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다방] 풍자 또 풍자···현대 문명 비판한 노아 바움백의 '화이트 노이즈'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개막작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노이즈’
모든 사람은 끝을 향해 달리는 존재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에 대한 공포일 터. 대부분이 그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지만, 이 공포가 일상을 잠식한다면 어떨까. 이런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가득 담은 정신없는 블랙 코미디 한 편이 나왔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화이트 노이즈’(감독 노아 바움백)는 유독 물질 유출 소동으로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한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다룬 블랙 코미디다. 1985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돈 드릴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결혼 이야기’(2019)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 각본상을 비롯 주요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감독 노아 바움백이 각본과 연출을 맡아 돌아왔다. 감독의 전작들에도 출연했던 배우 애덤 드라이브와 배우 겸 감독 그레타 거윅이 부부 역할을 맡았다.
히틀러를 연구하는 교수 잭 글래드니(애덤 드라이버)와 엘비스를 연구하는 교수 머레이(돈 치들)는 함께 장도 보는 친밀한 동료 교수 사이. 세상 모든 빛깔을 다 모아놓은 듯 형형색색의 슈퍼마켓에서 잭의 가족과 머레이는 장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잭의 아내 바벳(그레타 거윅)은 아이들의 이름을 쉽사리 기억해 내지 못한다. 가족은 여느 중산층처럼 화목한 식사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심해진 엄마의 건망증을 수상하게 여긴 딸 드니스가 ‘다일라’라고 적힌 약통을 쓰레기통에서 발견한다. 드니스는 그 약이 어떤 책에도 없다며 아빠에게 수상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날 밤 바벳은 잭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내가 먼저 죽고 싶어. 당신 없는 삶은 지독하게 슬프고 외로울 것 같아. 애들이 다 커서 독립하면 더 그렇겠지.” 라디오를 듣고, 강의를 하고, 장을 보고.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잭의 가족이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독 물질을 실은 기차 추돌 사고가 발생한다. 엄청난 양의 유독 물질 덕에 가족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운 재난 상황에 내몰린다. 대피 도중 잭은 유독 물질에 노출된다. 곧 재난 상황은 종결되고,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온다. 이후 잭과 바벳은 ‘다일라’에 얽힌 비밀을 마주한다.
풍자에 풍자가 이어진다. 영화는 머레이 교수의 강의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는 할리우드 영화 속 차량 사고 장면을 해석하며 여기에선 폭력성이 아닌 악의 없는 즐거움을 봐야 한다는 ‘미국식 낙관주의’를 강조한다. 교수들의 대화를 통해 미디어가 쏟아내는 끔찍한 사건사고에 덤덤해진 세태를 짚기도 한다. 대피 도중 유독 물질에 노출됐지만, 정작 당국은 시민의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들이 만들어낼 수십 년 후의 데이터에 관심을 보인다. 이처럼 곳곳에 풍자적 요소를 넣어 날카롭게 비꼰다. 물질주의와 미디어에 대한 비판 등 현대 사회 풍자가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고 해도 될 정도다.
유독 슈퍼마켓이 반복적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영화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정보의 홍수와 상업적 유혹이 진실을 볼 수 없도록 하는 ‘화이트 노이즈’라는 시각을 견지한다. 슈퍼마켓도 비슷한 맥락이다. 슈퍼마켓에 대해 “여긴 너무나도 밝고 불가사의한 데이터가 가득해. 세상의 모든 글자와 숫자 색깔과 스펙트럼. 모든 음성과 소리 암호 문자, 의례적 문구들이 가득하지”라고 칭하며 비판한다. 많은 것들에 대해 논했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5분 넘게 이어지는 슈퍼마켓 신은 압권이다.
영화는 ‘일상이 곧 재난’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흔히 생각하는 ‘진짜’ 재난 상황은 러닝타임의 일부에 불과하다. 부족함 없어 보이지만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주인공 가족은 작지만 큰 공포에 흔들리고, 고통받는다. 그리고 영화는 불안이 깃든 삶에서 이들을 구해줄 것은 덧없어 보일지 모르는 ‘사랑’과 ‘희망’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그 풍자가 다소 과하다. 메시지가 힘 있게 전달되려면, 오히려 완급조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원작의 다층적인 메시지를 영화 안에 담으려다 보니 연출의 초점도 흐릿해진다. 미디어, 상업주의, 죽음에 대한 공포, 당국에 대한 풍자, 종교 등 다양한 주제를 대화로 엮어 풀어가지만, 무엇을 논하고자 하는 것인지 수려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일상에선 하지 않을 법한 난해한 대화들이 빠르게 진행되는 점도 몰입감을 떨어트린다. 반면 80년대 배경을 표현한 화려한 복고풍 미술은 작품에 매력을 더한다.
◆시식평: 과유불급, 세상 정신없지만 귀여운 구석 있는 풍자 코미디 한 편을 원한다면.
제목 :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블랙 코미디, 재난, 스릴러
각본/감독 : 노아 바움백
원작 : 돈 드릴로 소설 ‘화이트 노이즈’
출연 : 애덤 드라이버, 그레타 거윅, 돈 치들 외
제작사 : 패시지 픽처스 외
공개일 : 2022년 12월 3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상영 시간: 136분
볼 수 있는 곳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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