들이 나오고 있지만 토끼는 쥐와 함께 여전히 중요한 실험동물이다. 

● 항체 의약품은 물론 독성 테스트에도 쓰이는 소중한 동물
4일 세계 최대 동물보호단체인 PETA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한해 약 14만8000만 마리의 토끼가 실험용으로 활용된다. 토끼는 바이러스나 병원체를 무력화하는 역할을 하는 항체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동물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몸 속에 들어오면 면역세포가 인지하고 공격하는데 이 과정에서 항체가 생성된다. 항체는 병원체가 가진 특이 단백질(항원)에 달라붙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항체를 이용한 의약품을 만들려면 의약품에 쓸 항체를 찾아야 한다. 생물체에 의도적으로 병원체를 주입해 면역반응을 일으켜 혈액 속에 생성된 항체를 뽑아내는 방식이 활용된다. 이 때 쓰이는 대표적인 생물체가 토끼다. 

토끼는 다루기 적당한 크기와 넉넉한 혈액량, 귀 정맥을 통한 혈액 추출 용이성 등의 장점이 있다. 또 다른 동물에 비해 항원에 잘 달라붙는 항체를 많이 생산한다. 이미 많은 연구 데이터가 쌓여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토끼는 수명이 6~8년 정도로 생체 주기가 짧아 기초의학과 생화학 연구에도 활용된다. 생체 주기가 짧으면 질환의 진행 상태를 짧은 기간에 확인할 수 있고 세대를 거친 의학적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주로 약물이나 화학 물질, 의료기기 등의 독성이나 안전성 실험에 사용된다. 림프구성 백혈병, 악성 섬유종 등 암 실험모델로도 사용되며 심혈관 질환이나 당뇨병, 비타민 과다증, 메틸수은 중독 등의 질환 연구에도 쓰인다. 헤르페스 뇌염이나 안검염 등 감염병 연구에도 다수 쓰였다. 인도 마니팔대 의대 연구팀은 지난 2012년 국제학술지 ‘덴탈리서치저널’에 “토끼 실험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생리학적과 병리학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 동물 실험 대체 연구도 '활발'
일부에선 실험동물의 과도한 희생을 동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미 1970년대 동물 실험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사회 역시 반응했다. 유럽 의회는 지난 2013년 화장품에만 사용되는 성분에 대한 동물 실험을 전면 금지시켰다. 지난해 9월에는 연구, 테스트, 교육을 위한 동물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결의안에도 합의했다. 

과학계는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토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기술들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유전학에서는 ‘오가노이드’ 연구가 한창이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3차원적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장기유사체다. 선웅·조일주 고려대 의대 교수팀은 지난해 3월 신경관 형성을 모사하는 척수 오가노이드를 개발하고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명의학공학’에 게재했다.  

플라스틱 위에 세포를 배양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모방한 ‘장기칩’ 연구도 활발하다. 동물을 대신해 생명 현상을 연구하고 신약 후보물질을 실험할 수 있다. 도날드 잉버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 연구팀은 지난 11월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에 질염 치료 약물의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실리콘 소재의 장기칩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항체 생산도 토끼에 병원체를 주입하는 방식 대신 외부에서 만드는 기술이나 축적된 연구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내는 연구도 이뤄진다. 

● 생태계에 꼭 필요한 그 자체로 귀중한 동물
토끼는 그 자체로 귀중한 동물이다.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식동물인 토끼는 잡초를 뜯어먹으며 여러 종류의 식물이 자랄 기회를 준다. 토끼는 또 이동하며 씨앗을 여러 군데 퍼뜨린다. 동물 학자들은 토끼를 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파수꾼이라 칭한다. 식물 다양성은 자연스레 여러 종류의 새와 곤충 번성을 돕는다. 스페인 수렵자원연구소는 “토끼 개체수 감소로 지중해 지역에서는 지역 환경이 어려움을 겪었다”며 “토끼가 멸종된다면 지구는 재앙을 겪을 것”이라 국제학술지 ‘보존생물학’에 예고하기도 했다. 

토끼는 사람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애완동물로도 사랑받는다. 미국 노트르담대 연구팀은 2010년 국제학술지 ‘미국 정신교정학 저널’에 “애완용 토끼는 성인의 정신건강은 물론 아동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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